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삶이 해피엔딩? 끝이 있어 더 소중한… ‘아름다운 이별’ 담았죠

권이선 2022. 10. 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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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 이준익 감독
김장환 소설 원작… SF장르 서정적 연출 눈길
신하균·한지민 부부 연기… 또 다른 세계 통한 ‘죽음의 성찰’ 그려
“그 후로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누구나 꿈꾸는 동화 속 결말은 정말 해피엔딩일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는 삶과 죽음, 기억과 행복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욕망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시리즈가 끝나갈 즈음, 이준익 감독은 답한다. “아름다운 기억이 소중한 것은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소멸은 소중하며, 이별은 아름답다”고.

전체 6부작으로 구성된 ‘욘더’는 휴머니즘 짙은 스토리에 간결하고도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 감독 특기가 물씬 담긴 작품이다. ‘왕의 남자(2005)’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뒤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 ‘자산어보(2021)’ 등을 연출한 ‘시대극 대가’ 이 감독이 이번엔 근미래로 이동했다. 장르는 SF.

안락사법이 통과한 2032년, 재현(신하균 분)은 세상을 떠난 아내 이후(한지민)로부터 메일을 받게 된다. 죽은 이의 생전 기억으로 만들어진 가상세계이자 과학으로 이룬 천국 ‘욘더’로 건너간 이후. 재현 역시 세이렌(이정은) 안내를 받아 욘더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재현은 영원히 함께 행복한 삶을 경험한다. “우린 매일 이렇게 지내요”라는 가상 세계 이웃 이야기가 어딘가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

현실 재현이라는 뜻의 ‘재현’과 죽음 이후를 꿈꾸는 ‘이후’, 아름다움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유혹하는 ‘세이렌’. 이 감독은 세 인물을 통해 존재론적인 질문을 수차례 던진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기보다 직접 대면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다는 하이데거 철학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이 감독은 “최근 우리는 디지털 세계가 죽음의 유한성을 불멸의 무한성으로 구현해내는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며 “누군가의 죽음으로 내가 존재했다면 누군가의 생성을 위해 나도 소멸해야 하는 게 바람직한 세상의 방향이 아닐까 싶었다. 인간 삶이 숭고해지려면 아름다운 만남뿐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은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불멸을 꿈꿔왔고, 그 이기심 때문에 더 불행하다”며 “인간의 불행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유한성에서 기인한다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냈다”고 말했다.
감독은 자신의 첫 OTT 작품이자 첫 드라마에 대해 ‘세이빙(Saving) 타임용’이라고 설명했다. 배설감을 느끼게 하는 최근 블록버스터 작품들과는 달리 포만감을 주는 작품이라는 것. 그의 말처럼 ‘욘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올 때 비로소 시작되는 작품이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는 죽은 자의 기억으로 설계된 천국 ‘욘더’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욘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또다시 나고 죽는 것에 대해서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티빙 제공
‘욘더’는 2010년 뉴웨이브문학상을 수상한 김장환 작가 소설 ‘굿바이, 욘더’가 원작이다. 이 감독은 “11년 전 원작을 봤는데 삶과 죽음을 주제로 이런 과감한 설정을 다룬 것이 굉장히 신선했다”며 “8년 전쯤 시나리오를 썼는데 판타지 성격이 과해 다 엎었다. 이번엔 욕심을 덜고 가장 작게, 가장 깊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자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로 썼다”고 말했다.

덕분에 ‘욘더’는 현재와는 이질적인 시대적 배경을 다루면서도 낯설지 않게 관객들을 찬찬히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화려한 영상으로 관객들 시선을 빼앗지 않고 작품이 주는 메시지와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SF장르에서는 이례적인 서정적 연출로 한 편의 시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극 중 인물들은 백석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으며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이병률 시 ‘사람이 온다’로 마음을 표현한다.

인터뷰 말미, 욘더에 저장하고 싶은 기억에 대해 묻자 이 감독은 파블로 네루다 시를 읊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그 어릴 적 나를 욘더에 두고 싶어요.”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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