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니 잊지 말아주세요”
미얀마는 누군가에겐 그저 지겹게 싸우는 나라일 것이다. 이 나라의 오랜 투쟁이 다시 시작된 것은 지난해 2월1일이었다. 미얀마 군부는 이날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족민주동맹(NLD)이 대승을 거둔 2020년 11월 총선 결과를 부정하며 정권을 장악하고 시민들을 죽였다. 이후 민주화의 상징인 수치 고문에게는 부패 혐의를 씌워 형량을 덧씌우고 있다. 지난해 4월 쿠데타 이후 한국 외교부가 미얀마에 내린 ‘여행 적색경보’(철수권고)는 1년 반째 그대로다.
제3세계의 싸움은 쉽게 잊힌다. 누군가에겐 벌써 잊힌 미얀마 민주화 투쟁 소식을 전하기 위해 리안 흐몽 사콩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연방장관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민족통합정부는 미얀마 군부에 맞서 지난해 4월 만들어진 민주진영의 임시정부다.
리안 흐몽 사콩 장관은 21일 서울대에서 열린 학술대회 ’미얀마 봄의 혁명과 민족 간 화합과 공존을 향한 길’에 참석해 한국 시민사회의 더 깊은 관심과 연대를 당부했다. 앞서 지난 20일 사콩 장관은 서울 성공회대에서 20여명의 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아이엔지’(ing) 현재진행형입니다.”
친족 무장단체 ‘친민족전선’ 부의장
스웨덴 웁살라대학 사회학 박사 출신
지난주 성공회대·서울대에서 강연
과거엔 다수 버마족 중심으로 진행
4개 소수민족 무장단체들도 합류해
“8888혁명 이래 온국민 다함께 투쟁중”
미얀마는 1947년 독립했지만, 1962년 3월 네 윈 군부정권이 들어선 뒤 지금까지 군부의 강력한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민중들은 1988년 ’8888혁명’ 등으로 이에 맞서는 한편, 수치 고문을 중심으로 끈질긴 투쟁을 이어왔다. 결국 미얀마 군부는 국제 사회의 압력과 시민 사회의 요구에 밀려 일정 정도 타협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치러진 2015년 11월 총선에서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이 압승을 거뒀다. 여전히 군부가 강한 ‘비토권’을 쥔 상태에서 수치 고문의 측근인 틴 초를 대통령으로 하는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하지만, 이들이 5년 뒤 치러진 2020년 11월 총선에서 다시 압승을 거두자 민 아웅 흘라잉이 이끄는 군부의 인내심은 바닥을 치고 만다. 이들은 지난해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켜 수치 정부를 무너뜨렸고, 그에 맞서는 미얀마 시민사회의 투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 반독재 운동을 ‘미얀마의 봄’이라 부른다.
리안 흐몽 사콩 장관은 강연에서 “과거 군부 독재 하에서 소수민족은 특히 많은 것을 금지당했다”며 “종교(불교)로 통치하려 하거나 소수민족 언어를 배우지 못하게 하자 소수 민족들은 자기 결정권과 독립을 위해 군부에 맞서 내전을 벌여왔다”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수치 고문의 민족민주동맹도 소수민족을 차별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특히 수치 고문은 2017년 8월 말 미얀마 군부가 저지른 로힝야족 학살 때 미온적 태도를 보여 감당하기 힘든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한국의 5·18기념재단도 2004년 수치 고문에게 수여했던 광주인권상을 2018년 철회했다.
군부 쿠데타 직후인 2021년 4월 출범한 민족통합정부는 민족민주동맹의 이런 ‘과오’를 시정하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민족통합정부는 소수민족들과 적극 연대를 지향해 4개 소수민족 무장단체(EAO)들이 합류해 있다. 그동안 미얀마 민주화운동이 다수 버마족(전체 인구의 70%)을 중심으로 진행됐음을 인정하며, 변방에서 중앙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소수민족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리안 흐몽 사콩 장관도 소수민족인 친족 출신으로, 친족 무장단체인 ‘친민족전선’(CNF)의 부의장을 맡고 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 사회학 박사 출신인 그는 정치적 활동과 더불어 영어와 미얀마어로 수많은 책과 논문을 발표해 미얀마 연방주의 설계를 위해 힘써왔다. 그런 공로로 2007년 마틴루터킹 상도 받았다.
그는 “지금의 혁명은 민족민주동맹만의 혁명이 아니다. 수치 고문을 영웅시하거나 그에 대한 인간적 맹신을 가진 것도 아니다”며 “지금 싸움은 온 국민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합류하지 않았지만 우리와 가까운 사이인 (다른 소수민족) 단체들이 앞으로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젊은 세대인 ‘제트(Z) 세대’의 역량이었다. “1962년부터 꾸준히 군부 독재에 맞서 많은 대학생들이 반쿠데타 활동을 했다. 1976년만 해도 대학생 위주의 투쟁이었지만, 1988년(8888 혁명)부터 온 국민이 다 함께 군부독재를 퇴진시키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고 강조한 그는 “2021년의 싸움도 제트세대라는 젊은층에서 시작해 시간이 지나며 전국으로 확대됐다”고 말했다.
그가 한국 시민사회에 요청하는 것은 미얀마 투쟁에 대한 끊임 없는 관심과 지지였다. 그는 1980년 5월 한국의 광주민중항쟁을 특별히 언급하며 “한국에도 군부독재가 있었다는 걸 안다. 한국의 반 쿠데타 운동도 대학생에서 시작해 노동자와 온 국민이 함께 했다. 한국에선 결국 민주주의가 성공했다. 미얀마는 현재진행형이고 아직 노력하는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 인권이나 평화가 없는 나라가 많고, 그중에 미얀마에선 쿠데타에 맞선 투쟁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항상 생각해줬으면 한다. 그 한 가지를 꼭 부탁드리고 싶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얀마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변화는 대개 느리기도 하고 빠르기도 하다. 서로의 내정에 잘 간섭하지 않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은 이례적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미얀마 군사정부 지도자의 정상회의 참석을 거부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쿠데타 직후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지지한다”는 발표를 했지만, 기업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불법 수출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연대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 이상으로 미얀마 민중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국제적으로 가장 시급한 도움이 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리안 흐몽 사콩 장관은 “국제 사회가 민족통합정부를 미얀마의 공식 정부로 지지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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