[통신One] 스위스를, 스위스 문화를 박물관을 통해 배우다
(그뤼에르=뉴스1) 신정숙 통신원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관계를 맺고 정보를 얻는 요즘. 그곳엔 관련 검색어, 해시태그도 넘쳐나고 검색어를 따라 가면 새로운 것들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어느 날 눈에 들어 온 #museumspassambassador (박물관 패스앰버서더).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김아름씨를 만나서 하는 일을 들어봤다.
"처음엔 혼자서 갈 곳이 필요해서 가게 됐고, 나중에 아이와 놀 수 있는 곳이 필요해서 갔어요."
그 나라 말을 못 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방인이 혼자서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때 시어머니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뮤지엄 패스가 있었다. 그렇게 무작정 갔던 베른 미술관 (Kunstmuseum Bern)은 혼자라도, 그림만 봐도 좋았다. 바라만 보던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가까이 갔더니 온통 모르는 말 투성이었다. 그래도 읽으려고 애썼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점점 흥미와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시작된 박물관 패스 투어. 불어를 배우면서 관심 영역은 더 넓어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패스 이용이 가능한 박물관, 미술관, 성, 갤러리를 찾아갔다. 스위스의 문화, 미술, 역사를 알게 됐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본격적으로 다녔다.
"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때 미술관을 갔어요. 아이에게 첫 미술관이었죠. 전시된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했어요, 아이가 이해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함께 가는 게 좋았어요. 아이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림과 아이와 나, 따뜻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 덕분에 지금 세 살이 된 아이는 주말만 되면 이번엔 어느 박물관을 가냐고 물어요."
스위스 박물관과 미술관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를 제공하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덕분에 아이들이 더 많은 재미와 호기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베른의 폴 클레(Paul Klée) 미술관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다양하고 알찬 편이에요. 예를 들어 최근에 이 미술관의 전시를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고 그림을 선정했어요. 아이들이 큐레이터가 된 셈이죠. 이 곳엔 전시 주제에 따라 아뜰리에가 개설되고, 아이들 생일 파티도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여기처럼 아이들한테 오픈돼 있는 곳이 스위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특징인 것 같아요."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녀오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다 어느 날 스위스 뮤지엄패스 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뮤지엄패스 앰버서더로 활동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재단은 연방 문화청, 스위스 관광청과 스위스 박물관 협회가 협력해 1996년에 설립됐다. 스위스 사회 내 문화적 다양성과 교육 그리고 지식을 촉진하고, 교류하며 확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재단은 매년 20여 명의 새로운 앰버서더를 선정하는데 참가자가 다녀온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해시태그 #museumspassambassador2022 쓰면 된다. 이들 가운데 일정 인원을 뽑아 그 해의 앰버서더를 선정한다. 선정된 사람에게는 한 해 동안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제공한다. 이 패스를 이용해서 스위스 전역의 500 여곳의 박물관, 미술관, 성을 방문할 수 있다.
스위스의 많은 성들(châteaux)도 이 패스로 이용 가능하다. 아이들은 성 구경을 많이 지루해 하는데 최근엔 아이들을 위해 그 시대 복장을 한 가이드가 있어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따라가면 더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고, 궁금한 내용도 바로 질문할 수 있어 좋다.
이외에도 3D로 볼 수 있는 전시도 많아지면서 스위스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다양화 되고 있다. 오래된 성도 벽화나 전시된 그림을 3D 안경을 쓰고 보면 실제로 그 시대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난다. 여기에 아이들에게 벽화 속 '동물 찾기'와 같은 퀴즈를 내어 재미를 더하고 있다. 또는 밤에만 열리는 박물관 투어 (La Nuit des Musée)도 있어 낮엔 볼 수 없었던 성의 모습을 실감나게 볼 수도 있다.
"언어가 안 되는 시절, 명화나 그림을 보면서 몰입을 할 수 있어 힘든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었어요. 힘들 때 쉴 수 있는 공간이었고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었어요. 그림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추억을 쌓는, 살아있진 않지만 서로 뭔가를 주고받는 관계 같았어요. 내게 공간을 내어주면 나는 감상으로 그곳을 채워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처음엔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와 함께 갈 수 있어 좋고, 아이가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성장하는 것 같다. 그렇게 서서히 스며들었던 곳에서 최근에 새로운 출발을 했다. 좋아서 했던 일이 이제 본업이 된 셈이다. 낯선 이방인으로 박물관 밖에 있던 그는 이제 그 사회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박물관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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