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문신을 허용합니다” 어린이 상대하는 디즈니도 입장 바꿔
영국의 대표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은 지난 5월 “우리는 포용과 개성 옹호에 중점을 두고 모든 사람의 문신 제한을 완화하고 있다”며 고객과 직접 대면하는 객실 승무원들이 문신을 가리지 않아도 되게끔 규제를 푼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함께 공개한 사진 속 승무원들은 반소매 유니폼 차림에 장미꽃과 런던대교가 그려진 팔뚝 문신을 드러내며 미소 지었다. 지금껏 이 회사는 유니폼 밖으로 문신을 드러내는 것을 금지하고, 가릴 수 있는 사람만 승무원으로 채용해왔다. 그러다 돌연 “비행기 모양 문신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며 입장을 180도 선회한 것이다.
고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직원의 문신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서비스 기업들이 문신에 대해 점차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문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옅어진 만큼 직원들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이지만, 사람 구하기 바쁜 다급한 사정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디즈니도 허한 문신의 자유
디즈니는 지난해 4월 머리 모양과 네일아트, 귀걸이 등 직원들의 외관에 더 광범위한 유연성을 부여하는 지침을 공개하면서 “눈에 띄는 문신을 허용한다”고 밝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 리조트와 플로리다 월트 디즈니월드의 주 고객이 아이들이라는 점을 들어 그동안 디즈니가 문신 노출을 엄격히 금지해왔기 때문이다. 얼굴 또는 목에 있는 문신, 손바닥보다 큰 문신, 과도한 노출이나 욕설 등 부적절한 내용의 문신은 금지한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동심을 강조해온 디즈니엔 파격적인 조치라는 평가가 나왔다.
‘유니폼을 입은 상태에서는 절대 문신이 보이면 안 된다’는 승무원 표준 복장 지침을 갖고 있던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도 작년 6월 ‘작은 문신은 고객들에게 보여도 괜찮다’고 지침을 바꿨다. 이보다 앞선 2019년 6월에는 뉴질랜드 항공이 글로벌 항공사 중 처음으로 유니폼 밖 문신을 허용했고, 물류 대기업 UPS도 지난해 4월 직원들의 문신 공개를 허용했다.
문신 규제를 완화한 기업들은 하나같이 개인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조시 다마로 디즈니 테마파크 부문 회장은 “개인적인 표현에 있어 직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보장될 때 디즈니 역시 더 뛰어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에선 팬데믹 이후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에 따른 수요 급증과 미국·유럽 시장에서 일손 부족을 부른 ‘대사직(Great Resignation)’ 열풍 등 직원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 기업들의 속사정이 반영됐다고 본다. 문신 규제 완화에 나선 기업들 대부분 팬데믹 기간 경영 악화로 직원들을 대량 해고했다가 인력 확보가 시급해진 항공·물류·레저업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 미국 테마파크 사업부의 경우, 팬데믹 기간 직원 3만2000명을 일시 해고한 뒤 직원 채용에 애를 먹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근로자를 유치하고 잡아두려는 경쟁이 커지면서 하이브리드·원격근무를 수용하거나 대학 학위 요건을 없애는 것을 넘어 직원 문신도 허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신 금지 불문율 깨지는 국내 기업들
서구권 국가보다 문신 인구가 적고 문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훨씬 강한 국내 기업들은 애당초 문신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CJ, 아모레퍼시픽 등 여러 업종의 대기업들은 “채용 및 업무 지침에 문신을 규제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내용은 없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항공사인 대한항공마저도 승무원 문신 제한 규정이 없다. 대신 문신이 있으면 채용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일종의 불문율로 자리 잡아 왔다. 한 항공사 승무원은 “승무원 채용 시 필수로 수영 실력을 시험하는데, 수영복 차림일 때 문신이 보이면 합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MZ세대(1981~1996년 출생)를 중심으로 문신하는 사람이 늘면서 직접 고객을 상대하지 않는 직종에서는 문신 금지 불문율이 조금씩 깨지는 분위기다. 삼성전자의 한 40대 부장급 인사는 “당장 우리 팀 내에도 손목에 가벼운 레터링(문자 형태) 문신을 한 젊은 직원이 있지만, 그를 두고 부장이나 임원 사이에서 얘기가 나온 적은 없었다”며 “요즘 매체나 길거리에서 문신한 사람들을 자주 보다 보니 작고 가벼운 문신에 대해선 점점 둔감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많아 일반 기업보다 개방적인 분위기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IT·게임업계에선 문신한 직원들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관계자는 “아무래도 일러스트레이터 같이 예술계 종사자도 많다 보니 문신한 사람도 꽤 보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도 더 개방적”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드물게 문신을 제한하는 명문 규정을 두고 있는 군과 경찰도 관련 규정을 대폭 완화하는 추세다. 작년 2월 개정된 경찰공무원 임용령 시행규칙이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시술 동기, 의미 및 크기가 경찰공무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문신은 없어야 한다’고만 돼 있어 문신만 있어도 자의적인 해석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규칙 개정으로 혐오성과 음란성, 차별성, 기타(범죄집단 상징 등) 등 문신 관련 구체적인 불합격 기준이 명시됐고, 제복 착용 시 가려지면 문제가 안 된다는 기준도 담겼다.
초급간부 인력난에 시달리는 군대도 문신에 대한 규제를 대폭 낮추고 있다. 당장 올 3월 말부터 육군 간부 선발 시 문신 제한이 크게 완화됐다. 과거에는 신체에 있는 문신 합계 면적이 30㎠ 미만일 때에만 지원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120㎠ 이하까지도 지원이 가능해졌다. 문신을 이유로 한 병역 면제도 사라졌다. 과거 병무청은 군 입대 신체검사 시 문신이 많거나 불쾌감을 주는 수준일 경우 4급 보충역 판정을 내렸지만, 작년부터 현역(1~3급)으로 판정토록 규정을 바꿨다. 불과 2년 전 병무청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이 문신과 피어싱을 이유로 음주운전이나 성범죄에 준하는 수위의 징계(감봉 3개월)를 받아 논란이 됐던 걸 감안하면 큰 폭의 변화다. 국방부는 “문신은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감소했고 정상적 군 복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WEEKLY BIZ Newsletter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6096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산율 높은 지자체, 교부세 더 받는다
- 러시아 찾은 北최선희 “승리의 날까지 러시아와 함께 할 것”
- 검찰, 명태균 장모·처남도 압수수색
- ‘대상 수집가’ 박은혜(펜타클) vs ‘입시 5관왕’ 손유진(페투페)...될성부른 떡잎
- [만물상] ‘바나나 공화국’ 정치
- 자전거 졸졸 쫓아가 폭탄 ‘쾅’…민간인 사냥하는 러 드론
- 1억 원대 ‘고급 SUV 외제차’ 렌트해, 3000만 원에 팔아…30대 남성 구속 송치
- 우리은행, 기업대출에 급제동... 조병규 행장 “전략 변화에 사과드린다”
- “곧 상장·수익률 337%” 사기로 89억 챙긴 금융업체 대표 등 기소
- [단독] 김용 ‘구글 타임라인’, 돈 받았다 지목된 날 동선과 2㎞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