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설립 26년째 표류… 김해시 “공공의료원 짓겠다”
“밤에 아픈 아이 안고 양산 달려가”
코로나 땐 창원까지 가서 치료도
지난 25일 오전 김해시 북부동. 대단지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해 동(洞) 단위로는 전국에서 둘째로 많은 8만3400여 명이 사는 이곳엔 방치된 넓은 공터가 있다. 공터엔 잡초가 무성하고 각종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불법 경작 중인 텃밭도 있었다. 이 땅은 당초 인제대 재단인 학교법인 인제학원이 1996년 병원을 짓겠다며 141억원에 김해시로부터 매입한 3만4000㎡ 크기의 종합의료시설용지다. 지난해 말 부동산 투자회사에 팔렸지만, 여전히 도심 속 폐허로 남아 있다.
인구 50만 이상 비수도권 대도시 중 유일하게 대학병원은 물론 공공의료원조차 없어 ‘의료 삼류도시’라 불렸던 경남 김해시에 공공의료원 건립이 가시화하고 있다. 대학병원 예정 부지가 26년간 방치되는 등 대학병원이 없는 상황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각종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 대처할 의료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역 주민 요구가 커지자 나온 대안이다.
김해시는 “공공의료원 설립을 위해 보건관리과장을 총괄팀장으로 하는 ‘공공의료원 TF’팀을 구성해 운영에 들어갔다”고 27일 밝혔다. TF팀은 설립추진반·설립지원반·홍보관리반으로 이뤄졌다. 전담 부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타당성 연구 용역과 부지 발굴 등 공공의료원 설립과 관련한 행정 전반의 업무를 맡게 된다.
김해공공의료원은 300병상 규모로 추진된다. 경남 중부권의 마산의료원, 서부권에 건립 추진 중인 진주공공의료원과 함께 김해공공의료원은 동부권 공공의료체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김해시 공공의료원 건립은 홍태용 김해시장이 지난 6·1지방선거 당시 후보 때부터 역점 공약으로 내세웠던 사업이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 역시 김해 공공의료원 설립을 민선 8기 복지 분야 도정 과제로 정했다. 김해에서는 ‘의료 인프라 확충’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지역 숙원 중 하나였고 최근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 가고 있다는 얘기다.
김해시에 따르면 인구 50만명이 넘는 비수도권 도시(충남 천안, 충북 청주, 전북 전주, 경남 창원, 경남 김해) 5곳 중 대학병원은 물론 공공의료시설조차 없는 유일한 도시가 김해시다. 인구 49만명대의 경북 포항시에도 공공의료원이 운영되고 있다.
부산에서 살다가 남편을 따라 김해로 이사 온 박수지(32)씨는 “아이가 밤에 갑자기 열이 오르고 축 늘어져 급히 보건소 등에 연락을 돌렸지만 야간에 아이를 받아줄 수 있는 응급실이 없는 것에 놀라고 절망했다”며 “양산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야 겨우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유행이 한창일 때 김해 시민들은 감염병 전담병원이 없어 치료를 위해 창원이나 양산은 물론 멀게는 전북과 충북까지 원정 진료를 가야 할 정도로 불편했다.
김해시가 공공의료원 건립에 더욱 사활을 거는 데는 큰 기대를 모았던 대학병원 2곳의 건립 가능성이 갈수록 요원해지고 있는 상황도 반영됐다. 학교법인 인제학원 병원 부지뿐만 아니라 장유2동 한 아파트 단지 앞에도 비슷한 곳이 있다. 이 땅 역시 동아대 재단인 동아학숙이 2001년 39억여 원에 매입한 1만695㎡ 크기의 종합의료시설용지이지만 21년째 개발되지 않고 방치 중이다. 김해시에 따르면 두 곳 모두 현재 도시계획시설상 종합의료시설용지로 지정돼 있지만, 예정했던 대학병원 건립 추진 움직임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최근 시의회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대학병원 부지의 장기간 방치 문제를 지적한 김동관 김해시의원은 “50만 도시에 걸맞은 의료복지 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시민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대학병원 부지 문제를 해결하거나 공공의료원 건립을 서두르는 등의 대안 실행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해공공의료원은 지역에서 가장 요구가 많은 24시간 진료 가능한 소아과를 비롯해 산부인과 진료, 감염병 대응 및 전담치료 등의 기능을 맡도록 한다는 게 김해시의 구상이다. 또 7600여 개에 달하는 중소기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작업치료 및 건강검진을 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홍태용 김해시장은 “내년에 타당성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절차를 2024년까지 완료해 국비 확보와 함께 공공의료원 설립 시기를 최대한 앞당길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경남도·복지부 등 관련 기관과 설립 협의부터 부지 발굴 및 선정까지 공공의료원 건립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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