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청년을 소비하는 방법[광화문]

양영권 사회부장 2022. 10.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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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빌라에서 29세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청년이 숨진 것은 그보다 나흘 전이었는데,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 집주인과 가족에게 보낸 예약문자가 도착한 뒤에야 죽음이 알려졌다. 실업급여를 신청했다는 점으로 미뤄 청년은 최근 직장을 비자발적으로 그만둔 듯하다. 유서에는 몸이 아파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보고 청년의 시신을 부검하지 않았다.

복지포털 복지로에 들어가 서비스 목록을 살펴보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 4817건이 검색된다. 중앙부처가 제공하는 것만 364건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청년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어디에도 소속돼 있지 않았던 청년의 죽음에 네티즌들만 관련 기사 댓글로 추모를 할 뿐이었다.

시나리오작가 최고은 씨가 지병을 앓다가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문 좀 두들겨 달라'는 쪽지를 남기고 아사한 게 2011년이다. 사회적인 추모가 이뤄지고 복지제도를 늘리는 등 호들갑을 떨었지만, 몸이 아프고 가난한 청년에게 놓인 현실은 1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버겁다. 다른 많은 청년도 인스타그램에 보이는 화려한 사진들과 달리 막대한 주거비와 학자금 상환 부담 등으로 억눌려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와 문화의 영역에서 수없이 '청년'이라는 개념을 내걸었지만 새로운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고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이미지만 소비될 뿐이었다. 수년 전부터 사용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라는 표현 또한 그 자체로 사회의 주체가 아닌, 마케팅의 객체로서 '시장'의 의미를 지닐 따름이다. MZ세대론은 청년이 누군가에 의해 '다루어지는' 존재임을 전제한다. '청년' 또는 'MZ'에 흔히 따라붙는 표현인 '감성'은 '자극을 주면 수동적으로 변화하고 욕구를 갖게 되는'의 뜻을 내포한 마케팅의 개념이다. 흔히 '갬성'이라고 조롱 조로 말해지듯 진위와 선악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의 개념을 내포한 '이성'에 비해 열등하게 취급하기 일쑤다. 그렇게 보면 청년이라는 영역은 노동력이라는 생산요소를 취하고 상품시장으로서 기능하는 식민지나 다름없다.

과거의 청년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본과 역량을 축적해 다수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훈계가 어느 정도는 정당했다. 미래의 열매를 위해 아픔을 감내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후하박'의 인구구조를 볼 때 시간이 흘러도 이 시대의 청년은 언제나 소수의 머물 운명이다. 군대식으로 말하면 '꼬인 군번'인 청년은 미래에도 희망을 걸 수도 없다.

크게 봐서 청장년은 기여를 하고 노년은 혜택을 보는 방식으로 짜여진 현재의 복지제도는 유효기간이 곧 만료된다. 현재의 인구 추세가 계속된다면 청년들에겐 영원히 부양의 의무만 부여될 뿐이다.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현재대로라면 20대가 수급자가 되기 전인 2057년 이전에 고갈된다. 청년층에 기여를 강요할 명분이 없다.

뒤늦게 보건복지부 장·차관의 진용이 갖춰짐으로써 윤석열 정부 복지 개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포퓰리즘성 선거 공약으로 누더기가 된 복지 체계를 대대적으로 통폐합하고 일할 수 없거나 소득이 적은 약자를 위한 지원에 집중하겠다는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연금 구조개혁도 "서둘러 나서야 할 시점"(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비서관)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복지의 목표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하게 하는 데 있다. 미래가 없다면 사회는 지속될 수 없다. 흔히 청년을 미래라고 하는데, 절대 부인할 수 없는 말이다. 많은 연구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유로 경제적 궁핍과 함께 소속감 단절을 꼽는다. 청년이 경제적 속박에서 벗어나고 소속감을 갖게 하는 게 곧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새 정부의 복지제도는 그런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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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사회부장 indepe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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