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럼프가 좋아요", 바이든이 싫은 빈 살만 [박영서의 글로벌 아이]

박영서 2022. 10. 2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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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산 말라는 바이든 요구 철저히 무시
美, 기업들 사우디사업 확장말라 요구
사우디, 미국인에게 16년형 중형 선고
빈 살만, 2년 후 美대선서 트럼프 밀듯
끝나가는 77년 안보와 경제 교환 관계

산유국 협의체 'OPEC플러스'(OPEC+)가 원유 생산량을 대폭 줄이기로 결정하면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관계가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적어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는 양국 관계 회복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77년 동안 지속된 동맹에 금이 간 이유가 궁금해진다.

◇감산 결정이 몰고온 파장

이 모든 것은 감산 결정에서부터 시작됐다. OPEC 플러스는 오는 11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을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 세계 원유 하루 공급량의 2% 정도의 규모로, 역대급 감산이었다. 감산하지 말라는 미국의 제안은 철저히 무시됐다. 감산 억제를 위해 사우디 방문까지 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보기 좋게 뒷통수를 맞았다. 사우디의 행동은 '배신'이었고 미국에 '굴욕'을 안겨 주었다.

오는 11월 8일 예정된 중간선거를 의식해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내 휘발유 가격 통제에 노력해 왔다. 그런데 감산 결정은 이 같은 노력에 재를 뿌렸다. 휘발유 가격이 다시 상승하면 집권 민주당의 타격은 불보듯 뻔하다.

발끈한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민주당은 사우디의 감산 결정이 러시아를 돕기 위한 것이라면서 무기 판매를 포함해 사우디와의 모든 협력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백악관은 미국 기업들이 사우디와 연관된 사업을 확장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우디는 맞불을 놓았다. 자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구금한 미국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이다. 지난 17일 사우디 법원은 트위터에 자국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한 사우디계 미국 시민권자 사드 이브라힘 알마디(72)에게 징역 16년 형을 선고하고, 이후 16년 동안 해외여행을 금지했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된다면 양국 관계가 극으로 치달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은 싫고, 트럼프는 좋다

이번 감산의 가장 큰 이유는 유가 폭락 방지에 있었을 것이다. 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지난 3월 배럴당 130달러까지 치솟았다. 유가 급등은 산유국들에겐 어부지리였다. 그러나 유가는 이후 평정심을 되찾아 80달러로 하락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우디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우려감을 심화시켰을 것이다.

사우디는 2008년 리먼 쇼크가 일으킨 유가 폭락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유가는 배럴당 40달러로 떨어졌고,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에겐 비상이 걸렸었다. 이런 과거사를 보면 사우디 입장에선 이번 OPEC플러스 회의에서 가격 폭락의 재발을 막는 것이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러나 감산 결정은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과 빈 살만 왕세자간 개인적 불신과 적대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왕세자는 2년 후 미국 대선을 바라보고 있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을 패배시키고,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해 바이든을 압박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바이든을 축출하고 사우디에 우호적인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에 앉힐려는 승부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 민주당 인사들은 사우디가 미국의 간절한 요청을 무시하고 유가를 높게 유지함으로써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힘을 뺄려고 작심했다는 의혹을 보내고 있다. 나아가 대선에서 싫어하는 바이든 대신 '절친'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본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민주주의, 인권 등을 중시하는 정치인이다. 반체제 인사들을 살해하고 납치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등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즐기는 왕세자와 당연히 맞지 않는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왕세자를 싫어했다.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왕세자가 지목되자 당시 바이든 후보는 대선 토론회에서 "국제적으로 왕따시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냉랭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9·11 테러와 관련해 사우디를 비판했지만, 대통령이 되자 사우디와의 관계를 급속히 심화시켰다. 그 역할은 주로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맡았다. 그는 왕세자와 친구가 됐다. 사우디 사막의 텐트에서 함께 밤을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카슈끄지 암살 사건이 일어나자 왕세자를 옹호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려고도 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해 백악관을 떠난 후에도 우호적 관계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사우디 국부펀드는 쿠슈너의 사모펀드에 20억 달러(약 2조8380억원)를 지원해 '의리'를 과시했다. 왕세자가 원하는 대로 트럼프가 오는 2024년 대선에서 승리해 백악관으로 돌아온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은밀해질 것이다.

◇77년 동맹 관계는 '주고받는 거래'였을 뿐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1945년 2월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우디의 첫 국왕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와 만나면서 본격화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2차대전 종전을 논의한 '얄타 회담'을 마친 후 귀국 중에 수에즈 운하에 정박했다. 정박한 미 해군 함정 '유에스에스(USS) 퀸시'에 2m가량의 거인이 올라 왔다. 사우디 왕정을 세운 사우드 국왕이었다.

이는 미국과 사우디의 정상 간 첫 만남이었다. 국왕은 몰고온 양떼를 배에서 도축해 미국 대통령을 접대했다. 3일 동안의 만남에서 미국은 석유를, 사우디는 안보를 챙겼다. 국왕은 '알라의 축복'인 석유 채굴권을 미국에 넘겼고, 석유도 싼 가격에 공급해 주기로 했다. 당시 아랍인들 사이에는 반영(反英) 감정이 팽배해 있었다. 때문에 영국이 아닌 미국에 채굴권을 넘긴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왕정 체제 유지를 위한 군사 원조를 약속했다. 양국의 동맹은 이렇게 시작됐다. 전형적인 안보와 경제의 교환이었다. 사우드 국왕은 1953년 협심증으로 77세로 사망했다. 그는 최소 17명의 부인이 있었고, 그 사이에서 100명에 가까운 자식을 두었다. 그중 공개된 아들은 45명이다. 자손들은 번창해 현재 약 2만명의 왕족들이 있다. 세월은 흘러 손자인 빈 살만 왕세자가 사우디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를 능숙하게 헤엄치고 있다. 서방의 대(對)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채 푸틴 대통령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감산 카드로 미국을 코너로 몰면서 실리를 챙기려하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선 바이든 재임 중에는 양국 관계 회복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미국과 사우디는 서로를 이용해 먹었다. 77년 이어진 동맹 관계가 '서로 주고받는' 거래 관계였다는 의미다. 주고 받는 관계가 삐걱거리면 동맹의 값어치는 떨어진다. 때문에 전략적 관계를 재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사우디가 돌아올 것으로 낙관하나 사우디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결국 '헤어질 결심'만 남는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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