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한국 무기' 콕 집어 거론하며 왜 발끈했나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오수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을 콕 집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며 발끈하고 나서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린다.
푸틴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러시아 전문가 모임인 '발다이 클럽'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상황과 국제 정세를 논하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할 경우 한국과 러시아 관계가 파탄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한 적이 없고, 앞으로 제공할 의향도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한국을 지목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 의도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폴란드로 한국이 무기를 수출하는 상황을 경계했거나,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말라는 사전 경고 차원 아니냐는 등 해석이 분분하다. 정부 관계자들도 푸틴 대통령의 뜬금없는 주장에 대한 의도를 분석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비무기체계 군수물자만 지원했다.
28일 국방부에 따르면 화생방 장비인 방독면과 정화통, 방탄 헬멧, 천막, 모포, 전투식량, 의약품, 방탄조끼 등의 물품이 우크라이나에 지원됐다. 이들 물품 지원은 모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 국회를 상대로 한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에 맞설 수 있도록 대한민국에서 도와주시면 감사하겠다"며 무기 지원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지만, 한국은 이런 비살상 군용품과 의약품을 대신 보낸 것이다.
현재도 정부는 살상용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거짓 주장'이 전해지자 우리 국방부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를 지원한 바는 없으며 앞으로도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협력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며 현재도 같다"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할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보내려던 캐나다가 지난 5월 155㎜ 포탄 10만 발을 수출할 수 있는지 문의한 적이 있고 이에 따라 결과적으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우회 지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 적도 있지만, 이 수출은 진행되지 않았다.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무기 우회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나온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의 폴란드 무기 수출을 경계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은 폴란드에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3개 편대(총 48기), K239 다연장 로켓 천무 288문을 수출하기로 했고 폴란드는 현재 국산 레드백 장갑차 도입도 검토 중이다.
천무 다연장 로켓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보다 화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폴란드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자국 무기를 지원했고 이에 따른 전력 공백을 한국산 무기로 메꾸려 하는 것이어서 결과적으로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고 푸틴 대통령이 눈을 흘길 수 있는 부분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푸틴 주장이 한국의 방산 수출에 대한 경고 같다'는 지적에 "여러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발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분석해서 적합한 대책들을 가지고 주변국과의 관계를 잘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내 러시아 전문가들은 한국이 그간 우크라이나에 살상용 무기 지원에 나서지 않은 점을 러시아가 내부적으로 높이 평가했으며, 한국과의 관계는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최근 불리한 전황 등으로 조바심을 내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태림 국립외교원 교수는 "러시아는 여전히 북핵 문제 해결에서 무시할 수 없는 관여국이고, 동북아에서 중국 외에 한국이라는 파트너를 남겨두는 게 러시아의 중요한 이해관계"라며 "이런 여지가 소멸하지 않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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