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베이어벨트, 원룸, 집회 현장···“일상의 전태일”을 기록하다

김종목 기자 2022. 10. 27. 07: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88년 ‘전태일문학상’ 처음 제정
‘인간답게 살고 있나’ 물어온 30여 년

1988년 제정된 전태일문학상이 올해 30회를 맞았다. 제정 당시 전태일기념사업회 회장이던 고 문익환 목사는 제정 취지를 두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산화하신 열사를 기념하기 위해 인간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이 담긴 글을 모아 문학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우고자 한다”고 말했다. 전태일문학상은 그간 “공장에서, 농촌에서, 학교에서, 각각의 삶터와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깨끗한 우리말로 쓴 삶의 이야기”를 뽑아 알렸다.

전태일재단과 경향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전태일문학상 제30회 수상자들도 구체적 삶을 담은 작품으로 뽑혔다. 박수봉씨는 어린 시절 노동과 가난을 그린 시 ‘영등포’ 외 3편으로 수상했다. 김은진씨는 아이스크림 공장 아르바이트와 산재를 다룬 소설 <한여름 낮의 꿈>으로 상을 받았다. 강정민씨는 ‘명절 선물 세트-신설 법인 정규직 급구’로 생활글 부문에, 손소희씨는 ‘공장의 담벼락을 허문 연대의 시간’으로 르포 부문에 당선됐다. 지난 21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동상 앞에서 수상자들을 만났다. 손씨는 참석하지 못해 e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인 강정민(생활글)·박수봉(시)·김은진(소설·왼쪽부터)씨가 지난 21일 오후 서울 청계천 전태일동상에서 만나 수상 소감과 노동 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르포 수상자인 손소희씨는 참석하지 못했다. 김종목 기자

단편소설 부문 심사는 하명희·이재은 소설가와 노태훈 평론가가, 시는 유홍준·이설야 시인과 조대한 평론가가, 생활글·르포는 박경희 시인과 안미선·정윤영 작가가 맡았다. 수상작은 제17회 전태일청소년문학상 수상작과 함께 묶여 사회평론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소설 부문 김은진 <한여름 낮의 꿈>

SPC 제빵공장 사건 떠올리는 글
“사람이 죽어도 돌아간 기계 끔찍”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한여름 낮의 꿈>을 두고 김은진씨는 사진 현상에 빗대 “(어두운 밤) 수많은 잠상들이 피어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감정과 기억들이 문장을 조합하고 구조를 만들어낸다. <한여름 낮의 꿈>은 그렇게 현상된 소설”이라고 했다.

사진가인 김씨가 떠올린 기억은 2000년대 초반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겪은 일이다. 제대 뒤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롯데, 해태, 빙그레 제품을 하청받아 만드는 공장이었다. “소설 쓰기가 점점 어렵게 다가왔고 무거워지는 것 같아 20대의 마음으로 통통 튀듯 좀 더 가볍고 재미있게 쓰자”고 시작한 소설이다. 김씨는 최근 아이스크림 공장 일이 어떤지도 살폈다.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업무 강도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변함없는 노동 현실 때문에 갑질과 노동착취, 산재까지 다루는 무거운 소설이 됐다.

주인공은 냉장창고에서 일한다. 50개, 100개 단위의 아이스크림이 한 상자에 담겨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냉장창고로 온다. 팔레트 사이에서 테이프로 상자를 봉하는 일이다. 정육면체 큐브 모양으로 상자를 수십 개 쌓으면 지게차가 냉동창고로 옮겼다. 주인공과 동료 노동자들은 졸음과 침묵 속에서 “컨베이어의 리듬에 몸”을 내맡긴 채 일했다. “고깃덩어리들이 컨베이어를 타고 지나치고 있다. 머리, 팔, 손, 다리, 발, 몸. 나는 도살된다. 해체된다” 같은 컨베이어벨트나 라인에 관한 묘사와 단상이 소설에 여럿 나온다.

