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체호프의 인물은 한국에서 어떻게 되살아나는가[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김미조 감독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희곡을 좋아했다. 집 바로 앞에 체호프 극단이 있었다. 조그만 공간에서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해 인생의 희노애락을 연기하는 모습에 흠뻑 빠졌다. 사범대를 다니다 영화로 방향을 틀어 첫 장편 데뷔작으로 만든 작품이 ‘갈매기’다. 제목은 왜 ‘갈매기’로 정했을까. 그는 최근 GV에서 “체호프의 연극 ‘갈매기’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굉장히 좋아했다. 언젠가 장편영화를 만들면 제목을 꼭 갈매기로 지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전했다.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오복(정애화)은 첫째딸의 결혼을 앞두고 동료 남성 기택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잘못은 기택이 했는데, 상인들은 한강에 배 한 번 지나간 게 뭔 대수냐며 참으라고 한다. 상인들의 생존권 투쟁에 앞장서는 기택을 건드려보았자 좋을게 없다는 식이다. 사돈댁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걱정이다. 남편은 성폭력은 응하지 않으면 절대 성립할 수 없다는 망언을 늘어놓는다. 오복은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오복은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린다.
체호프는 ‘갈매기’를 “코미디, 세 명의 여자 배역, 여섯 명의 남자 배역, 4막, 호수를 배경으로 한 풍경, 문학에 대한 많은 대화, 움직임이 적음, 다섯 푼짜리 사랑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어긋난 사랑으로 발생하는 비극을 강조한 연극이 히트를 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자기 뜻대로 삶을 개척하지 못한다. ‘니나’는 예외다. 바람둥이 보리스에게 버림받은 니나는 아이를 잃고 삼류배우로 전락한 채 러시아 전역을 떠돈다. 절망에 빠졌지만,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는 인물이다.
니나는 “난 갈매기예요. 난 여배우지. 그래 맞아.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갖는거야.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괴롭지 않아. 그리고 나의 사명을 생각할 때는 인생이 두렵지 않아”라고 말한다. 니나는 이 연극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한 캐릭터다. 김미조 감독은 아마도 니나 캐릭터에서 오복을 떠올렸을 것이다. 자기 편은 아무도 없지만,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오복은 자신의 목소리를 또렷이 낸다. 그는 “이 영화는 오복의 영웅 스토리”라고 말했다.
갈매기는 바다에서 자유롭게 비상한다. 사람들은 갈매기를 자유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갈매기는 육지에서 반드시 서식해야하는 특징이 있다. 그는 “지긋지긋한 현실을 벗어나지 않고 두발 버티고 육지에서 붙어서 살아야하는 면이 오복과 닮았다”고 설명했다. 쑥쑥 빠지는 뻘밭에서 니나와 오복은 굳건히 지탱한다. 예기치 않은 고난에 직면했을 때, 인간 존엄을 잃지 않고 폭풍에 맞서는 삶은 얼마나 숭고한가. 오늘도 육지에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세상의 모든 갈매기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사진 = 마이데일리 DB, 영화사 진진]-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