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말라·솔직하자는 尹 “국토부도 ‘인프라건설산업부’ 돼야” 농담에 ‘웃음꽃’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오후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모두발언에서 관계부처 장관 및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들에게 이러한 발언을 던지며 회의를 시작했다.
세계 경제 흐름과 맞물려 '빨간 불'이 켜진 한국 경제의 분위기를 의식한 듯 딱딱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관계 부처 장관 및 참모진은 비로소 웃음기를 보였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2층에서 열린 회의는 각 방송사를 통해 80여 분간 전체 내용이 생중계됐다. '경제 활성화 추진 전략 및 점검회의'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간 매주 열렸던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의는 통상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번 '생중계 회의'는 윤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장은 별다른 꾸밈 없이 단출했다. 회의 내내 음악이나 영상 등도 깔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출근길 문답에서 "쇼 연출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해놨다"고 밝혔다.
하늘색 넥타이를 맨 윤 대통령은 "아까 언론 보도를 보니까 제가 우리 장관들을 골탕 먹일 질문을 막 던질 것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던데, 오늘 여러분들 말씀을 저도 국민과 함께 잘 경청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늘색은 윤 대통령이 그간 취임식이나 국회 시정연설 등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있을 때마다 착용하곤 했던 넥타이 색깔이다.
먼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파워포인트로 제작한 경제활성화 추진 전략을 보고했다. 이어 이창양(산업통상자원부)·원희룡(국토교통부)·이영(중소벤처기업부)·이정식(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산업별 현황 및 구상을 밝혔다.
▲주력산업 수출전략 ▲ 해외건설·인프라 수주 확대 ▲ 중소·벤처기업 지원 ▲ 관광·콘텐츠산업 활성화 ▲ 디지털·헬스케어 산업 발전 방안 등이 제시됐다.
회의 초반에 "조금 더 들어보겠다"며 말을 아끼던 윤 대통령은 총 9차례에 걸쳐 즉석으로 발언(모두·마무리 발언 제외)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지시뿐만 아니라 '기습 질문'도 종종 내놨다.
윤 대통령은 장관들을 향해 "원전과 방산 패키지 수출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산업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정부 모든 부처가 합심해야 한다", "중기부 장관도 기재부에 강력히 요청해 세제 지원을 대폭 이끌어내라" 등의 지시를 이어갔다.
또 이창양 산업부 장관을 향해 "핵심 광물에 대한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다양한 종합적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하자, 이 장관은 "핵심 광물은 첨단 산업의 씨앗"이라며 "핵심 광물 없이 첨단 산업이란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답했다.
벤처 투자 활성화 대책과 관련해서는 "투자 수익에 대해 과감한 세제 혜택을 주면 정부는 손해 볼 것은 없지 않습니까"라며 "중기부 장관도 기재부에 강력히 요청해 세제 지원을 대폭 이끌어내라"고 지시했다.
이영 장관은 "(예산 지원을) 강력하고 확실하게 해주면 펀드 조성을 확실히 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공석인 교육부 장관을 대신해 참석한 장상윤 차관에게는 "디지털 교과서가 되면 학생들이 책가방을 안 들고 다니냐"며 "교육 과정에서 획기적인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장관들 뒤편에 앉아있던 공기업 사장, 각 부처 국장급에게도 질문이 향했다.
회의를 진행하던 최상목 경제수석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에게 원전 수출 성과에 대해 물었다. 또 김상문 국토부 건설정책국장에게는 국제 유가와 글로벌 인프라 투자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다.
김 국장이 "해외건설 수주액과 유가는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상관 계수가 0.84로 높다"고 답하자, 윤 대통령은 "1이면 100%(라는 이야기인데) 이 상관관계가 꼭 산유국에만 해당하는 것이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대통령과 국장급 공무원이 발언을 주고받는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때때로 웃음 섞인 농담도 나왔다.
추경호 부총리가 "국방과 산업이 결합된 국방부를 조만간 '국방산업부'로 바꿔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자, 윤 대통령이 “국토교통부도 ‘인프라건설산업부’가 돼야 하고"라고 언급하면서 회의장 일대에는 웃음이 일었다.
기재부를 향해 장관들의 예산 지원 요구가 이어지자 추 부총리는 "국토부 장관께서 제 눈을 보며 절절하게 돈 달라고 한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최 수석은 생중계 시간인 80분이 끝나가자 "논의가 뜨거워지면서 예상보다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는 쪽지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4분 남았다'는 최 수석의 말에 "2시간 하기로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빨리 끝나나"라고 되물었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오늘 시간이 짧아서 각 부처에서 준비한 전략과 아이디어들을 많이 듣고 싶은데 좀 아쉽긴 합니다만, 부족하면 비공개로 더 해도 된다. 오늘 수고들 많이 했다"며 회의를 끝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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