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사내하청도 ‘정규직화’ 길 열려…다단계 하청구조 제동

대법 “물리적 구분된 공간만으로 파견 관계 부정할 수 없다”
지엠·제철업계도 소송 중…노동계 “타 업종에도 적용돼야”
현대차·기아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한 대법원의 27일 판결은 자동차 생산라인 중 컨베이어벨트 바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도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업들은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다단계 하청구조를 이용해 왔는데, 대법원이 컨베이어벨트에서 일하는 직접공정뿐 아니라 간접공정까지 대부분의 공정으로 불법파견 인정 범위를 넓힌 것이다. 대법원은 현대차의 ‘2차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이라고 확인했다.
이번 재판에서 사측은 사내하청업체에 도급을 준 것이기 때문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도급이 아니라 파견으로 인정되면 파견법에 따라 사용기간 2년 경과 후 직접 고용해야 한다.
대법원은 먼저 2015년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불법파견을 인정한 판결 법리를 언급했다. 원청회사와 사내하청 노동자가 파견관계인지 여부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이 아니라 원청이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원청의 사업에 하청노동자가 편입됐는지, 하청업체가 노동자들의 선발·교육·훈련·평가를 독자적으로 하는지 등을 실질적으로 따져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현대차·기아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구체적인 작업내용과 작업인원을 정했고, 수시로 공정이나 생산량을 변경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원청이 필요에 따라 사내하청업체를 교체한 점, 원청이 직접적으로 지배하는 공장에서 사내하청과 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근무한 점도 고려했다. 이를 토대로 대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노동형태를 결정할 권한이 전적으로 현대차·기아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된 ‘간접공정’ 업무는 소재제작, 생산관리, 품질관리, 운전·검사 등 PDI 공정, 수출방청, 포장 업무이다. 대법원은 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가 각각의 작업위치에서 순서에 따라 함께 업무를 분담해 처리한 점을 근거로 이들 공정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직접공정과 간접공정이 긴밀히 연결돼 있는데도 사내하청 노동자만 분리해 원청의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취지이다. 대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업무가 정규직 노동자와 ‘물리적으로’ 구분된 공간에서 수행된다거나 노선이 다르다는 점만으로는 파견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은 특히 ‘2차 사내하청업체’인 경우에도 불법파견이 성립할 수 있다고 봤다. 현대차 사건 원고 노동자 일부는 현대모비스가 현대차로부터 도급받은 업무를 재도급 계약으로 넘겨받은 2차 사내하청업체 소속이었다. 대법원은 현대차가 2차 하청으로 업무가 넘어간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고, 현대모비스가 아니라 현대차가 업무를 지휘·감독했다며 이들도 불법파견이 맞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2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는 위법하게 근로자를 파견받아 사용하면서도 제2의 사내협력업체를 끼워넣는 방식으로 파견법 적용을 손쉽게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고 했다. 현대차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3부는 원심의 이 판결을 수긍했다. 원심이 원청과 1·2차 하청업체들 사이의 계약내용, 계약 경위, 업무 관여 여부를 상세히 따져본 뒤 2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라는 이유로 파견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적법하다는 것이다. 다만 범퍼 조립·검사 등 업무를 한 일부 노동자에 대해서는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원고들을 대리한 송영섭 변호사는 “(이번 사례는) 거의 대부분의 자동차 생산공정이 망라된 집단소송이었고, 간접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이 맞다고 확정해 논란을 해소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히 의미가 크다”고 했다.
간접공정이나 2차 사내하청업체가 어떤 경우 불법파견이 되는지를 처음 구체적으로 명시한 이번 판결은 법원에 계류 중인 현대제철, 한국지엠, 아사히글라스 등 사건이나 추가로 제기될 불법파견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는 대법원이 이날 제시한 불법파견 기준이 다른 업종 사업장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혜리·박용필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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