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의 외교만사] 시진핑 3기 체제의 등장과 한국의 선택

기자 2022. 10. 2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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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중국발 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처럼 강력한 시진핑 집권체제가 성립할 줄은 어느 누구도 예측 못했을 것 같다. 중국 핵심 지도부는 리창, 차이치, 왕후닝과 같이 시진핑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을 기준으로 채워졌다. 전문가들은 권력을 강화한 시진핑이 향후 보다 공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결코 굴복하지 않고 중국만의 방식으로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언명이나, 군사력의 지속적인 강화, 대만에 대해 비평화적 방식의 통일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주장 등은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여전히 중용된 시진핑의 책사 왕후닝의 이상이 원(元)나라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영감을 안겨주고 있다.

김흥규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학자
그러나 20차 당 대회의 보고서와 그 이전 주요 지방 지도부에 행한 시진핑의 발언들을 분석해보면 시진핑 3기 중국은 자신만의 발전 방식이나 내구력 강화에 더욱 치중하면서 미·중 전략경쟁에는 장기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평가된다. 기정사실화된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 속에서 당분간 미국과의 협상이나 타협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주변국과의 관계나 중국이 이미 그 영향력을 강화한 발전도상국(Global South)의 지지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세(勢)를 점하려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마오쩌둥의 이상주의와 모험주의를 배격하는 현 중국 지도부는 이미 상부구조에서 우위를 보이는 미국과 서방세계와의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중국 중심의 공급망 체계 완성, 생산력과 경제구조라는 토대의 강화를 통해 우위를 점하면서 자연스레 상부구조의 변화를 꿈꾸는 점진적인 방식을 택할 것이다. 100년 만의 대변혁 시기를 맞이하여 중국이 과거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명민하고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할 것을 시진핑은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세 불리를 인식하고 있으며, 장기적인 변혁을 꿈꾸는 현상유지 국가의 성격을 띤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망은 중국이 그 언술과는 달리 당분간 양안문제에서 급속한 현상변경의 추진, 중·러 동맹의 실증, 우리가 우려하는 북·중·러 동맹을 강화하여 동북아에 신냉전 상황을 초래하는 것 등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진핑 3기 체제의 중국이 지향하는 변혁적인 세계의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는 이를 대단히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류 운명공동체’라는 수사를 넘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를 대체할 보다 나은 세계관, 위계적인 질서를 넘어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적대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향후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범죄와 경제문제가 주 이슈화되면서 공화당의 우위가 점쳐지고 있다. 2024년 대선 역시 바이든 외에 마땅한 후보가 없는 민주당보다는 공화당에 더 기회가 많아 보인다. 공화당이 정책을 주도한다면, 러시아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유화책, 중국에 대해서는 강공책을 쓸 가능성이 크고 미·중 간 마찰은 더욱 커질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당면한 경제와 민생의 위기를 극복할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추진해 왔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크게 충격을 받은 서유럽은 ‘연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예상보다 강한 지지를 표명하면서 중국을 놀라게도 했다. 그러나 이 연대는 이번 혹독한 겨울의 경제·에너지 위기를 겪으면서 ‘전략적 자율성’과 어떻게 조화할지를 새로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미국과는 물론이고 내적인 ‘연대’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일본의 중국에 대한 경계감은 역대 최고이다. 그럼에도 미·중 전략경쟁 시기에 일본의 대중 무역 규모와 순위는 상승했다. 일본은 그 외양과 수사와는 달리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최상의 역량을 지닌 국가가 아닌가 한다. 이미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는 데 노력하고, 불안한 미국의 대외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호주·독일·영국 등과 거의 동맹에 준하는 전략적 연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북한은 최근 도발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는 흔히 회자되는 바이든 정부에 대한 협상이나 윤석열 정부에 대한 위협보다는 결국 중국이 주 대상이 아닐까 한다. 북·중 동맹으로 비치기를 꺼리는 중국을 향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해 북한이 중국의 국익에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북한에 신냉전은 결코 나쁜 환경이 아니다.

미·중 전략경쟁의 격화라는 신국면에서 각 주요국들은 수면 아래에서 치열하게 새로운 전략 구상에 돌입해 있다. 헤징(hedging)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의 주요국들이나 중국 역시 한국의 선택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다. 한국은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추진에 중요한 동반자 후보이다. 한·중관계는 현재 상호 이중 헤징에 걸려 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거나, 한국이 중국에 적대적인 동맹 정책을 분명히 하면 한·중은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먼저 움직인 자가 그 파탄의 모든 책임을 덮어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에 지나치게 경사되기보다는 당분간 한국과의 우호 증진에도 여전히 노력할 것이다.

한국은 이러한 국면에서 북한 중심이나, 미·중 이분법적인 좁은 전략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한된 지식과 비전, 희망적인 사고로 외교적 기회와 운용의 공간을 스스로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명쾌하지는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각국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유연성을 견지하면서,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과 자강 역량을 꾸준히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해법의 추구는 결론의 제시보다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대립과 충돌의 시기에 이를 당연한 조건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소통과 평화에 더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호주·독일·일본과 같은 세계적인 중추국가들과 전략적인 소통과 연대를 더 강화해야 한다. 중국의 시진핑 라인과도 소통할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중국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전략적 역량을 발휘하고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외교를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김흥규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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