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헤르손에서 포툠킨 장군 유해를 빼낸 이유는?
최근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을 둘러싼 대치가 격화되면서 러시아군이 성 카타리나 성당에 보관돼 있던 18세기 러시아 장군 그리고리 알렉산드로비치 포툠킨의 유해와 기념물을 반출했다. 그 이유를 두고 옛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포툠킨은 18세기 헤르손과 오데사를 건설한 장군으로 1783년 연인 예카테리나 대제에게 크름반도를 합병하도록 조언한 인물이다. 그 결과 러시아의 영토가 현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이 지역으로 확장됐다.
이러한 포툠킨의 업적이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 대통령에게는 매우 생생하다고 NYT는 분석했다. 러시아가 헤르손 일대에서 수세에 몰리고는 있지만 ‘정당한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믿음이 크렘린궁 충성파에게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포툠킨의 유해를 훔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 성 카타리나 성당을 방문한 이들의 설명을 보면 포툠킨의 유해를 찾기 위해선 바닥에 있는 다락문을 열고 좁은 통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십자가가 표시된 목관 안에 포툠킨의 두개골을 비롯한 유해가 번호를 매긴 채 보관돼 있었다.
러시아가 임명한 헤르손 지역 대표 블라디미르 살도는 “우크라이나군이 진군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포툠킨의 유해를 옮겼다”고 러시아 방송에 밝혔다. 현지 우크라이나 활동가들 또한 성당이 약탈됐으며 유해뿐만 아니라 동상까지 사라졌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과거에도 포툠킨에 관심을 보였다. 책 ‘예카테리나 대제와 포툠킨’을 저술한 역사학자 사이먼 세벡 몬테피오리는 2000년 책이 출간된 직후 인터뷰에서 자신이 크렘린궁에서 ‘푸틴이 이 책을 존경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몬테피오리는 “푸틴이 역사를 읽는 방식은 매우 결함이 크다. 그가 일으킨 전쟁이 포툠킨이 건설했던 우크라이나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고 NYT에 밝혔다. 이어 그는 “포툠킨이라면 푸틴이 지지하는 모든 것을 경멸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툠킨과 예카테리나 대제는 이 지역을 지중해로 향하는 창이자 여러 인종과 국적을 가진 이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코스모폴리탄으로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몬테피오리는 “포툠킨이 건설한 도시를 파괴함으로써 푸틴은 과거의 영광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맡게 됐다”고 비판했다.
포툠킨 유해 약탈은 우크라이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지난 2월 침공 이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정교회, 국가기념물 및 문화유산 등 우크라이나의 국가적 보물을 파괴했다. 지난 24일 기준 문화재 200곳 이상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유네스코는 보고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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