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죽음 권하는 사회와 헌법상 생존권
또 안타까운 부고가 연이어 날아들었다. 대표적 제빵회사의 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빵 만드는 곳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운용하지 않고 영리만을 추구하는 비인간적 기업경영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편 모범적 탈북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던 여성이 오래전에 고독사한 채 발견되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규명이 필요하지만 목숨을 걸었던 탈북이 이런 죽음을 예견하고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만일 송파나 수원의 세 모녀 사례와 같이 생활고에 따른 죽음이라면 그동안 생사의 사각지대에 내몰린 동료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논의들이 얼마나 허망한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성공적으로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달성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도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우리 주변 너무 가까이에서 빈발하고 있다는 현실의 냉혹함을 일깨워주는 사례는 재해사나 생계곤란사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다. 자살률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사회적 위기를 추론할 수 있는 주요한 지표이다. 우리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019년 기준 25.4명에 이르며, 이는 OECD 평균인 11.5명의 2배를 넘고, 다음 순위로 자살자 수가 15.4명인 헝가리와의 격차도 상당하다. 우리의 자살률이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였고 2000년에 비해 약 2배 증가한 수치라는 것은 이러한 추세가 현재진행형임을 시사한다.
감염병으로 인한 민생고는 물론 최근 전 세계적으로 악화된 경제상황의 여파가 사회적 취약계층에 더욱 강하게 미칠 것을 감안하면 죽음 권하는 사회의 불편한 실상에 대한 성찰이 시급히 요청된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헌법의 제일 첫머리 제1조 제1항에 선언된 이 명제는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랫말로 불릴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그러나 정작 민주공화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이해는 얼마나 충분한가? 죽음 권하는 사회의 실상으로는 민주공화국임을 자부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헌법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공화국은 흔히 군주국과 구별되어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정치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주권의 소재만으로 민주공화국을 이해하는 건 명목상이나마 주권을 인민에게 부여하는 인민공화국과의 구별도 모호하게 되는 한계를 지닌다. 결국 민주공화국은 전통적 의미 이상의 현대적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 헌법은 제헌헌법 이래로 민주공화국의 현대적 의미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 바로 민주복지국가의 이념이다. 민주공화국이 민주복지국가가 되려면 명목상으로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주권이란 국가의사를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권위를 가지는 권력인 만큼 필요할 때만 말끝마다 국민을 들먹일 것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충분한 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내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권 보장이라는 민주공화국의 현대적 의의, 즉 민주복지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참여권을 향유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박애와 연대정신에 따라 보듬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사회적 연대의 책임은 국가나 사회가 사회적 약자를 불쌍히 여겨서 베푸는 단순한 도덕적 시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기 위해 국가가 실질적으로 이행해야 할 기본책무라는 점이다.
민주공화국이라면 주권자 국민이 온전히 그 헌법적 지위를 누릴 수 있도록 기본적 생존권을 위한 사회보장과 복지를 보장해 주어야 할 적극적 책무를 가지며, 주권자 국민은 그러한 국가의 책무의 적극적 이행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가진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이며,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근로조건에 맞게 근로할 권리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와 같은 다양한 생존권을 명문의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헌법상 생존권을 충실히 보장하는 입법과 실천에 매진하여 죽음 권하는 사회의 오명을 하루빨리 떨쳐 버릴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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