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최측근’ 국정원 기조실장 돌연 사임…후임에 또 검찰 출신

박광연·정대연·심진용 기자 2022. 10. 2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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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준, 대통령실에 사의 ‘면직’
김규현 국정원장 패싱 논란 일어
‘일신상 이유’라지만 배경 관심
후임 김남우는 ‘김앤장’ 변호사
국정원 국감장 ‘2인자’ 빈자리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26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권춘택 1차장,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백종욱 3차장. 이날 면직 처리된 조상준 기획조정실장 자리가 비어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조상준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52)이 26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면직처리됐다. 검찰 출신으로 윤석열 대통령 최측근인 조 전 실장은 국정원 핵심 실세로 불려왔다. 면직 과정에서 외교관 출신인 김규현 국정원장을 ‘패싱’했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은 조 전 실장 후임으로 검사 출신인 김남우 김앤장 변호사를 내정했다.

국정원과 국회 정보위원회 등 설명을 종합하면 조 전 실장은 건강 문제 등 일신상 사유로 대통령실에 전날 사의를 표명해 이날 면직처리됐다. 지난 6월 임명된 지 4개월여 만이다.

국정원 예산과 조직 등 내부 살림을 총괄하는 기조실장(차관급)은 ‘국정원 2인자’로 평가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조 전 실장은 국정원 최고 실세라는 의미에서 ‘왕실장’으로 불렸다.

그는 윤 대통령의 검찰총장 당시인 2019년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맡아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이듬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놓고 ‘추윤대전’(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 검찰총장 간 갈등)이 벌어지면서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된 뒤 검찰을 떠났다.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 변호인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조 전 실장이 국정원 기조실장에 임명되자 정보기관까지 검찰 출신 대통령 최측근이 장악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 전 실장 임명 직후부터 국정원은 전임 정부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국정원은 지난 7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 서훈·박지원 전 국정원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야권은 조 전 실장이 ‘기획사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의심한다.

■‘국정원장 패싱’ 논란에 대통령실 “임면권자는 대통령”

대통령실이 국정원장에 ‘조상준 면직처리 방침’ 일방적 통보
조 전 실장 ‘전 정부 지우기’ 앞장…국정원장 넘는 실세 평가
김규현 원장 “인사 갈등 없어”…비리·음주 관련 여부 “모른다”

조상준 전 실장(사진)이 국정원에 온 뒤 조직 물갈이도 본격화했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1급 간부 전원을 대기 발령 조치하고 감찰을 벌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좌천·퇴직한 간부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조 전 실장이 사임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국회 정보위 국민의힘 간사인 유상범 의원은 국정원 국정감사 브리핑에서 “일신상의 사유로 파악될 뿐 구체적인 면직 이유는 국정원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사임 이유에 대해 국정원에서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개인적 사유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밝혀드리지 않겠다”며 “국정원 국감과 연관이 있어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고위직 인사 문제를 둘러싼 조 전 실장과 김규현 원장 간 갈등설이 나온다. 박지원 전 원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인사 문제로 김 원장과 조 전 실장 간 충돌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KBS 라디오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지부장 2급 인사에서 김 원장과 충돌이 있었다”며 “2024년 1월1일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문제로도 알력이 있었단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인사 갈등설에 “그런 사항은 없다”고, 개인비리 또는 음주운전 관련설에는 “모른다”고 말했다고 윤 의원이 전했다.

조 전 실장의 사의 표명과 면직처리 과정에서 김 원장이 패싱됐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국정원과 대통령실 등의 설명에 따르면 조 전 실장은 전날 대통령실의 유관 비서관에게 사의를 표명했고 이를 보고받은 윤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 요청에 따라 업무시간 중 한덕수 국무총리의 중간 결재를 거치는 등 행정 절차가 진행됐다. 김 원장은 전날 오후 8~9시 대통령실 유관 비서관에게 조 전 실장 면직처리 방침을 통보받고 인사혁신처에 면직을 제청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재가해 이날 조 전 실장은 면직처리됐다.

조 전 실장이 김 원장에게는 사의를 표명하지 않았고, 김 원장이 조 전 실장 면직처리 방침을 대통령실 비서관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것이 패싱 논란의 핵심이다. 유 의원은 “조 전 실장이 직접 김 원장에게 사의 표명 전화를 한 바는 없는 걸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김 원장이 어제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에 용산(대통령실) 담당비서관에게 조 전 실장 면직처리를 유선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박 전 원장은 통화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이 기관장인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용산에 사표를 낸 것”이라며 “사표를 용산에 냈어도 (대통령실이 면직처리와 관련해) 국정원장 의견을 물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에서 하극상이 일어난 것”이라며 “윤 대통령 인사가 망사로 드러났다. 김 원장도 이번 일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패싱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며 “국정원장이 임면권자라면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대통령에게 직보했다는 말이 되지만, 임면권자(대통령)에게 사표 쓰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도 “임명했던 것도 대통령이고 면직 권한도 대통령에게 있다”며 “대통령에게 의사를 확인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정원 기조실장이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사의를 대통령에게 표명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기강해이 사건”이라며 “대통령실은 일신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광연·정대연·심진용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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