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위기가구]⑪<끝> 빅데이터도 놓치는 '송파 세모녀'…민간인프라 키워야 비극 막는다
'좋은 이웃' 제도, 지자체 절반 유명무실…日처럼 정부 주도 필요
[편집자주]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이 지났지만 복지 사각지대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지난 8월 경기 수원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고, 이후에도 안타까운 사연들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취약계층이 보내는 위기 신호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여전합니다. 제도나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모두 끌어안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합니다. 뉴스1은 절벽으로 내몰린 위기가구를 놓치지 않기 위한 현장의 다양한 시도를 찾아보고, 복지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사회 취약계층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이른바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보다 꼼꼼한 사회복지시스템 구축 등 재발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예산을 늘리고, 인력을 확충해 두 번 다시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은 그때뿐이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복지인력 한계와 사회적 무관심에 밀려 제2, 제3의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정부 행정력에 더해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특히 행정당국의 손이 미치지 않는 사회 곳곳의 위기가구 발굴을 위해서는 민간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수반돼야 한다는 논의가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오가고 있다.
◇ 빅데이터 기반 위기가구 발굴 노력…정보수집·전문인력 확보 여전히 난제
한정된 인력에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위기가구 발굴 노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넘치는 복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관리인력 문제 탓인데 여전히 개인정보보호법, 시스템 관리를 위한 전문인력의 부재 등 현실적 제약이 많아 견고한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법 제정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7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건강보험료 체납, 월세 미납 등이 누적될 경우 위기가구 징후로 포착, 각 지방자치단체에 관리 명단을 넘기고 있다.
이 같은 위기가구 발굴에 있어 핵심 자료가 되는 게 빅데이터다. 복지부는 그동안 단전·단수·단가스, 건강보험료·국민연금보험료 체납, 기초수급 탈락·중지, 복지시설 퇴소, 금융연체, 통신비 체납 등 위기정보를 빅데이터화해 관리해왔다.
지난 9월부터는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위기정보 수집 대상을 39종까지 확대했다. 보다 촘촘한 위기가구 관리를 위해서다. '중증질환 산정특례', '요양급여 장기 미청구', '장기요양 등급', '맞춤형 급여 신청', '주민등록 세대원' 등의 항목이 추가됐다.
하지만 견고한 시스템 구축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 세 모녀 비극처럼 위기가구로 발굴하더라도 현행법상 실거주지 변경 등에 대한 개인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제약이 크다.
여기에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스템 관리 인력 부족도 문제다. 시스템 구축 초기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구축사업단에는 343명의 인력을 투입했지만 무려 307명이 퇴사했다. 하지만 충원 인력은 60여명에 그쳤다.
전문인력 부재로 인한 문제는 당장 현실이 됐다.
실제 지난 9월부터 복지부는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개통했지만 시스템 오류로 아직까지도 복지서비스 곳곳에 혼선이 일어나고 있다.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개인의 소득·재산·인적사항을 분석해 신청자가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선제적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시스템 개통 후 한 달간 10만건의 오류가 발생하면서 생계급여와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수당 지급에도 차질이 생겼다. 소득·재산 등의 조사가 늦어지면서 전국 37개 임대주택 단지의 당첨자 발표가 미뤄지기도 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라면 사회 곳곳에서 촘촘한 복지시스템 구축을 위한 민간차원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은 복지 위기가구 발굴을 위한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을 검토 중이다. 그동안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재난안전 솔루션 개발에 치중해왔는데, 전문성을 바탕으로 복지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서비스 향상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은 뉴스1과 통화에서 "정부 차원의 정보수집도 애를 먹는데 거의 민간이라 볼 수 있는 연구원에서는 제약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면서 "그럼에도 빅데이터 기반 복지서비스 구축을 생각해 본 것은 미처 공공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곳들은 민간인프라 차원에서라도 보듬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이 컸다"고 말했다.
◇ '민간 인프라' 필요성…日 '민생위원'이 지역사회 복지전달체계 연결고리로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정부 행정력만으로는 사회 곳곳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복지 위기가구를 모두 보듬기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 행정력을 뒷받침할 민간부문 인프라 활용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는 논의가 학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정부나 국회가 입법을 통해 민간 자원을 법 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만들 때 시스템과 인력 부족에 따른 복지 사각지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일본에서는 '민생위원'(Welfare commissioner)이라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90여년 가까이 지속 중인 민생위원은 일본 지역사회에서 복지전달체계의 연결고리로써 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사회복지 구조에서 민생위원‧복지위원은 사회복지서비스 활동을 전개해가는 핵심요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역사회복지 전달체계 인적 자원 활용에 있어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민생위원법에 따라 구성된 민생위원은 일본 후생노동대신(한국의 보건복지부장관+고용노동부장관)이 위촉한 비상근 지방공무원이다.
이들은 주민의 입장에서 담하고, 필요한 지원을 함으로써 사회복지 증진에 노력하는 사회봉사자를 말한다. 주로 지방자치단체에 배치돼 지역주민들을 위해 일한다.
급여는 받지 않지만 활동에 필요한 전화요금·교통비 등 실비는 지자체에서 보전을 받는 식으로 운영한다.
우리나라에도 '좋은 이웃'이라는 제도가 운영 중이다. 일본처럼 정부·지자체 소속이 아닌 한국사회복지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복지사업의 한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다보니 내실화한 운영이 어렵다는 점은 한계다.
실제 열악한 예산 등을 이유로 전국 232개 시·군·구 중 정상운영 중인 곳은 겨우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상목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은 "공공기관의 행정력이라는 게 사회 소외된 곳까지 미치지 못하는 게 문제"라며 "그렇다면 민간 인프라까지 적극 활용한 촘촘한 복지체계를 검토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장을 돌아다녀 보면 우리 모든 복지 프로그램은 자격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면서 "이것은 현장에 있는 담당직원들이 재량권이 없다보니 상급기관 눈치만 보느라 도움을 호소하는 이들을 쫓아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복지담당 직원들이 조금이나마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다음으로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히 구성할 수 있도록 정부 행정력에 더해 민간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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