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가족', 성공적인 반전 캐스팅과 구원 판타지 [시네마 프리뷰]

정유진 기자 2022. 10. 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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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가족' 스틸 컷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단에 텐트를 쳐놓고 사는 가족이 있다. 가장인 아빠 기우(정일우 분)는 낮이 되면 휴게소 주차장에 가서 관광객들에게 말을 건다. 사람들은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2만원만 빌려달라'는 그를 한심한 듯 보지만, 아빠 옆에 서 있는 두 아이들과 임신한 아내 지숙(김슬기 분)을 보고 마음이 약해져 종종 돈을 주고 만다. 영선(라미란 분)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기우의 구걸을 무시하고 돌아서려던 그는 왠지 안쓰럽게 느껴지는 두 아이의 모습에 연민을 느껴 5만원짜리 하나를 더 꺼내 7만원을 건넨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큰 화장실이 있고 매점과 식당도 있어 온가족이 노숙을 하기에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가족의 허름한 옷차림과 엉뚱한 텐트 생활은 곧 담당 공무원의 눈에 띄게 되고, 퇴거 명령 집행으로 이어진다. 이 휴게소에서 저 휴게소로, 고속도로 위를 전전하는 식구들의 삶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그러던 중 영선이 또 한 번 아이들을 데리고 관광객들에게 돈을 빌리는 기우를 보게 된다. 남편 도환(백현진 분)과 함께 중고 가구점을 운영하며 사는 영선은 사업수완이 좋아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지만, 마음 한켠에 아들을 잃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선은 차가 다니는 휴게소에 아이들을 방치한 기우와 지숙에게 화를 내고 7만원 얘기를 꺼내지만, 도리어 기우는 발뺌을 하며 뻔뻔스럽게 군다.

기우의 모습에 분노한 영선은 기우를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사범으로 수배가 내려져 있던 기우는 그길로 구치소에 수감된다. 신고자로 조사를 받고 경찰서를 나오던 영선은 오갈 데 없는 지숙과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쓰이고 이들을 가구점으로 데리고 온다. 가구점 한 켠 작은 방에서 살게 된 지숙과 아이들은 오랜만에 경험하는 안정적인 생활과 영선의 따뜻한 보살핌에 덕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고속도로 가족'은 반전 캐스팅이 돋보이는 영화다. 배우들이 줄곧 '어필'해왔듯 라미란과 정일우, 김슬기 등은 모두 기존에 보여줬던 것과 다른 캐릭터들을 보여주고, 이들의 이런 변신은 성공적이다. 정일우는 현실적으로 가족을 부양할 능력은 없지만, 누구보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기우를 연기했다. 정신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기우는 변화의 폭이 큰 캐릭터인데, 정일우는 이 같은 캐릭터를 드라마틱하게 연기해 배우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그의 아내 지숙을 연기한 김슬기 역시 수다스러웠던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무기력하고 지쳐있는 임신부 지숙을 섬세하게 연기해냈다.

노숙자와 임신부, 어린이와 장애인, 외국인 등 영화 속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이다. 영화는 우리 사회 안의 다양한 약자들을 두루 비추며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드러낸다. 큰 빚을 지고 노숙을 하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은 비록 끼니 걱정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지만, 서로가 있어 즐겁고 행복하다. 낡은 텐트 안에서 가족들이 춤을 출 때 하늘에 떠 있는 커다란 달, 텐트마저 잃어버려 풀밭에서 노숙을 하는 아빠와 딸의 머리 위를 가득 채운 반짝이는 별들은 아름답고 낭만적이다. 이는 영화가 이들의 삶을 비참하게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부딪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가족은 찢어지고, 그런 이들에게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간직한 영선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영선의 캐릭터는 조금 애매하다. 아이를 잃은 아픔을 간직한 그는 종종 그 문제로 인해 남편과 갈등을 겪지만,이는 영화 안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을 뿐더라 빠르게 해결된다. 영선이 가진 결핍은 오로지 지숙과 아이들을 돌보기 위한 동기로서, 기능적인 작용을 할 뿐이다. 경제적인 능력과 연민을 가진 영선은 마치 절대적인 구원자처럼 그려진다. 그 때문에 기우와 지숙 가족이 겪어온 문제들도 -현실에서와 다르게- 손쉽게 해결돼버린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누군가의 선행으로 빈곤이 해결될 수 있다는, 다소 판타지적이고 평범한 주제로 귀결되는 듯해 아쉬움을 준다. 다만, 비현실적인 캐릭터를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연기한 라미란의 개성이 이런 밋밋함을 상쇄하기는 한다. 러닝타임 129분. 11월2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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