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밀 본사 앞 노동자들 “직원 생계 위해 매각이라도 나서라”
1997년 입사 25년차 직원
한날한시 통보받은 부자
“황당함 넘어 화나고 절망”
26일 오전 8시쯤 버스 한 대가 서울 방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푸르밀 전주공장에서 직원들을 태우고 서울 영등포구 본사로 가는 버스였다. 20대 젊은이부터 50대 나이 지긋한 직원까지 저마다 간이방석과 빨간 조끼를 챙겼다. 25년차 입·출고 담당직원 신승진씨(50)도 그중 하나였다. “잘 좀 됐으면 좋겠다….” 창밖을 보며 그는 계속 되뇌었다.
해고는 재난처럼 공장을 덮쳤다. 지난 17일, 저녁 근무조인 신씨는 여느 때처럼 오후 4시에 출근해 입출고 작업을 했다. 평소 같던 하루는 공장 게시판 앞에서 무너졌다. 식사를 위해 복도로 나선 그의 눈앞에 ‘해고 공지’가 붙은 게시판이 보였다.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 공고.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습니다. 50일 전까지 해고 통보해야 하지만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아래와 같이 공고합니다. 정리해고 대상: 일반직·기능직 전 사원. 정리해고일: 11월30일. 대표이사 신동환.”
“처음엔 황당했고, 황당함이 지나니 화가 나고, 그 뒤엔 절망을 느꼈죠.” 1997년 4월1일 입사한 신씨에게 거짓말 같은 날들이 시작됐다. 그에게 푸르밀은 첫 직장이자 평생직장이었다.
신씨와 함께 버스에 오른 같은 공장 생산직 A씨는 곧 결혼식을 올리는 아들을 떠올렸다. 1987년 취업한 A씨에 이어 아들도 푸르밀 전주공장에 취업했다. 탄탄한 공장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꿈꾼 부자(父子)는 한날한시에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A씨가 버스에 오르기 전날, 아들은 회사 게시판에 청첩장을 붙여야 할지 고민된다고 했다. A씨는 야근조인 아들 대신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신씨와 A씨를 포함한 푸르밀 전주공장·대구공장 직원 100여명은 26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영등포구 본사 앞에 도착했다. 모두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이었다. 상경투쟁에 나선 직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철회하라”라고 적힌 손팻말을 나눠 들었다. 아침부터 구호를 연습하고 익숙지 않은 노래를 익혔다. “우리가 이런 투쟁을 해 본 사람들이 아니에요. 처음이죠. 전부 일만 하던 사람들이라…. 내몰리니까 나온 거죠.” 신씨가 말했다.
직원들은 푸르밀 서울 본사 건너편 인도에 앉아 구호를 외쳤다. 본사 건물 앞에는 ‘정리해고는 살인행위다’ ‘일하고 싶다, 살고 싶다’고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1978년 ‘롯데우유’로 출발한 푸르밀은 신 대표이사가 취임한 2018년 이후 계속 적자를 내다 정리해고 사태를 맞았다. 신 대표의 아버지인 신준호 전 회장(고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은 30억원의 퇴직금을 챙겼다.
김성곤 노조위원장은 “직원들이 피땀으로 쌓아온 푸르밀이 무능한 (경영진의) 경영실패로 적자에 허덕이며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며 “직원들의 생계를 위해 공개 매각에라도 나서라”고 요구했다. 집회가 마무리된 오후 1시까지 푸르밀 본사 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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