컨베이어벨트로 라인 타는 작업은 정말 힘듭니다. 라인마다 다르겠지만 그 속도는 정말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있습니다. 몇 시간 뒤면 끙끙대며 신음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김씨는 “그 강도나 속도가 꼭 공장에만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이 더 빨리’가) 이 세상이 정한 속도이자 우리가 정한 속도”라고 했다. 김씨는 “현대화된 화장터에서 화구로 미끄러진 엄마의 관과 레일을 떠올렸고 컨베이어 라인이 마치 인생의 굴레처럼 느껴졌다”고도 했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김은진씨. 김종목 기자

노동자들의 뜻밖의 휴식이 찾아온다. 냉동창고에 자주 들락거려 동상에 걸려 코가 빨간 ‘딸기’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공터로 나와 밤하늘 별을 바라보거나, 땅에 떨어진 주먹만 한 얼음 조각으로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콩알만 해진 얼음 조각을 발로 비비던 중 주인공은 눈물을 흘린다. 다시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간다.

김씨는 “한 사람의 사고와 비극이 다른 사람에겐 휴식이 될 수 있다는 걸 역설적으로 얘기하고 싶었다. (얼음 축구공이) 녹아가는 지점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점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단은 “아름답고도 쓸쓸한, 절망 속에서도 끝내 체념하지는 않는 청년 노동자의 내면이 심사위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평했다. 소설은 최근 SPC 계열사 평택 제빵공장 노동자 사망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김씨는 “마음이 안 좋았다. 특히 동료가 숨진 현장 바로 옆에서 기계를 계속 가동하며 또다시 일해야 하는 현실이 끔찍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소설을 쓸 때 아내(유혜선)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제 조금 욕심을 내보려 한다. 자기 확신을 가져보려 한다. 현실 속에서 저에게 덜컥 걸렸던 경험이나 생각들을 고민하고 더 내면적인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시 부문 박수봉 ‘영등포’와 ‘청소를 하면서’ 외 1편

“이웃의 아픔 드러내는 건 시인 몫 내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가닿길”

“교복 대신, 먹물을 들인 헐렁한 군복에다/ 몽키 스패너를 챙겨 넣고/ 왼쪽 오른쪽을 고민하면서 꿈을 풀고 조이던/ 영등포, 뒷골목의 보닛을 열어보면/ 각종 슬픔이 벌레처럼 바글거렸다/ 시퍼런 산소불로 구멍 난 삶을 때우다보면/ 자꾸만 더 커져가던 구멍/ 휑한 그곳으로 마구 몰려들던 어머니, 어머니.”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시 부문 당선자 박수봉씨의 ‘영등포’는 1970년대 10대 청소년일 때 자동차 라디에이터 수리점에서 일하던 경험을 녹인 시다. 처음 이 글을 읽을 때 지금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시인 줄 알았다. 고된 노동으로 삶을 감당하기 힘든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인 듯했다.

“산업화란 이름으로 산업 현장으로 내몰린 어린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21세기 노동현장에서도 비정규직이라든지 외국인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이 당시 상황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을 상기하려 한 작품입니다.”

박씨는 수리점에서 문학잡지를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웠다. 최근까지 문학기행 같은 데 참여하며 공부하고, 시를 써왔다. 올해 초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뽑혀 등단했다.

박씨는 지금 원룸 건물 관리자로 일한다. 박씨는 한 세입자가 이사하며 버리고 간 옷장과 침대 매트리스를 옮기느라 안간힘을 쏟다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박수봉씨. 김종목 기자

이 원룸엔 노인과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이 주로 산다. 병사와 자살, 도망 같은 일을 겪곤 한다. 박씨는 “소규모 공장 비정규직 청년들이 받는 급여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원룸 월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몸이 아프다거나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그 비용을 부담하다 보면 정작 자신의 생활을 원활히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그는 시 ‘청소를 하면서’에서 연체된 월세를 낼 수 없어 옷 보따리만 챙겨 달아난 이들을 ‘도주세대’라고 이름 붙였다. 원룸에 버리고 간 물품, 벽지에 써 놓은 욕설을 보며 분노하기보다는, 청년의 곤궁함, 절망과 어둠에 공감하려 했다.

