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광명 세모자 살해 40대 신상공개 안 해…"2차 피해 우려"
"여론에 따라 일관성 없는 경우 있어"…"유가족 없는 사건서는 재고할 필요"
(광명=연합뉴스) 강영훈 류수현 기자 = 지난 25일 경기 광명에서 아내와 중학생·초등학생 아들 둘을 살해한 40대를 체포해 조사 중인 경찰이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가족 간 범죄여서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은 가해자를 제외한 피해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점을 고려하면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살인 혐의를 받는 이 사건 피의자 40대 A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에 따르면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의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얼굴, 이름,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아울러 국민의 알권리와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이 있어야 하고,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니어야 한다는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경찰은 A씨의 범행이 잔혹한 데다가 3명이 사망했으며, 자백한 점 등을 고려한다고 해도 '가족 간 범죄'인 점을 고려하면 신상정보 공개에 따른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어 비공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가족이어서 신상을 공개할 경우 (살아있는) 다른 가족들에게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집 안 내에서 일어난 가족 간 살인 범죄여서 재범방지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없고, 국민들에게 유사 범죄를 조심해야 한다고 알리는 범죄예방 효과도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은 고유정의 경우 가족 간 범죄인데도 불구, 신상이 공개된 바 있다. 고유정은 전남편과 사이에 낳은 어린 자녀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제주경찰청은 신상공개 심의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신상공개를 결정하면서, 이로 인한 고씨의 가족이나 주변인이 당할 수 있는 2차 피해 등 비공개 사유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친족 간 살인에 대해 신상공개가 이뤄진 적은 없으나, 광명 사건은 살아남은 유족이 동거자 중에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신상공개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고유정 사건도 이와 마찬가지 사례로 여길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 8월까지 5년여간 살인, 인신매매, 강간과 추행 등 특정강력범죄는 총 2만8천820건 발생했다. 이 기간 신상공개 위원회 개최 횟수는 49건으로, 전체 흉악범죄의 0.17%에 그쳤다.
이 의원은 "수만 건의 특정강력범죄가 일어나는 동안 손에 꼽을 만큼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예 심의조차 열리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신상공개 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모호한 신상공개 기준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해식 의원은 "죄질이 비슷하더라도 대중의 관심에 따라 신상공개 여부가 결정되고, 여론 재판에 따라 일관성이 없는 경우가 있다"며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어려운 현재의 제도를 더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신상공개 여부를 경찰 자체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외부 전문가 등이 소속된 신상공개 위원회를 활용하는 것이 적극적으로 권장돼야 한다"며 "광명 사건을 놓고 볼 때,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면 그 2차 피해가 무엇인지 위원회를 통해 집단지성을 발휘해 봐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그때그때 다른 결정이 내려지는 현재의 기준으로는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기준은 '살인 피의자는 공개한다. 몇 세 이하는 안 된다'처럼 아주 간단하게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경찰은 살인 혐의로 긴급체포한 A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28일 열린다. A씨는 이날 오전 경찰서 유치장을 나와 법원으로 이동하며 취재진과 마주칠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이 신상공개를 하지 않기로 한 만큼, 국민들에게 얼굴이 공개될 일은 없을 전망이다.
k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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