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반지' VS '하우스오브드래곤', 판타지 대작 전쟁이 남긴 교훈
아이즈 ize 홍수경(칼럼니스트)
왕년에 '반지의 제왕'과 '왕좌의 게임'을 즐겼던 판타지 팬이라면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이하 '힘의 반지')와 '하우스 오브 드래곤' 제작 소식에 마음이 설레지 않았을 리 없다. 충성도 높은 팬이라면 걱정도 앞섰을 것이다. 오랜만에 제작되는 속편이나 스핀오프는 늘 반신반의의 대상이다. 마블 유니버스의 여러 스핀오프나 '브레이킹 배드'의 스핀오프 '베터 콜 사울'처렁 성공적 케이스도 있으나 대개는 원전의 위엄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입지를 다지는데 실패하곤 한다.
공교롭게도 '힘의 반지'와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비슷한 시기에 공개되었다. 8월부터 10월까지 미국 OTT 플랫폼에서 두 편의 대작이 맞붙었다. 특히 '힘의 반지'는 역대 드라마 최고 제작비 기록을 세우며 일찌감치 '돈 좀 쓴다'는 인상을 남겨 더 기대를 증폭시켰다.
HBO 측은 미국내에서 '하우스 오브 드래곤' 첫 에피소드를 약 1000만 명이 시청했다고 발표했다. 외부 시청률 통계 회사 '삼바TV'는 첫 에피소드가 공개된 여섯 시간 동안 260만 명이 시청했다고 집계했다. 이 수치 모두 '왕좌의 게임' 기록을 뛰어넘으며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성공을 예측케 만들었다. 아마존은 전세계 2500만 명이 '힘의 반지'를 시청했다며 승전보를 띄웠다. 국가별 시청자 수는 따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우스 오브 드래곤'보다 많은 시청자가 '반지의 제왕'의 역사적 리부트를 목격했겠다며 추측할 따름이다. 두 드라마는 일요일과 금요일마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같은 시기 공개된 다른 OTT 콘텐츠보다 주목을 받았다. 엘프 족 장군이 중원을 가로지르고, 용이 불을 내뿜는 시간이 두 달 동안 지속되었다.
두 드라마 모두 원작을 사랑하는 어마어마한 팬 층을 거느리고 있고, 판타지 서사물로 장르도 비슷했다. 넷플릭스가 지배한 스트리밍 콘텐츠 시장을 공략하는 야심찬 대작이라는 것도 공통점이었다. 모처럼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의 신작이 아닌, 프라임 비디오와 HBO 케이블 채널의 콘텐츠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언론은 마치 두 작품이 시청률 경쟁이라도 하는 양 뉴스를 내보냈으나 경쟁 구도라 보긴 어려웠다. 구독제 OTT 환경에서는 시청자가 '본방'을 사수할 일이 없으니 하나의 드라마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드라마를 볼 수 없는 게 아니다. TV 방송 시대의 시청률 경쟁은 OTT 시대에 무의미했다. 실제로 '힘의 반지'와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시청자층은 30퍼센트가 넘게 겹쳤고, 시청률 일등보다는 지속가능한 IP 생산품인지, 다시 말해 2022년에도 유효한 콘텐츠인지 검증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평단의 평가조차 비슷했다. 평론가들의 평점을 종합하는 '로튼토마토닷컴' 지수는 두 편 모두 85퍼센트다. 또한 두 작품은 영화 '반지의 제왕'이나 드라마 '왕좌의 게임'만큼 압도적인 찬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시대에 맞춰 각색한 디테일로 주목을 받았다. 방영 당시 가능했던 백인 중심 서사가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운데, 각 제작진은 다양한 인종의 배우를 캐스팅하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때문에 완고한 팬이 던지는 비난의 방향도 비슷했다. 모두 원작에서 백인에 가깝게 묘사되는 인물들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점이 가장 거센 비난이었다. 심지어 원작자인 조지 R. R. 마틴이 총제작자로 참여한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흑인 배우 캐스팅을 두고도 비난을 하는 억지스런 해프닝도 벌어졌다. '힘의 반지'는 불만에 휩싸인 팬들의 악평을 맡으려 했고 이들은 콘텐츠 별점 웹사이트에 몰려가 1점 점수를 주곤 했다. 결국 전체 시청자 별점 평가에 영향을 미쳤고, 덕분에 '하우스 오브 드래곤'이 '힘의 반지'보다 높은 시청자 평점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어떤 작품이 더 성공적이었나? 다른 플랫폼보다 정체성이 모호한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는 '반지의 제왕' 팬을 아마존 웹사이트로 불러들였다. 모처럼 '반지의 제왕' 추억을 되새겼던 이들이 아마존 주력상품인 셋톱 장치 '파이어'를 기대이상으로 구매했는지는 아마존만이 알고 있다. HBO는 여느 콘텐츠보다 화제가 되었던 '하우스 오브 드래곤'으로 명작 드라마 본가의 입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무엇보다 둘 다 오랜 팬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어 원작을 다시 보게 만드는 기능에 충실했다. '힘의 반지'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주요 인물이었던 갈라드리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3부작 영화 연대기를 다시 더듬게 만들었고,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왕좌의 게임'에서 천하를 통일하는 대너리스 타르가르옌 집안만 조명함에도 '왕좌의 게임' 오프닝 곡을 그대로 가져와 추억에 잠기게 만들었다.
팬 층이 확고한 오래된 IP를 부활시키고자 할 때 어떤 부분을 강조해야 하는지 교훈을 주는 각본이었다. 각색 실력은 막상막하지만 연출만 놓고 본다면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 마음이 기운다. 다양한 종족을 아우르기 때문에 다소 산만하고 배우별 연기 편차가 심했던 '힘의 반지'에 비해, 오로지 가문의 승계 다툼에 초점을 맞추며 배우들의 드라마 연기가 돋보였던 '하우스 오브 드래곤'의 흡입력이 좀더 강했다. 그러나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전대표는 1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가는 5시즌 제작을 확정했기에 '힘의 반지'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발전의 여지가 있다.
'왕좌의 게임' 때만 해도 판타지 서사극이지만 유럽의 역사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아시아계 배우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할리우드의 다양성 추구로 아시아 배우에게도 캐스팅 기회가 열렸고 이는 여러 배우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런칭에 성공한 옛날 작품 두 편 모두 다음 시즌에는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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