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의 시론>이재명이 만드는 이재명의 ‘운명’
김종호 논설고문
盧 전 대통령 ‘누구도 원망 마라’
文 전 대통령은 失政도 자책 않아
李대표 민주당 ‘방탄 정당’ 전락
측근들의 불법 정황 속속 드러나
또 ‘촛불 시위’ 선동까지 노골화
결과는 ‘씨’ 뿌린 대로 나오는 것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극단적 선택을 하며 남긴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며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서도 굳이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책(自責)했다. 사후(死後) 자서전 ‘운명이다’에서는 ‘이제 노무현은 정의나 진보와 같은 아름다운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다. 정의와 진보를 추구하는 분들은 노무현을 버려야 한다.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운명’ 인식은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당신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 못 하게 됐다”고 했다. 저서 ‘문재인의 운명’을 펴내며, 하기 싫었던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은 자발적 의지가 아니라, 처한 환경 때문이라고 했다. 참담한 국정 실패에도, 문 대통령은 ‘내 탓’은 하지 않았다. 서해에서 업무 수행 중에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 해역에서 발견됐다는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3시간이 지나기까지 방치했다. 결국 공무원은 북한군에 사살됐다. 시신이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참담한 피살도, 더 기가 막히는 문 정부의 ‘월북 몰이’도, 그 혐의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 등이 구속된 것도 다 운명으로 치부하는지 모른다.
지난 대선에서 지고 차기 대선을 노리는, 거짓말을 해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형사피고인이기도 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운명론을 꺼냈다. 그는 ‘불법’ 혐의가 7가지에 이른다. ‘친문(親文) 검찰’이 뭉개온 수사를 윤석열 정부 검찰이 본격화하자 ‘정치 탄압’과 ‘정치 보복’으로 몰아온 그는 민주당을 ‘방탄 정당’으로도 전락시키며, 지난 2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조그마한 샛강이나 개울에서 노를 저으면 내 뜻대로 갈 수 있지만, 이제 너무 큰 강으로 와버렸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운명적 상황에 처한 것으로, 촛불 혁명으로 권력까지 축출한 국민의 크고 위대한 힘이 함께해줄 것으로 믿는다.” 26일엔 옥외집회까지 열어 “우리 국민은 가녀린 불꽃을 들고, 그 강력해 보이던 정권까지 끌어내린 위대한 국민 아니냐” 하고 또 촛불 시위 선동을 노골화했다. 개인의 범죄 혐의인데도 개인 아닌 국민 전체 차원에서 수사를 막아야 하는 일처럼 둔갑시킨 것으로, 혹세무민과 다름없다.
하지만 최종 책임자가 이 대표일 수밖에 없는 측근들의 혐의는 속속 더 드러나고 있다. 이 대표가 “뜻을 함께하는 벗이자 분신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이 대표의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당사자는 부인해도, 법원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체포영장·압수수색영장·구속영장 모두 발부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민주당 당사 내에 있는 김 부원장 사무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영장 집행을 두고, “야당 중앙당사 침탈”로 왜곡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 정당사에 없던 참혹한 일”이라고 매도했다. “국민 여러분이 이 역사의 현장을 잊지 말고 퇴행하는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민주주의의 기둥인 법치(法治)를 거부하면서 적반하장 식의 주장을 폈다. 검찰이 내놓은 ‘입장’ 그대로 ‘검찰은 법원의 영장을 집행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의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재명의, 이재명에 의한, 이재명을 위한 사당(私黨)’ 비판도 받는 민주당이 당연한 법 집행을 트집 잡아 대통령의 국회 시정(施政)연설을 헌정사상 최초로 전면 거부한 것도 이 대표 방탄용으로, 촛불 선동과 함께 반(反)법치·반민주주의 행태다. 운명도 대개 스스로 만든다. 이 대표의 현재는 물론 향후 운명도 마찬가지다. 뿌려왔고 뿌릴 ‘씨’의 결과다. “불법 자금은 1원도 받은 일 없다”는 해명 등이 거짓말이 아닌 것으로 확인돼 큰 꿈에 계속 도전할 수 있을지, 야당 일각에서도 나온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내려와 달라”는 요구가 정치적·법적으로 현실화할지도 그 씨에 달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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