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참사 수사종료] ① "붕괴 책임자·배후를 밝혀라" 500여일간 수사
[※ 편집자의 주 =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가 발생한 지 어느덧 1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참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처벌'과 '대책'이라는 두 과제를 풀어야 했습니다. 경찰은 사고의 직접 책임자부터, 재개발 비위 당사자까지 반드시 규명하겠다는 약속을 1년 4개월 만에 마무리했습니다. 경찰 수사 종료를 계기로 그동안 진행된 참사 책임자의 처벌과 재발방지책 수립 성과를 다시 점검해봤습니다.]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끝까지 수사하겠습니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께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붕괴하면서 지나던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의 시민이 죽고, 8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경찰은 71명의 수사관 등을 투입한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려 수사에 착수했지만, 더딘 수사 속도로 책임자를 하루빨리 규명해 처벌해야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끝까지 규명'을 약속했던 경찰이 참사 발생 500여 일만(약 1년 4개월) 만에 광주 학동 철거건물 붕괴 참사 수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수사본부를 공식 해체하게 됐다.
경찰의 1년 4개월간 수사 과정을 되짚어 '책임자 처벌'의 약속을 지켰는지 다시 되짚어봤다.
'원청 책임 규명하라' 숙제 떠안은 경찰
경찰은 사고 발생 바로 다음 날 수사본부를 공식 구성하고 수사관 등 71명을 투입해 붕괴 참사의 직접 책임자와 비위 행위자를 밝히기 위한 수사에 착수했다.
철거공사를 직접 수행한 철거업체 대표 등 4명을 우선 입건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 발생한 사고로 경찰이 해당 사업의 원청인 HDC현대산업개발(현산)까지 처벌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이자 숙제로 떠올랐다.
수사망이 좁혀지기 직전 미리 재개발 비위 브로커(문흥식 전 5·18 구속부상자회장)가 해외 도주까지 해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여기에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까지 쏟아져 외부의 기대보다는 경찰 수사는 하염없이 느리고 더딘 것처럼 보였다.
경찰은 붕괴 사고의 '직접 책임자와 원인 규명', '재개발 비위 규명'이라는 2개의 수사 방향을 분리해 외부 비판에 흔들리지 않고 차근차근 수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사고 발생 50일 만에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붕괴의 직접 책임자인 철거업체 관계자, 감리 등 5명을 구속했다.
불구속 상태로 공무원을 포함한 4명 피의자까지 총 9명을 송치했다.
학동 붕괴 참사 수사의 '1막'이 마무리된 셈이었다.
하지만 원청과 하청업체 대표 등이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는 이유로 원청과 참사의 직접 배후 등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는 시민·사회 단체의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경찰은 "가능한 형사처벌을 모두 검토한 결과로, 법의 범위를 넘어서 처벌할 수는 없었다"며 "향후 비위 분야 수사를 지켜봐 달라"고 해명했다.
압수수색만 10차례, 500일간 비위 수사
사고 직후 분노에 찬 처벌 촉구의 목소리는 시간의 물타기와 기억의 망각으로 희미해졌다.
여기에 올해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신축아파트 붕괴사고'까지 나면서, 추가 대형사고 수사과제와 다른 일상 사건까지 해결해야 할 사건만 쌓여만 갔다.
비위 분야에 대한 '2막' 수사를 본격화한 경찰은 지난해 9월 석 달간 해외 도주 행각을 마치고 자진 귀국한 재개발 현장 브로커 문흥식(전 5·18 구속부상자회장) 씨를 체포하는 데에서 수사의 불씨를 되살렸다.
뒷돈을 받고 철거 공사 등의 입찰에 관여해 부실 공사를 양산한 브로커를 포함한 5명(구속 4명·불구속 1명)을 송치하고, 조합과 업체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사정의 칼을 계속 겨눴다.
비위 분야 수사를 전담한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올해까지 총 10차에 걸친 압수수색과 피의자 각각 최대 14차례 소환 조사 등을 이어가며 수사를 지속했다.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수사를 병행하는 와중에서도 학동 참사에 대한 수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입찰 비위를 파고 들어가 현산 임원에 대한 구속을 시도하기도 했다.
조합장과 정비업자의 비위를 규명하기 위해 국회 도서관 자료까지 뒤지며 실체가 희미한 단서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입찰방해 혐의로 현산 임원과 뇌물·배임 등의 혐의로 조합장 등에 대해 각각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지만,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으로 시도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착수 500여일 만에 불법 재하도급, 입찰 계약 비위, 조합 비위, 정비사업 비위 등을 대부분 규명했다.
그 결과 브로커 5명(구속 4명) 등 기존에 송치한 피의자를 포함해 재개발 비위 분야에서만 최종 28명을 송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대형 참사 앞에 검·경 갈등 없다" 합동 대응 빛나
광주 경찰은 학동 붕괴 참사 책임·비위 행위자 전체 35명(9명 구속)을 송치해 법의 판결대 위에 세웠다.
특히 참사 수사에서는 경찰, 검찰 등 수사 당국과 고용노동부 등 유관기관의 공조도 빛났다.
경찰은 사건 발생 초기 수사 단계부터 고용노동부가 함께 압수수색을 하고, 사건 관련자를 동시 입건해 조사하는 등 수사의 보폭을 맞춰가며 대응했다.
검찰과도 수사협력단을 구성해, 조사·압수수색·송치 등 모든 수사 방향과 일정을 사전에 조율하며 협업했다.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검찰 측 담당자들이 인사발령으로 수시로 바뀌었지만, 경찰은 그때마다 검찰에 수사 과정과 성과를 일일이 설명하며 수사에서 기소로 이어지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 결과를 받아 기소부터 공판까지 공소 유지로 성과를 이어받고 있다.
수사에 참여했던 한 수사관은 그동안의 수사 과정을 '하루하루 평가대에 오르던 나날'로 회고했다.
'참사의 분노를 해소할만한 결과에는 못 미친다'는 스스로 평가와 송구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비극의 재발을 막는 초석을 경찰 수사로 쌓는다고 생각했다"며 "외부의 판단을 떠나 수사기관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결과다"고 말했다.
pch8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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