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된 정일우, 김슬기의 모성애…낯설어서 반가운 '고속도로 가족' [마데핫리뷰]
[마이데일리 = 양유진 기자] '고속도로 가족'은 낯섦의 연속이다. 익숙한 배우들이 처음 보는 연기를 하는 가운데 기존 가족 영화의 문법에서 벗어나 전개된다. 주요 배경은 무려 고속도로 옆 휴게소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이상문 감독은 이토록 생경한 요소를 설득력 있고 묵직하게 봉합해 끝에 다다라 깊은 울림을 준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까치집 머리를 한 기우(정일우)가 휴게소 방문객에게 묻는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2만 원만 빌려주시겠어요?" 못미더운 얼굴로 뜸들이자 기우의 아내 지숙(김슬기)이 딸 은이(서이수), 아들 택(박다온)을 양옆에 낀 채 가세한다.
여느 때처럼 휴게소에서 구걸 아닌 구걸을 하던 기우. 영선(라미란)은 지갑을 열어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낸다. 이어 시선을 낮춰 은이를 보더니 오만 원권을 집어 든다.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들이켜던 은이가 마음 쓰였던 영선이다. 하지만 영선은 머지않아 다른 휴게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리고 다니는 기우네 가족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기우가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자 영선은 지숙, 은이, 택을 운영 중인 중고 가구점에 데려간다.
이름조차 쓰지 못했던 은이가 한글을 배우고, 변기에 기대어 앉아 쪽잠 자던 영선이 따스한 잠자리를 얻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일상에 적응해가던 가족은 기우의 돌발행동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기우와 지숙은 물론 영선까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힌 뒤 갈등하고 수차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 감독은 "세상살이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그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짚었다. 이 감독의 말처럼 '고속도로 가족'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평안함보다 두려움, 안도보다 걱정에 가까이 닿아 있다. 그럼에도 바래지 않는 사랑을 토대로 서로를 지켜내고야 만다. 영화를 보면 가족의 의미뿐 아니라, 만약 나라면 영선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정일우는 이 영화로 대표작을 경신할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작에서 보여준 선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파격 변신한 정일우다. 기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머리와 수염을 기르는가 하면, 정신 질환을 가진 기우를 '착붙'으로 소화하려 직접 정신과 의사에게 자문했다고 한다. 김슬기는 온전히 지숙으로 존재해 놀라움을 선사한다. 김슬기 하면 흔히 떠오르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지우고 현실에 지친 엄마와 애틋한 모성애를 능수능란하게 표현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2016), '어른들은 몰라요'(2021) 조감독 출신인 이 감독의 첫 장편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미리 선보였다.
오는 11월 2일 개봉. 상영시간 128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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