“바닥에 버리고 간 각종 고지서에서 그의/ 무수한 불면의 밤들이 쏟아진다/ 벽지에 써 놓은 욕설을 지우다가 그것이/ 문지를수록 번지는 그의 상처임을 알았다”(‘청소를 하면서’ 중)

심사위원단은 “메울 수 없는 가난의 구멍과 그곳에 몰려드는 슬픔을 직시하는 시인의 표현들이 압권인 작품이었다. 이웃들의 멍든 자리를 닦으려 하는 마음과 삶에 밀착해 있는 구체적인 시어들이 심사자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평했다.

박씨는 “내 목소리를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가닿게 하려고 자신을 불사르듯 쓴다”고 했다. 사회의 그늘진 곳을 주시하는 시인이 되려 한다고 했다. “소외된 계층의 어려운 현실과 그들의 아픔, 그 현실 때문에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을 조명하는 작품을 쓸 생각입니다. 그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입니다.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생활 글 부문 강정민 ‘명절 선물 세트―신설 법인 정규직 급구’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 글을 쓰면서 이뤄낸 것 같아 기뻐”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생활 부문 당선작은 강정민씨의 ‘명절 선물 세트―신설 법인 정규직 급구’다. 경력 단절 뒤 처음 구한 직장에서 명절 때 샴푸와 비누, 치약이 든 선물 세트를 받은 뒤 강씨는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 주는 명절 선물 세트를 받는구나 싶어서 기쁘기만 하다고 느꼈다. 이 글엔 여러 번 ‘쓸모’라는 말이 나온다.

심사위원단은 “글의 완성도가 높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픔, 여성 노동자로서 차별을 받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불리는 현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비록 손바닥 뒤집듯 잘 뒤집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강인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 준 작품”이라고 평했다.

강씨는 대학 졸업 뒤 학원에서 1년 정도 일했다. 스물다섯 살 때다. 스물일곱에 첫째를 낳았다. “세 아이에게 나는 너무 중요한 사람이지만 사회에서는 안 보이는, 없어도 그만인 사람으로 20년을 넘게 살았다”고 말한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이사 같은 일을 했지만, 무급 일이 많았다. “사회적 관계, 특히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관계에 목말랐다”고 한다. “애들이 사달라고 조르는 거 내가 번 돈으로 사줄 때 그 맛이 다르더라고요. 돈이 많아서 벌 필요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사회에 나가 뭔가 제 몫의 일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사회적인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막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취업에 나섰다. 사무직 노동자부터 기초학력 강사까지 여러 일을 했다. 지금은 기간제 공무원을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겪은 일을 당선작에 담았다.

최저임금 등 여러 문제를 겪었다. 강씨는 “가장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은 최저임금 미만일 거 같다. 일하기도 전에 일할 맛을 잃게 만든다”고 말했다. 무례한 태도도 힘들었다고 한다. “일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사람을 저리 대하진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태도들”이라고 했다.

일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사회에서도 제 몫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엄마는 아직도 ‘너는 잘될 것이다. 뭐든 될 수 있다’ 한다. ‘네 태몽이 너무 좋았다’며 아직도 기대를 못 버리신다. 남편을 쉬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년 남편이 입사 30주년이 된다. (30년간) 딱 한 달 유급휴직, 한 달 무급휴직 한 게 다이다. 최저임금이라도 안정적으로 일자리에 취업한다면 남편이 옆길도 보고 할 여유가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를 못 준 게 미안하다”고 했다. “남편이 살림하면 나보다 더 잘 할거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글 부문 수상자 강정민씨. 김종목 기자

