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구리' 양동근이 여전히 학교에 있다면 '치얼업'
아이즈 ize 신윤재(칼럼니스트)
SBS 월화드라마 '치얼업'(연출 한태섭 오준혁, 극본 차해원) 속 배우 양동근이 연기하는 배영웅 캐릭터는, 이를테면 20년 전 MBC 시트콤 '논스톱'에 등장한 '구리구리 양동근'이 고스란히 나이를 먹은 모습과 비슷하다. '치얼업' 속 배영웅은 02학번으로 극중 연희대의 응원단인 '테이아'의 전 단장 출신으로 졸업을 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 학교 주변을 떠나지 않고 건물도 사서 사업도 하는 인물이다.
양동근이 맹활약하던 '뉴논스톱'이 방송되던 시기가 2000년부터, 양동근은 신입생 캐릭터였기에 대충 00학번이라는 이야기인데 '치얼업'의 설정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뉴논스톱' 당시의 웅얼거리는 말투 그리고 그곳이 어디든 완벽하게 자신의 집처럼 만드는 적응력 그리고 상대에게 눙을 치는 천연덕스러운 모습은 연결된다. '구리구리 양동근'이 만일 개과천선을 크게 하고 제대로 돈을 번 후 학교에 돌아왔으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하게 하는 캐릭터다.
배영웅이 학교에 남아있고 수시로 응원단의 일정이 출몰하며, 도해이(한지현)를 꼬드겨 그에게 알바비나 인센티브까지 주어가며 응원단에 가입시키려는 정확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단 응원단이 2019년 당시 대학가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실용성이 떨어지는 동아리라는 점 때문에 가입자가 줄고, 흉흉한 소문도 따라와 폐부가 되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것이 큰 힌트다.
결국 배영웅은 남학생들에게 꽤 인기가 있는 것 같은 도해이를 끌어들여 그 연쇄작용을 도모했다. 수시로 후배들에게 자금과 술을 대주다 못해 너무 편한 선배로 꾸지람까지 수시로 듣는 그의 모습은 극중 40대지만 20대에게 깃털만큼의 부담감도 주지 않는 '쿨하고' '멋진' 어른의 모습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학교 학생처 차장 신지연(류현경)과 얽히기 시작하면서는 의외로 순정파의 모습도 보여준다.
어느 하나의 이미지에 함몰되지 않고 역할과 역할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양동근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1987년부터 연기를 시작해 1990년 12세의 나이로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아역 장수곤 역할로 인기를 얻은 양동근은 지금 활동 중인 배우 중 아역배우의 경력으로는 가장 이른 편에 속한다. 지금이야 아역배우의 트레이닝과 캐스팅이 체계화돼 있지만 양동근은 대중교통을 타고 새벽촬영을 감수해야 했으며, 폭압적인 촬영장 분위기도 견뎌야 했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미지는 코믹하지 않지만 낯을 가렸고, 마음속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많은 창작열을 외부에 문을 닫아버린 성격 때문에 삼켜야 했던 사춘기를 지나야 했던 때도 이 때다. 사춘기에 마음을 뒤흔든 힙합의 열병은 그의 아티스트적인 측면을 더욱 배가했고, 힙합의 자유분방함 그리고 자신만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는 특징도 양동근의 지금을 만들었다. 그는 한쪽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연기를 하는 배우지만, 또 한쪽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스타일과 플로우를 가진 레전드급 래퍼 중 하나다.
2002년 아직 '구리구리 양동근'의 후폭풍이 가라앉지도 않았을 무렵 양동근은 또 한 편의 명작을 써낸다. 아직도 그 비장미가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다. 아버지 신구의 죽음을 맞이한 후 밥을 입에 넣고 오열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그리고 2004년 최배달 역으로 열연했던 영화 '바람의 파이터', 선동열을 연기했던 2011년 영화 '퍼펙트 게임' 등 그는 주로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보는 이들의 감정 동요를 이끌어내는 역할에 최적화됐다.
주연급으로 성장하던 그의 모습을 어느새 부턴가 TV나 영화에서 잘 볼 수 없게 됐다. 그가 30대에 들어 연기보다는 가수생활에 더욱 집중했던 이유도 있지만 갈수록 드라마나 영화의 자본이 고도화되면서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일 수 있는 양동근을 캐스팅하는 베팅에 접근하는 제작자가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그의 스타일은 독창적이었지만 말하듯이 읊조리며 대사를 하는 패턴은 비슷했고, 그야말로 꽃미남이나 미남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양동근의 존재는 갈수록 드라마나 영화의 스타일이 획일화되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치얼업'에서의 등장 그리고 그 역할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연출을 맡았던 한태섭PD는 그의 20년 전 모습을 기억하고 캐스팅에 나섰다고 했다. 양동근 역시 지금은 세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의 욕심만으로 역할을 맡을 수 없다. 그는 극의 감초로 가끔 재미를 주는 역할에도 기꺼이 나선다. 스스로도 "이제 가릴 것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2000년 '뉴논스톱'의 구리구리 그리고 2022년 '치얼업'의 백수같은 선배 배영웅. 두 사람은 양동근의 배우 역사이자 여전히 그의 스타일이 안방에서는 독보적임을 증명하는 긴 과정과도 같다.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외모와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살아 꿈틀거리는 연기를 하는 양동근의 모습이 있기에 우리는 조금은 이 작품에서 '뭔가 다를 것'이라는 희망을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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