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혁, 기행과 예술 사이

홍혜민 2022. 10. 27.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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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인터뷰→반삭 역조공...
첫 솔로 앨범 '에러' 음악 방송 퍼포먼스에 엇갈린 반응
예술적 색깔 확립한 이찬혁, 대중 납득시킬 지점 찾아야
가수 이찬혁이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엠넷 '엠카운트다운' 캡처

3분 남짓한 무대를 둘러싼 대중의 반응이 며칠째 뜨겁다. '예술'과 '기행'을 사이에 두고 엇갈린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데뷔 8년여 만에 악뮤가 아닌 솔로 아티스트로서 이찬혁이 선보인 첫 앨범 '에러(ERROR)'와 그 무대를 둘러싼 작금의 사태는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걸까.

이찬혁의 첫 솔로 정규 앨범 '에러'는 지난 17일 발매됐다. 남매 듀오 악뮤로 꾸준한 음악 활동을 이어왔던 이찬혁은 이번 앨범을 통해 처음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음악색을 선보이며 리스너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솔로 컴백을 앞두고 파격적인 길거리 퍼포먼스 프로모션을 선보인데 이어 EBS '딩동댕 유치원', KBS1 '전국 노래자랑' 깜짝 관람 등 예상치 못한 행보를 이어오며 "틀을 깨겠다"는 의중을 꾸준히 전해온 이찬혁은 앨범에도 이같은 의도를 고스란히 녹여냈다. 그는 특유의 감성과 철학적 사유를 '죽음'을 주제로 한 유기적 구성의 앨범으로 엮어내며 과거 자신이 갖고 있던 의식의 틀을 깨고 새로운 자아와 방향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그렸다.

앨범에 담긴 메시지 만큼 앨범 발매 이후 그가 선보인 퍼포먼스 역시 파격적이었다. 그는 첫 솔로 앨범에 담긴 메시지를 풀어낼 공간을 음악 방송 무대까지 확장하며 유기적인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지난 20일 설왕설래를 낳았던 엠넷 '엠카운트다운' 인터뷰와 무대가 그 시작이었다. 당시 이찬혁은 무대에 앞서 자신의 새 앨범과 신곡을 소개하는 미니 인터뷰 시간 MC 미연과 남윤수의 질문에 장황한 설명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는 기행(?)을 펼친데 이어 타이틀 곡 '파노라마' 무대에선 내내 뒷모습만 보여주는 연출로 단숨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해당 무대 이후 이찬혁의 '침묵 인터뷰' '뒷모습 무대'의 의도를 두고 각종 추측이 이어진 것은 당연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네티즌들은 그의 의도가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다 할지라도 시청자가 납득하지 못하는 수준의 퍼포먼스는 불편함만을 자아낸다고 지적했고, 이찬혁의 무대는 논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찬혁의 무대 위 퍼포먼스는 계속됐다. 22일 MBC '쇼! 음악중심'에서 또 다시 뒷모습으로 등장한 이찬혁은 이번엔 무대 뒤편에 설치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일부 노출하는 연출을 선보였다. 다음날 SBS '인기가요'에서는 실제 미용사와 함께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삭발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날 자른 그의 머리카락은 현장을 찾은 팬들에게 역조공 선물로 전해졌다.)

침묵 인터뷰, 뒷모습 무대 당시 기행 정도로 여겨졌던 이찬혁의 퍼포먼스는 음악 방송을 거듭하며 하나의 메시지로 이어졌다.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뒤 혼수상태에 빠진 화자가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솔직해지자는 다짐을 한 뒤 다시 태어나는(천국으로 향하는) '에러' 앨범의 유기적 스토리가 그의 추상적인 퍼포먼스를 만나 보다 직설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찬혁의 퍼포먼스는 분명 기존에 없던 신선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틀을 깨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중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는 중이다. 그의 예술적 감성을 높게 평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신선함을 넘어 당혹감을 선사하는 그의 퍼포먼스에 비판적 시선을 보내는 중이니 말이다.

첫 솔로 앨범을 통해 이찬혁의 음악 세계는 분명히 '각성'의 단계를 지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막연히 추구하던 음악을 넘어 진짜 메시지를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든 그가 이제 자신의 음악적 방향성을 상당 수준 확립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이찬혁은 새로운 과제에 당면했다. 대중의 감수성과 자신의 예술 세계, 두 세계를 조화롭게 융화시킬 지점을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찬혁이 자신의 음악색과 메시지를 대중에게 보다 유연하게 납득시킬 때, 그의 음악은 또 한 번 비약적인 성장을 얻을 것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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