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작가 "물가 반영한 20억, 꼭 김고은 어깨에 얹어주고 싶었다"[SS인터뷰]

심언경 2022. 10.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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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심언경기자] “겨울코트? 가난은 겨울옷으로 티가 나요. 여름에는 그럭저럭 남들 비슷하게 입을 수 있는데 겨울옷은 너무 비싸니까요.”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주인공 오인주(김고은 분)가 돈이 있으면 뭘 사고 싶었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이다.

이 대사를 두고 시청자들은 열띤 토론을 펼쳤다. 어떤 이는 ‘가난 혐오를 부추긴다’며 불쾌함을 토로했다. 애써 외면한 진실을 정확히 짚어내면 불편하기 마련이다. 오인주의 말을 듣고 가슴이 저릿해져 눈물을 흘린 이 역시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래도록 가난을 지나온 사람이 아니면 떠올릴 수 없는 대사’라는 반응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은 아씨들’을 집필한 정서경 작가는 대학생 시절 친구와 살았던 집을 세 자매가 사는 집의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대학교 다닐 때 친구랑 같이 살았던 집이 모델이었다. 그 집도 샤워하려면 몸을 굽혀야 했고, 개미 다니는 길이 있었다. 그리고 방충망이 없었다. 여름에는 불을 안 켜놓고 살았다.”

자기 방식대로 가난에 잠식당하지 않고 당당히 두 발을 땅에 딛고 선 세 자매와 어릴 적 정 작가는 닮아 있었다. “그 집에서 늘 행복했던 기억만 있다. 한 번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 거라는 생각 같은 건 해보지 않았다. 근데 그런 미래가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고, ‘우리는 이렇게 살게 되겠지’ 하는 느낌이었다. 극 초반 가난에 대한 묘사들이 올드하고 낭만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는데, 너무 회고적인 가난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아씨들’은 하이퍼리얼리즘에 판타지를 곁들인 드라마다. 고졸 출신 경리에 이혼녀인 오인주, 불행한 사람들이 더 불행해진 현장을 취재할 때 눈물을 참지 못하는 오인경(남지현 분), 돈이 없어서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을 덤덤하게 포기하는 오인혜(박지후 분)는 현실이다. 이들이 원령가의 700억원과 엮이고, 결국 꿈도 이루고 거액을 손에 쥐는 결말은 환상이다.

정 작가는 700억원의 종착점을 장고했다고 털어놨다.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매듭지으려면 그 돈은 원령산업의 대주주인 박효린(전채은 분)이 다 가져야 했다. “가장 안전한 결말은 이 돈을 사법 처리하는 것이었다. 변호사님께 자문도 드렸다. 그런데 사법 처리가 되면 그 돈이 회사로 돌아간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돈이 돌아가야 될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발점에서 가장 먼 곳으로 보내고 싶어서 세 자매 중 가장 어린 친구에게 보내봤다. 관습적인 부담을 떨치고 새롭게 시작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비자금 700억원은 현재 물가를 고려해 책정됐다. “3년 전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는 아파트 한 채를 10억으로 살 수 있었다. 그래서 비자금을 300억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20억으로도 아파트를 살 수가 없더라. 그래서 고심 끝에 20억으로 올렸고, 비자금 액수도 조금 높여봤다. 그리고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 최대치를 감안했다.”

오인주는 진화영(추자현 분)이 남긴 20억원을 커다란 배낭에 넣고 옮겼다. 정 작가는 의도적으로 돈의 이동 수단을 캐리어가 아닌 가방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10억은 등산 가방에 넣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섞일 수 있는 정도였는데, 20억이 되면서 세계 일주 갈 때 쓸 법한 가방을 메야 했다. 하지만 그 돈을 꼭 인주의 어깨에 얹어주고 싶었다. 그걸 얹었을 때 기쁘기도 하겠지만 부담감도 있을 거고, 두려움과 희망이 동시에 있지 않겠나. 그 감정들을 어깨에 얹고 다니게 하고 싶었다.”
700억원과 함께 작품의 핵심인 ‘푸른 난초’는 고전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에서 출발했다. “난초는 두 왕따(오인주·진화영)를 황당한 곳에서 만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제난초협회를 상상했다. 한가한 느낌이 들지 않나. 돈과 관련된 바쁜 것들에서 반대쪽에 있는 난을 다루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난초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 같더라. 그래서 화영이 죽는 장면에 난초를 놔봤다. 살인 현장마다 떨어뜨리는 거다.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은 시리즈 중 유일하게 범인이 잡히지 않는 편이다. 그걸 다 읽은 밤에 무서워서 잠을 못 잤다. 말라빠진 오렌지 씨앗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감과 바로 현장이 옆에 있는 듯 생생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푸른 난초가 아름다운 꽃이지만 그걸로 사람들을 무섭게 하고 싶었다.”

주인공을 여성으로, 더 나아가 세 자매로 둔 배경을 추측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각에서는 오인주를 시민으로, 오인경을 언론으로, 오인혜를 예술로 치환해 작품을 이해했다. 정 작가는 “어떻게 보면 세 자매가 한 인간의 다른 면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문학 작품에서 자매나 형제를 주로 세 명으로 설정한다. 이건 마음의 세 부분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마음속에서 싸우기도 하고 연합하기도 하고, 그런 부분이 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특성들을 살려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매들이 각각 10대, 20대, 30대다. 우리가 조금씩 그런 시기를 겪고 오지 않았나 싶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똑똑하진 않지만 본질을 바라보고, 욕심에 취약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인주. 세상에 중요한 정보를 다루고 싶어하고 참여하려고 하는 인경이. 인혜는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내가 10대 때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그걸 감사해한다거나 돌려주지 못했었구나 했다.”

사진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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