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겨울]②꿈 대신 도박·일확천금에 물든 2030…코로나 후폭풍 시작됐다
로또 신흥 '큰손' 20대…"사회적 단절 증상 시작돼"
[편집자주] 또 겨울이다. 없는 이들에게 겨울은 더 혹독하다. 경기는 바닥을 향하고 있는데 물가마저 치솟고 있다. 여기에 금리까지 올라 빚 부담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올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막막하다는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경기침체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을 들여다봤다. 어쩌면 민생을 살펴야 할 이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되지 않을까. [편집자 주]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 28살 김모씨는 코인 투자와 선물거래로 지난 4년간 2억원을 날렸다. 첫 비트코인 거래로 50만원 수익을 맛본 것이 발단이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투자한 4000만원이 500만원으로 토막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다시 뜨거워진 코인 시장을 보며 자신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옷도 사지 않고 식비도 줄였다. 월급은 족족 코인에 투자했다. 중독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4000만원을 추가로 투자한 코인이 상장 폐지되면서 김씨의 돈도 꿈도 모두 한순간 휴지 조각이 됐다.
다급한 마음에 대출을 받아 선물거래에 손을 댔다. 이마저도 모두 잃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대출금 상환을 위해 최근 투잡으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김씨는 "내 나이에 열심히 돈을 모은 사람들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전세에도 사는데 신세가 초라하다"며 "언제 이 생활을 탈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 심리는 불안한 경제 상황을 대표하는 시그널이다. 경기가 얼어붙으면 도박이나 복권은 인생 역전의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더 강한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특히 코로나19와 경기침체기를 겪는 지난 3년 사이엔 2030세대가 한탕주의에 유독 깊이 물들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왕성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연령대가 오히려 경제적 위기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던 셈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유행 이후 인간관계 단절로 형성된 불안 심리가 서서히 사회 문제로 발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로나發 경기침체 속 '한탕' 노리는 2030
27일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이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도박 상담자 수는 2018년 대비 약 52%(1만955명) 증가했다.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은 2013년 도박 문제 예방과 재활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한 공기관이다. 치유원이 도박 문제로 상담한 건수는 2018년 7만8746건에서 지난해 10만6424건으로 많아졌다.
상담자 연령대는 30대가 1위, 20대가 2위로 매년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코인, 주식 투자나 사행성 도박 중독 상담 사례가 절반에 달한다.
2030세대 사이 투자와 도박 중독이 급증한 이유는 코로나19로 시작된 경기 침체와 집값 급등, 비대면 문화를 포함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노력이 곧 성공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불황기 요행을 기대하는 심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온라인에 친숙한 성향도 코로나19와 함께 큰 영향을 미쳤다. 김용석 가톨릭대학교 일반대학원 중독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카지노, 경륜, 경마와 같은 오프라인 도박이 사라졌다"며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2030세대가 다른 연령대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도박이나 투자 중독은 물리적 접근성보다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환경에서 비롯한 사회적 접근성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에서 투자 성공 사례를 다수 접하면서 받은 영향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에 믿을 건 로또뿐?…복권 판매점 달려가는 2030
도박과 함께 복권은 경기 불황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된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 복권이나 스크래치 카드 구매가 증가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닷컴버블 붕괴 시기인 2000년대 초에도 글로벌 경제 위기와 함께 국내 복권 판매액이 꾸준히 증가했다. 기획재정부가 펴낸 '2022 복권백서'에 따르면 연도별 복권 매출은 △2000년(5087억원) △2001년(7217억원) △2002년(9820억원)으로 3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2003년에는 온라인 복권 열풍까지 불면서 4조2342억원이라는 매출액을 기록하기도 했다.
복권 판매량으로만 진단하면 지난해 국내 경기는 불황 신호가 뚜렷하다. 지난해 국내 복권 판매액은 5조9755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복권 판매액 규모는 매년 커지다가 코로나19가 확산한 2019~2020년 유독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2030세대 복권 구입액이 유독 증가한 현상도 눈에 띈다. 기재부 산하 복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9~29세 연간 로또 1회 평균 구입 금액은 2018년 대비 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 평균 구입액은 5% 많아진 반면 50대는 1% 증가에 그쳤고 40대는 오히려 3% 줄어들었다.
다만 경제 불황기에 복권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가설이 언제나 들어맞는 설명은 아니다. 외환위기로 경제가 어려웠던 1998년 복권 판매액은 3209억원으로 전년(3663억원) 대비 줄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숫자는 이듬해인 1999년 4191억원까지 치솟으며 증가세로 돌아섰다.
◇"사회적 단절 증상 시작…2차, 3차 범죄 우려" 전문가는 코로나19로 곪은 사회 문제가 도박과 같은 행동으로 발현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인적 교류가 단절되면서 형성된 폐쇄적인 사고방식이 중독성이나 충동성을 조절하기 어려운 증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는 사람들로 하여금 독립적 공간에서 홀로 오랫동안 지내도록 하면서 사회 활동을 통한 자기 객관화 기회를 제한했다"며 "앞으로도 온라인을 통해 단편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된 젊은 층 사이에서 학습력 저하, 불안 심리, 좌절감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도박은 미래를 대비한다기보다는 현실 도피개념"이라며 "앞이 보이지 않고 불안한 심리에 자포자기한 2030세대가 많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사기, 횡령, 강도와 같이 도박이나 투자 자금 조달을 위한 2차 범죄가 전방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최근 잇따라 알려진 기업과 기관 내 수억원대 횡령 사건 역시 대부분 자금을 코인이나 주식, 도박에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장과 학교에서 단순 교육에 그칠 것이 아니라 중독 예방 분야 전문 인력 양성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용석 가톨릭대 중독학과 교수는 "도박은 특히 금전 확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경기침체가 장기화할수록 사회 문제는 점차 증가할 것"이라며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해결은 더욱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독 예방을 위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독분야 전문가를 국가 자격증화하고 예방 프로그램과 교육, 상담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국가가 책임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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