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산림] 문제는 기후변화 속도...구상나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난 3월 서울 면적의 3분의 1(약 2만 ha)에 해당하는 숲을 한순간 잿더미로 만들었던 동해안 산불, 8월 수도권 집중호우로 순식간에 일어난 대규모 교통 마비, 초강력 태풍 제11호 ‘힌남노’가 몰고 온 강풍과 폭우로 인한 남부지방 피해 등은 올해 우리가 한반도에서 맞이한 기후위기의 일부분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재난에 가까운 산불과 태풍 소식은 수년에 걸쳐 한 번꼴로 나타나는 현상이었지만, 올해는 소위 역대급 극한 기후현상이 한해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점점 이러한 현상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금세기 후반에는 서울의 경우 폭염일수가 68.7일로 2010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하며 열대야 발생빈도도 60.9일로 거의 두 달 동안 더운 밤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극한 기후현상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무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산의 정상 부위 척박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고산 침엽수종은 다른 어떤 나무들보다도 더 힘든 여정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왜 기름지고 비옥한 산의 낮은 지역을 벗어나 바위가 많고 척박한 산의 정상 지역에만 남아 있는 것일까. 얼마나 오래전부터 우리 한반도에 있었으며 그때에도 지금처럼 산의 정상부에만 있었을까.
침엽수종은 씨방이 씨앗을 담고 있는 속씨식물과 다르게 씨앗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겉씨식물에 속한다. 겉씨식물은 가장 오래된 종자식물로 고생대 후기(4억2천 ~ 3억 7천만 년 전)에 등장해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중생대에 번성했으나 점차 줄어 지금 남아있는 종은 많지 않다.
추운 지역에 적응했던 고산 침엽수종은 지구가 추워지는 빙하기 시기에는 고도가 낮은 지역까지 넓게 분포했다가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활엽수종과의 경쟁에서 밀려 점차 산의 위쪽으로 몰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는 신생대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분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특산수종 구상나무도 있다.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존재하기도 전인 수천만 년 동안 우리 땅을 지켜온 구상나무가 최근 사라지고 있다. 수천만 년 동안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강인한 나무들이 최근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긴 시간 속에서 겪지 못한 새로운 환경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구상나무가 살아온 시기에도 지금처럼 더운 시기가 분명 있었다. 약 200만 년 전인 신생대의 마지막 시기(제4기)에도 약 4번의 빙하기와 그 사이사이마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3번의 간빙기가 있었다. 온도도 지금보다 높은 시기가 있었다.
문제는 온도가 아닌 속도에 있다. 과거에는 약 10~20만 년에 걸쳐 온도가 변화했는데, 최근 기후변화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문제다. 최근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 속도는 200년 전에 비해 10배 이상 빠르다고 한다. 아무리 수천 년을 살아온 강인한 구상나무도 급격한 기후변화에는 적응하기 역부족인 것이다.
전 세계에서, 그것도 우리 땅에만 자라는 구상나무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구상나무는 현재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일까. 세계자연보전연맹은 우리나라 구상나무를 자연상태에 있는 종 중에서 두 번째로 심각한 수준인 위기종으로 평가하고 있다. 최근 산림청의 전국실태조사에 따르면 구상나무의 쇠퇴도가 30% 이상으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구상나무 숲이 유지되는 데 필요한 어린나무 발생도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지속된다면 가까운 미래에 구상나무는 동물원의 호랑이처럼 우리나라의 산림이 아닌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가 될지도 모른다.
구상나무와 같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종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으로 196개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 생물다양성협약이 있다. 1992년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시작된 생물다양성협약은 2022년 12월 전세계 생물다양성 보전의 이정표가 될 목표(Post-2020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마련하고 있다.
새로운 목표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유전적다양성이다. 생물다양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다양한 생태계(생태계다양성)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의 다양성(종다양성)이다. 하지만 생물다양성에서 또 하나의 요소인 유전적다양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유전적다양성이란 종 내 다양성을 의미하는데, 같은 소나무라 하더라도 키가 크고 곧은 나무도 있고 구불구불한 형태의 나무도 있는 등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이 바로 이러한 유전적 변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멸종위기 생물종의 복원을 위해 동일한 개체를 다수 증식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한두 개의 나무에서 수백 개의 종자를 수집해 증식된 나무는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형제 나무들이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숲을 유지하기 어렵다. 실제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방식으로 진행된 복원사례가 실패했다고 한다.
유전적다양성이 높으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높아진다. 이에 따라 선진국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복원을 위해서는 유전적다양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바로 유전적다양성을 유지함으로써 최근의 급변하는 기후위기에서 사라져가는 구상나무 숲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구상나무의 유전적다양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전국에 분포하는 구상나무 숲을 분석했다. 그 결과 국내 구상나무의 대표 집단에 대한 유전적다양성 분석 결과 다행히도 모든 집단이 현재까지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 집단은 내륙에 있는 지리산, 덕유산 집단과 다르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구상나무라 하더라도 이질적인 한라산 구상나무를 내륙의 복원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넓은 구상나무 숲에서 유전적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상 나무를 선정하는 것이 좋을까. 유전자 분석을 통해 알아본 결과 한라산은 10m, 지리산에서는 20m 정도 거리를 띄우면 유전적으로 다양한 나무를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적다양성을 고려한 복원재료는 확보됐다. 구상나무를 건강한 복원재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몇 년을 키워야 할까. 소나무의 경우 보통 2년 정도 키우면 산림에 식재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구상나무는 생장이 매우 더뎌서 2년 정도면 손가락 정도의 크기밖에는 자라지 않는다. 나무 나이에 따른 환경 적응성을 평가해 본 결과 구상나무의 경우 최소 5년 이상이 되어야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과 광합성 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이러한 복원 방법이 현장에는 통할까. 국립산림과학원은 2019년 금원산 지역을 대상으로 시험 규모의 복원을 진행했다. 금원산 구상나무는 어른나무가 30본 미만으로 매우 적고 유전적다양성이 낮아 숲의 지속가능성이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다. 적절한 복원재료 확보를 위해 주변 집단과 비교 분석한 결과 지리산 집단의 유사성이 9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지리산 구상나무를 활용, 복원재료를 확보하고 5년 동안 키웠다. 금원산 지역 중에서 해발 약 1100m의 북사면 지역을 대상지로 선정하고 2019년 1350본을 심었다. 3년이 지난 2022년 조사 결과 92.7%가 생존해 초기 활착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됐다. 지속적인 관리와 모니터링으로 기후위기로 소멸 위협이 높은 금원산 고립집단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특산 수종으로 나무의 활용 가치를 떠나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보호하고 지켜야 할 소중한 생명자원이다.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탄소배출을 감소하는 등 전 지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이 성공하는 그때까지 극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구상나무가 숲을 유지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시급하다. 유전적다양성을 유지하는 과학적 복원을 통해 수천 년 전 이 땅을 지켜온 구상나무를 미래의 우리 후손들도 수목원이 아닌 우리 산림에서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연구사
[임효인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 연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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