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참사 수사종료] ③ 그날로부터 500일…빛바랜 약속들(끝)

정회성 2022. 10. 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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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보이지 않는 추모공간, 목소리 내지 않겠다고 체념한 가족들
안전감찰 무더기 적발·계류 중인 법안…"참사 직후 약속, 미뤄선 안 돼"

[※ 편집자의 주 =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참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처벌'과 '대책'이라는 두 과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경찰은 사고의 직접 책임자부터, 재개발 비위 당사자까지 반드시 규명하겠다는 약속을 1년 4개월 만에 마무리했습니다. 경찰 수사 종료를 계기로 그동안 진행된 참사 책임자의 처벌과 재발방지책 수립 성과를 다시 점검해봤습니다.]

광주 학동참사 현장에서 열린 1주기 추모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온전한 참사 수습을 이루지 못한 500여일의 여정 동안 상처만 덧난 유가족은 침묵 속에서 아픔을 견뎌내고 있다.

애꿎은 시민 9명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렀는데도 공사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고 예방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참사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여야 정당이 경쟁적으로 쏟아낸 법안은 여전히 상당수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많은 일을 견뎌낸 500일…착잡한 가족들

철거 공사가 중단된 참사 현장은 계절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폐허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유가족은 건물이 무너졌던 자리를 작은 정원으로 꾸며 추모 공간이 마련되기를 바라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그만큼 아파트 건물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사업계획 변경안에 재개발조합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냈던 '운림54번' 시내버스 차체를 영구 보존하는 구상도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광주시가 소유한 공공부지에 임시 보존 중인 버스 차체는 시나브로 녹덩이에 잠식당하고 있다.

처참하게 짓눌린 시내버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시가 관련 조례를 제·개정하고,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도 구성했으나 이렇다 할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참사 그날로부터 500일가량 이어진 경찰 수사의 종착점을 지켜본 유가족은 착잡한 심경이다.

유가족은 그사이 1주기 추모제를 치렀고, 광주의 다른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 6명이 희생된 '붕괴참사'도 지켜봤다.

가짜뉴스까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괴롭히면서 유가족은 더는 대중을 향해 목소리를 내지 않기로 마음 모았다.

이진의 유가족 대표는 "기나긴 수사였다. 경찰들 고생을 잘 알고 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짧은 말로 그간의 소회를 대신했다.

재발방지책 쏟아졌지만…올해 광주시 안전감찰 110건 적발

참사 직후 정부는 보름여 동안 해체공사장을 대상으로 긴급 안전 점검에 나섰다.

전국 73개 현장에서 적발된 위반 사항이 153건에 달했다.

정부는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에 해체공사를 추가하고, 해빙기 등 사고 우려 기간에 집중점검에 나서는 재발방지책을 발표했다.

다단계 재하도급, 안전 관리 소홀로 이어진 감리자 부재, 해체계획서를 따르지 않은 불법 공사는 '학동참사'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됐다.

재개발사업과 철거공사 감독 책임을 지닌 기초자치단체인 광주 동구는 학동참사를 계기로 건축물 해체공사 업무 지침을 사고 발생 약 한 달 만에 제정했다.

현장 동영상 녹화 등 해체공법 이행 여부의 감시, 시민 불편을 해소할 안내판 부착 등 동구가 제정한 지침은 이후 개정된 관련 법안에 대부분 반영됐다.

상급 자치단체인 광주시는 기동 점검을 강화해 각 자치구와 함께 공사 현장 안전감찰을 추진했다.

지켜지지 않은 건물 해체계획, 참사로 이어져 (광주=연합뉴스)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건물 붕괴참사를 수사 중인 광주경찰청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28일 공개했다. 국과수는 해체계획서를 무시하고 적절한 구조검토 없이 진행한 공사, 철거 과정에서 옆으로 작용한 하중 때문에 건물이 넘어지듯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광주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건축 공사장에서 광주시는 올해 110건의 지적 사항을 적발했다.

안전·품질 관리계획서 미승인, 부적절 시공 등이 건축 공사장에서 주로 지적됐다.

국회서 잠자는 법안들…"시민과 약속 지켜야"

정치권은 참사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20여 개 법안을 발의했다.

공사 현장의 사고 예방 장치 강화를 의무화한 건축물 관리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안의 과반인 14건을 차지했다.

하나로 병합된 건축물 관리법 일부 개정안은 참사 1주기를 약 열흘 앞둔 올해 5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철거 현장에 감리자를 상주하도록 한 건축물 관리법 일부 개정안은 '학동참사 방지법'으로 불렸는데도 본회의 통과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부실시공으로 인한 사망사고 발생 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처벌 수준을 강화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등 나머지 후속 법안은 여전히 상임위원회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계류 중인 후속 법안에는 건설공사 현장에서의 안전관리와 유해 위험 방지의 결함을 중대 시민 재해 범주에 담아야 한다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도 포함됐다.

기우식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참사 시민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시민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후속 법안이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 대변인은 "정치권, 특히 법안 처리 문제 해결을 약속한 더불어민주당과의 대화조차도 지금은 단절됐다"며 "참사 직후 시민과 했던 약속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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