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안중근의 소나무관(棺)

이기수 기자 2022. 10. 2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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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소나무관에 안치돼 뤼순(旅順)감옥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국 언론보도를 국가보훈처가 안 의사 의거 113주년인 26일 공개했다. 중국 선양에서 발간된 1910년 3월30일자 <성경시보>는 안 의사 둘째동생인 안정근 지사에게 뤼순감옥 관리자가 “고심 끝에 파격적으로 하얼빈의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관 위에 흰 천을 씌운 영구(靈柩)를 감옥 내 교회당에 둔 후 우덕순 등 3명의 죄수들에게 조선 예법에 따라 두번 절하게 하여 고별식을 치르도록 허락했다”고 보도했다. 국가보훈처 제공

안중근 의사 유해가 하얼빈산 소나무관에 안치됐다고 보도한 중국 신문을 26일 국가보훈처가 공개했다. 중국 선양에서 발간된 1910년 3월30일자 ‘성경시보’는 안 의사 동생인 안정근 지사에게 뤼순감옥 관리자가 “고심 끝에 파격적으로 하얼빈의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관 위에 흰 천을 씌운 영구(靈柩)를 감옥 내 교회당에 둔 후 우덕순 등 3명의 죄수들에게 조선 예법에 따라 두 번 절하게 하여 고별식을 치르도록 허락했다”고 보도했다. 유해 발굴의 새 단서로 소나무관이 추가된 것이다.

김훈이 쓴 고증적 소설 <하얼빈>엔 거사를 ‘대의명분이 없는 우발적 총격’으로 몰아가려는 일본 검사에게 안 의사가 ‘국권을 침탈하고 동양평화를 깬 일제 만행’을 일깨우는 대화가 곳곳에 나온다. ‘의사’나 ‘정치범’이 아닌 흉악범으로 몰아 일본의 위신을 세워보려 한 것이다. 조선 풍속·예법에 따라 목관을 쓰고 천주교 신자인 안 의사 유구를 교회당에 둬 거사 공모자들도 조문하게 했다는 보도는 안 의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일본도 최소한의 예는 취한 걸 엿보게 한다. “고심 끝에 파격…”이라는 옥리 말이 그렇게 읽힌다.

소나무로 만든 관은 내구성이 길고 가공이 쉬우며 방충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반도 전역에 사는 소나무는 애국가 2절, 이율곡의 ‘세한삼우(歲寒三友)’, 김정희의 ‘세한도’에 나오듯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상록침엽수다. ‘대한국인’의 거사와 올곧은 풍모에도 어울린다. 다만, 일본이 안 의사 거사 후 온 도시를 뒤지고 한스럽게 여긴 하얼빈의 소나무관을 뤼순까지 가져온 것은 의아스러움도 있다.

성경시보엔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달라는 동생 안정근 지사에게 일본이 “유해는 다른 사형수와 동일하게 감옥이 관리하는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될 것”이라고 했다는 보도도 들어 있다. 뤼순감옥 내 공동묘지에 매장됐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안 의사의 유언은 김구 선생이 1948년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유해 발굴을 제안한 뒤 역대 대통령이 힘을 쏟았지만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효창공원 ‘삼의사’ 옆 허묘에 안 의사를 모시는 일은 계속돼야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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