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농수산물시장 화재 피해 상인들 “경보음 울렸지만 스프링클러 작동 안 했다”
상인들 “소방설비 먹통” 주장
경찰·국과수, 현장 감식 진행
지난 소방점검 10여건 지적도
“어제 경매로 사둔 청과류들이 다 타버렸어. 피해가 얼만지 파악도 안 돼.”
영남지역 최대의 농산물과 수산물이 거래되는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20년째 중매업을 하는 최재호씨(60)는 잿더미로 변한 점포를 보며 탄식했다. 그는 전날 밤 화재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시장으로 달려왔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화마가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멍하니 지켜봐야 할 뿐이었다. 최씨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가전제품, 지게차까지 모두 타버렸다”며 “언제 복구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26일 오전 6시20분쯤 찾아간 도매시장 A동 일대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바닥에는 시커먼 잿물이 가득했고 불에 타버린 감과 배, 호박 등이 나뒹굴었다.
점포 곳곳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냉장고가 전날 찾아온 화마의 무서움을 짐작하게 했다. 지붕이 내려앉고 기둥은 시커멓게 변해 본래 구조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반쯤 타버린 감 상자를 뒤적이던 한모씨(62)는 “커다란 불기둥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는 바람에 가게에 있던 현금도 챙기지 못했을 정도”라며 “(거래)장부라도 가지고 나오려고 다시 점포로 들어가려던 상인들도 불길이 너무 거세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날 A동 농산물 경매도 차질을 빚었다. 통상 오전 6시쯤 시작되는 경매는 예정시간을 2시간쯤 넘겨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소실된 점포 바깥으로 경매물건이 쌓여있기만 했다.
지난 25일 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발생한 큰불이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소실된 점포는 농산 A동 점포 152개 중 69개(45.4%), 피해 면적은 8000여㎡로 추산된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상인들은 소방설비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재산 피해가 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피해 상인들은 스프링클러가 ‘먹통’ 상태였다고 입을 모았다. 상인 이모씨는 “앞쪽 상가가 다 불에 타는데 스프링클러는 안 터졌고, 우리 가게에 있는 설비(스프링클러)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최모씨도 “(화재 당시) 화재경보음만 울리고 스프링클러는 작동 안 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1988년 10월 농산 A동이 개장할 당시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상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A동 지하공간(330㎡·약 100평)에는 2018년 6월 스프링클러가 설치됐다. 정남구 대구소방본부장은 “(설치 시점이) 1998년과 1996년 등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파악되지 않았다”면서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역시 경찰 및 국과수와 감식을 벌인 뒤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올해 소방점검에서 유도등, 미점등, 가스 누출 등 10여건의 지적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가 난 농산 A동(연면적 1만6504㎡)은 1만㎡가 넘어 자체 소방점검 대상이다. 지난 9월 민간업체를 통해 점검이 이뤄졌으며, 소방당국은 다음달 20일까지 시정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다만 관련 지적사항이 스프링클러 작동 등에 영향을 줬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등과 함께 현장감식에 나섰다. 박성훈 대구강북경찰서 형사과장은 “출입자에 의한 방화 혹은 내부 실화, 감전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도매시장 내 주차장 등을 활용해 임시 경매장과 중도매인 점포를 설치하는 등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정의관 대구시 경제국장은 “상인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경영안전자금을 지원하고 필요시 긴급생계지원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백경열·김현수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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