강씨는 글쓰기로도 평가받고 싶었다고 한다. 두 번째 도전에서 상을 받았다. 수상 소감 질문에 답하면서도 ‘쓸모’를 이야기했다. “가장 기쁜 건 이 수상을 계기로 내 글이 우리 사회에 쓸모가 있다는 인정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최근 10년간 월간 ‘작은책’의 글쓰기 모임에 나갔다. “초고를 읽어주고 용기 주는 남편과 아이들, 글쓰기 세계로 이끈 ‘작은책’과 회원들에게도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노동의 뜻을 다시 새기는 시간이다. 최근 홍고추를 다듬어 물김치를 만들다 ‘캡사이신 화상’을 입었다. “50년 김치를 먹었고 나 역시 주부면서도 홍고추를 다듬는 고통을 몰랐다. 우리 식탁을 떠받쳐준 숨은 노동의 고통을 이제야 한 가지 더 알았다. 이렇듯 존재하지만 글에 담기지 않은 것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전태일의 무게감을 알기에 삶에 선택의 순간에 그 이름을 생각하고 결정할 거 같다. 일터에서 생긴 일을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감도 얻은 듯하다. 강씨는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기에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도 스스로 한계 짓지 않을 생각이다. 소설 쓰기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르포 부문 손소희 ‘공장의 담벼락을 허문 연대의 시간’

“KEC 노동자들 노조 사수 투쟁기 부조리와 싸우는 이들 편에 설 것”

손소희씨는 ‘공장의 담벼락을 허문 연대의 시간’으로 제30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로 뽑혔다. “구미 (주)KEC 노동자들이 민주노동조합을 지켜내기 위한 시간을 기록한 이야기”다. “문제에 맞서 주체적으로 싸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노동자들의 노력에 공감과 연대의 시선”을 보냈다는 평을 받았다.

‘공감과 연대’를 위한 글쓰기를 사명으로 삼은 건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손씨는 “사드를 반대하는 성주 주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조금 느리고 가난해도 여유롭게” 살고 싶어 2012년 대구에서 경북 성주로 이주했다. 2016년 성주 사드 배치가 알려진 뒤 반대 투쟁에 나섰다. 날마다 촛불집회와 성주주민들의 싸움을 일기처럼 써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사드 반대 싸움을 알리기 위해서 썼던 글이 제 마음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드 문제 말고도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부패에 맞서서 싸우는 사람들을 편들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노조를 지켜내려 싸우는 노동자의 투쟁을 역사로 기록하려 아사히비정규직노조와 KEC노조를 찾았다. 손씨는 “구미공단에서 제조업 공장으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문자 한 통으로 178명이 해고를 당합니다. 아사히글라스라는 일본기업은 사내하청인 GTS를 폐업해버립니다. 2015년 6월 말에 벌어진 일입니다.” 7년이 지난 지금 조합원 138명 중 22명이 남아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회사가 지회장을 뺀 나머지의 복직과 보상금을 제시한 적도 있지만 노동조합은 단칼에 거부했다. 모두가 다 함께 현장에 들어가야 하니까. 현장에 들어갈 때 민주노조로 들어가겠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KEC 조합원들은 투쟁 과정에서 사측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 등을 당했다. 손씨는 “(공장이 폐업될지도 모를 위기의 순간을 살아내는) 암담한 상황에도 KEC지회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의 투쟁을 지원한다. 그걸 당연하게 해왔다는 게 매우 경이로웠다”고 말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 손소희씨. 손씨 제공

손씨는 이들의 투쟁을 기록하면서 역사 진보의 실체는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으로 이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다운 존재로 존재하기 위한 투쟁이 역사를 진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씨는 수상작에서 연대를 강조한다. “우리는 유기적인 존재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받으면서 연결되었는데, 그것을 감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연대라고 생각한다”며 희정 작가의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오월의 봄) 프롤로그를 인용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일하는 사람을 일회용처럼 취급하지만 유기적인 몸을 지닌 채 타인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인간은 일회성 존재가 될 수 없었다. 피해마저 연결되어 있다.”

손씨는 “자본주의라는 야만의 세계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싸람’(ssaram.co.kr)이란 팀의 일원으로 글을 쓴다. ‘소성리여자전’도 준비하고 있다. “성주 소성리 마을을 지키고 선 여자들이 어떻게 전쟁을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평화운동가가 되었는지 같은 이야기들 말이에요.”손씨는 “르포라는 장르의 문학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거 같다. 지속적으로 르포작품을 발굴하고 세상에 내보일 기회를 만들어주신 것은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며 전태일문학상에 감사의 말도 전했다.

역대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집 목록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