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최측근’ 국정원 기조실장 돌연 사임…후임에 또 검찰 출신
김규현 국정원장 패싱 논란 일어
‘일신상 이유’라지만 배경 관심
후임 김남우는 ‘김앤장’ 변호사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52)이 26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면직처리됐다. 검찰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인 조 전 실장은 국정원 핵심 실세로 불려왔다. 면직 과정에서 외교관 출신인 김규현 국정원장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조 전 실장 후임으로 검사 출신인 김남우 김앤장 변호사를 내정했다.
국정원과 국회 정보위원회 등 설명을 종합하면 조 전 실장은 건강 문제 등 일신상 사유로 대통령실에 전날 사의를 표명해 이날 면직처리됐다. 지난 6월 임명된 지 4개월여 만이다.
국정원 예산과 조직 등 내부 살림을 총괄하는 기조실장(차관급)은 ‘국정원 2인자’로 평가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 전 실장은 국정원 최고 실세라는 의미에서 ‘왕실장’으로 불렸다.
그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당시인 2019년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맡아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듬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놓고 ‘추윤대전’(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검찰총장 간 갈등)이 벌어지면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뒤 검찰을 떠났다.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 변호인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조 전 실장이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되자 정보기관까지 검찰 출신 대통령 최측근이 장악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 전 실장 임명 직후부터 국정원은 전임 정부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야권은 조 전 실장이 ‘기획사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의심한다.
■‘국정원장 패싱’ 논란에 대통령실 “임면권자는 대통령”
대통령실이 국정원장에 ‘조상준 면직처리 방침’ 일방적 통보
조 전 실장 ‘전 정부 지우기’ 앞장…국정원장 넘는 실세 평가
김규현 원장 “인사 갈등 없어”…비리·음주 관련 여부 “모른다”
조상준 전 실장(사진)이 국정원에 온 뒤 조직 물갈이도 본격화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 전원을 대기 발령 조치하고 감찰을 벌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좌천·퇴직한 간부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조 전 실장이 사임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회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국정원 국정감사 브리핑에서 “일신상의 사유로 파악될 뿐 구체적인 면직 이유는 국정원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사임 이유에 대해 국정원에서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개인적 사유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밝혀드리지 않겠다”며 “국정원 국감과 연관이 있어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고위직 인사 문제를 둘러싼 조 전 실장과 김규현 원장 간 갈등설이 나온다. 박지원 전 원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인사 문제로 김 원장과 조 전 실장 간 충돌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KBS 라디오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부장 2급 인사에서 김 원장과 충돌이 있었다”며 “2024년 1월1일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문제로도 알력이 있었단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인사 갈등설에 “그런 사항은 없다”고, 개인비리 또는 음주운전 관련설에는 “모른다”고 말했다고 윤 의원이 전했다.
조 전 실장의 사의 표명과 면직처리 과정에서 김 원장이 패싱됐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국정원과 대통령실 등의 설명에 따르면 조 전 실장은 전날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이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요청에 따라 업무시간 중 한덕수 국무총리의 중간 결재를 거치는 등 행정 절차가 진행됐다. 김 원장은 전날 오후 8~9시 대통령실 유관 비서관에게 조 전 실장 면직처리 방침을 통보받고 인사혁신처에 면직을 제청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재가해 이날 조 전 실장은 면직처리됐다.
조 전 실장이 김 원장에게는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고, 김 원장이 조 전 실장 면직처리 방침을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것이 패싱 논란의 핵심이다. 유 의원은 “조 전 실장이 직접 김 원장에게 사의 표명 전화를 한 바는 없는 걸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김 원장이 어제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에 용산(대통령실) 담당비서관에게 조 전 실장 면직처리를 유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통화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이 기관장인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용산에 사표를 낸 것”이라며 “사표를 용산에 냈어도 (대통령실이 면직처리와 관련해) 국정원장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에서 하극상이 일어난 것”이라며 “윤 대통령 인사가 망사로 드러났다. 김 원장도 이번 일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패싱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정원장이 임면권자라면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는 말이 되지만, 임면권자(대통령)에게 사표 쓰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임명했던 것도 대통령이고 면직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며 “대통령에게 의사를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이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사의를 대통령에게 표명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기강해이 사건”이라며 “대통령실은 일신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광연·정대연·심진용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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