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발 금융 경색, 유동성 위기 도화선에 불 붙였다 [쓴소리 곧은 소리]
윤석열 정부 국정운영의 총체적 역량이 시험대 올라
(시사저널=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
최문순 전임과 김진태 현임 두 강원지사가 2050억원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상환을 금융거래의 기본원칙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처리한 결과, 가뜩이나 미국의 고금리와 고환율로 살얼음판을 헤매는 금융시장에 일파만파의 충격을 미치고 있다. 레고랜드 사태를 강원도의 문제로 외면하던 금융 당국이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10월23일 50조원+α의 유동성 공급 대책을 발표했으나, 콜과 CP 등 단기금리가 상승세를 지속하는 등 자금 경색과 신용불안 상태는 계속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레고랜드 건을 계기로 그동안 금융시장이 구조적으로 안고 있던 유동성 문제가 전면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위기의 도화선은 이제부터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12조원에 이르는 부동산 PF 대출이 가장 위험
가장 위험한 도화선은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문제다.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6월말 현재 112조원에 달한다. 레고랜드 자산유동화채권이 부도 처리된 충격으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 유동화가 사실상 불가능해짐에 따라 증권사들이 직접 매수하고 있으며, 그 결과 중소형 증권사들은 심각한 자금난에 쫓기고 있다. 증권사들이 PF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과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 중 만기 도래 규모(나이스신용평가 자료)는 11월 10조7000억원, 12월 9조7600억원, 내년 1월 10조7600억원, 2월 9조4000억원, 3월 9조4000억원으로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두 번째로 위험한 도화선은 PF 대출 중에서도 가장 위험성이 높은 여전사 브리지론으로 잔고는 25조원에 달한다. 문제는 여신전문기관들의 자금 조달 수단인 여전채 발행 시장이 이미 마비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16조원 규모의 여전채 차환이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으며, 여전사들의 브리지론을 현재 규모로 지속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아파트 시장 침체로 신규 분양이 어려워짐에 따라 건설사들의 자금난이 가중되고 있어 그 결과로 건설사-증권회사-여전사들의 동반 부실과 연쇄 도산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세 번째로 위험한 도화선은 회사채 시장이다. 연말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13조2000억원이며,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40조7000억원으로 총 54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자산유동화증권(ABS)을 포함하면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무려 73조원에 이른다. 10월25일 발행된 최우량 등급의 한전 회사채가 6%에 가까운 발행금리에도 목표 물량을 소화하는 데 실패한 사례는 회사채 발행 시장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 사례는 그만큼 금융기관들에 자금 여력이 없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하물며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들의 회사채 차환 발행은 금리를 불문하고 소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태다.
네 번째 도화선은 과도한 은행채 발행 문제다. 금융 당국이 약속한 50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원이 핵심이다. 이 가운데 즉시 투입 가능한 규모는 1조6000억원에 불과해 추가 펀드 자금 요청(capital call)을 조속히 추진하는 것이 시급하다. 문제는 채권시장안정펀드 출자의 60%를 맡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일부는 은행채를 발행해 펀드에 출자하는 돌려막기식 지원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년에 발행된 은행채 규모는 171조원으로 전체 채권 발행 규모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10월의 경우 그 비율이 신규 발행 채권의 43%로 높아졌다. 따라서 채권시장의 유동성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투입되는 채권시장안정펀드 재원의 상당 부분을 은행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핵심적인 금융시장 정상화 대책이다. 감독 당국이 은행들에 유동성커리지비율(LCR)의 규제비율 정상화를 6개월 유예해준 만큼, 은행들은 채권안정기금의 캐피털 콜을 조기 이행하고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해야 한다.
다섯 번째 도화선은 정부의 대책이 외국 투자자들과 국제금융시장에 납득할 수 있는 정책 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보일 경우, 외국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중요한 달러 공급원인 국채 투자와 단기 외환 공급을 기피함으로써 외환 부족과 환율 급등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도화선은 금융시장 경색 문제가 외환위기로 치닫는 최악의 경우다.
과연 금융 당국은 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킨 위기의 도화선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을까? 하루에 수조 달러가 거래되는 미국 단기자금시장은 2008년 9월14일 단돈 1달러의 공급도 나오지 않음으로써 세계 금융위기를 맞았다. 금융시장의 거래는 신뢰라는 보이지 않는 약속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유동성 위기 절대 용납 않겠다"는 정책 의지 보여야
당면한 시장의 불안을 신뢰로 전환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은 정부가 자금시장의 유동성 위기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밝히고 시장 참여자들에게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금융 당국은 현 단계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하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특히 한국은행은 적격담보증권 대상 확대 시한을 최대한 연장하고 금융안정특별대출과 기업유동성지원기구 재가동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보여 유동성 공급의 최후의 보루로서 시장을 안심시켜야 한다. 유동성 위기가 터지면, 물가안정이 무슨 소용인가?
당면한 금융시장 유동성 위기 사태는 금융 당국의 지도력과 신뢰 문제를 넘어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인 국정운영 역량이 시험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유동성 위기 사태는 대통령이 금융 당국에 맡기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은 금융 당국에 힘을 실어주는 등 적극적인 사태 수습 의지를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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