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장인열전] 전통 목조 건축에 인생 건 이연훈 대목장(끝)

변우열 2022. 10. 2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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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 목수 입문해 반세기 외길…문화재·사찰 등 100여채 보수
"목조건축의 핵심은 이음과 맞춤…분야별 정리해 후대 남길 것"

[※ 편집자 주 = 자고 나면 첨단제품이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옛 방식을 고집스럽게 지키면서 전통의 맥을 잇는 장인들도 있습니다. 비록 이들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지 않더라도 조상의 혼이 밴 전통문화를 후대에 전수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들이 선보이는 전통문화의 가치와 어려운 여건에도 꿋꿋하게 외길을 걷는 모습을 소개함으로써 사회적 관심과 예우 분위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충북 장인열전'을 매주 금요일 송고합니다.]

작업하는 이연훈 대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청주=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숭례문(남대문) 화재가 난 2008년 2월 10일 밤 그는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TV를 통해서 본 불타는 숭례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많은 국민이 소중한 문화재가 화재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봤지만, '도편수'인 그에게는 더욱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숭례문을 짓고, 500여년 지켜오는데 얼마나 많은 장인의 땀과 정성이 들어갔을지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 목조 건축에 인생을 건 충북 유일의 대목장 이연훈(65·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씨다. 지난해 9월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대목장) 기능보유자로 선정됐다.

대목장은 나무를 마름질하고, 다듬을 뿐 아니라 건축 공사의 설계, 감리까지 겸하는 목수로 궁궐, 사찰, 군영 등을 짓는 작업을 총괄하는 장인을 말한다.

가구, 난간, 창호 등을 만드는 소목장과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다. 예로부터 도편수라고도 불렸다.

도편수들은 전체 공정을 지휘하면서 대들보, 기둥 등 건축물의 뼈대를 직접 만든다.

이연훈 대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이 대목장에게 전통 목조 건축의 핵심은 '이음'과 '맞춤'이다.

집을 한 채 짓는데 수백, 수천 개의 목재가 들어간다.

못을 전혀 쓰지 않는다. 대신 나무를 깎아 홈을 내고, 이를 맞춰 조립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는 이음새들이 튼튼해야 훌륭한 건축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라도 잘못되면 기둥을 뽑아버려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건축하면서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정도의 견고함과 아름다운 한옥 특유의 곡선미를 연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그가 가장 자랑하는 목공기법이 '배흘림'이다.

중간이 굵고, 위아래로 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기둥이 대표적으로 대흘림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48년째 나무와 인생을 함께하면서 100여 채의 문화재와 사찰 등 전통 건축물을 보수·복원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청주 동헌(청녕각), 보은 향교, 음성 잿말 고택, 영동 용모재 솟을대문 등 충북의 웬만한 문화재급 건축물 보수는 그의 손을 거쳤다.

청주의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는 초정행궁의 복원사업에도 참여했다.

초정행궁은 세종대왕이 눈병 치료를 위해 1444년 청주에 행차해 121일간 머문 역사기록에 기초해 청주시가 2020년 복원했다.

목조 맞춤 작업하는 이연훈 대목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문화재 보수는 건축 당시 도편수의 생각을 좇아가야 한다"며 "몇백 년 전 목공들의 기술을 확인하면서 감탄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전통 목조 건축의 가치를 이어가기 위해 문화재 보수만큼 한옥 신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으로 한옥 50여 채를 지었다.

그가 목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8세가 되던 1975년이다.

당시 괴산의 시골에서 마땅히 하는 일이 없던 그에게 같은 마을의 형이 "일거리가 있는데 함께 해보겠느냐"라고 권유했다.

동네 형은 그의 평생 스승이 된 고(故) 신재언(1947∼2018년·2011년 대목장 지정) 대목장이다.

그렇게 처음 참여한 공사현장은 사찰인 충주의 정심사다.

그는 "예전에는 사찰공사가 대부분이었어요. 한번 공사에 들어가면 수개월씩 집에 가지 못하고, 20평도 안 되는 절을 1년간 짓기도 했다"며 "현장에 마땅한 숙소가 없으면 합판으로 숙소를 지어 생활하고, 좋은 나무를 고르기 위해 제재소에서 며칠을 보내기 일쑤였다"라고 말했다.

정성들여 작업하는 이연훈 대목장 [촬영 천경환 기자]

목수 일을 10년쯤 했을 즈음 도편수로 성장할 기회가 찾아왔다.

스승인 신 대목장이 2년여간 해외에서 지내게 되면서 평소 제자들 가운데 가장 눈여겨봤던 그에게 현장 책임을 맡겼다.

"사부님 없이 다른 목수 등을 지휘하며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구를 많이 하고, '한옥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더 큰 깨달음도 얻었어요"

그는 스승이 귀국한 이후에 독립해 도편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통 건축물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무'라고 답을 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더라도 나무가 뒤틀리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한옥도 재료가 좋아야 훌륭하게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옥 건축에 주로 쓰이는 소나무는 천년을 살고, 목수의 손을 거쳐 또 천년을 산다는 말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작업 도구 가운데 '먹통'과 '곡자'를 가장 아낀다.

먹통은 자르고, 홈을 파는 등 작업할 부분을 목재에 먹을 먹이는 도구다.

목수들은 나무에 재단할 설계도를 그리는 것을 '먹을 먹인다'고 말한다.

곡자는 나무를 재단하는 부분의 각도를 재는 기구다. 수많은 나무를 이어 집을 지으려면 어느 한 부분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균형을 유지하기 힘들다.

망치질하는 이연훈 대목장 [촬영 천경환 기자]

이 대목장은 "집을 짓는 것도 세상의 모든 이치와 같다"며 "좋은 재료를 마련하고, 훌륭한 설계와 한치의 뒤틀림이 없는 정확한 시공이 뒷받침돼야 좋은 집이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문화재 보수는 '예술적 작품'과 '역사적 증거물'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화재가 지어졌을 당시의 건축 기법들을 연구해 후대에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소명이 전통 건축을 이어가는 '이음새'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10여년 전부터 한옥문화원 강좌, 국토교통부 한옥시공 관리자과정과 한옥 설계 전문인력양성과정, 서울 성북구청 한옥아카데미 등 기회가 닿는 대로 전통 건축 교육프로그램의 강사 등으로 나서고 있다.

나무 살펴보는 이연훈 대목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은 과거 한옥의 구조와 맞춤, 이음을 분야별로 정리하고 모형으로 제작해 누구나 쉽게 보고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목장은 "현장에서 길어야 10년 정도밖에 더 일하겠어. 전통 건축을 후대로 이어가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됐으면 내 역할은 다하는 거지"라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bw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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