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전 살린다더니 '핵연료 재활용' 무산위기

이새봄 2022. 10. 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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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연구한 '파이로' 중단 기로
파이로, 핵폐기물 원전 재투입
극소수 남은 물질만 땅에 매립
운영효율 높이고 용지도 줄여
美 정부도 '지속적 연구' 승인
尹정부 국정과제 포함됐지만
핵폐기물 특별법선 제외위기
정부, 실증로 건설부담에 난색
사용후 핵연료 통째 매립 추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자들이 밀폐시설에서 로봇팔을 활용해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국원자력연구원]
정부가 원자력 진흥을 위한 '탈원전'의 일환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한국이 전 세계에서 기술적 우위에 서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파이로)'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법 제정의 기반이 되는 정부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이 사용 후 핵연료를 '처분'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핵폐기물의 독성과 부피, 처분 면적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재처리 기술인 파이로 기술 개발에 대한 항목이 빠졌기 때문이다. 파이로는 탈원전 정책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 기조에 맞춰 윤석열 정부가 11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시켰던 프로젝트다. 하지만 정작 원자력 진흥을 위한 법안 마련 과정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원자력계에서는 25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1997년부터 25년간 정부가 총 7889억원을 들여 개발하고 있는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방식이다. 사용 후 핵연료를 500~650도의 고온에서 전기분해해 이 안에 있는 다양한 핵물질을 특성별로 분리·회수해 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고, 일부는 다시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기술이다. 농축 우라늄으로 만든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3년 정도 타고 나면 연료로서의 기능을 잃은 폐연료봉(사용 후 핵연료)이 되는데 여기에는 여전히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며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우라늄(U235, U238)이 93%나 남아 있다. 파이로를 거치면 이를 다시 핵연료로 만들어 재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용 후 핵연료 안에 존재하는 '골칫거리', 즉 독성이 오래가는 초우라늄 원소도 소각된다. 이 때문에 파이로를 거치면 폐연료봉 부피는 약 20분의 1, 방사성 독성은 1000분의 1로 줄어든다. 따라서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 규모도 100분의 1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판단한다. 원자력계에서 파이로가 '꿈의 기술'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파이로는 현재 실험실 규모와 공학 규모 시험을 거쳤으며 기술적 타당성 검증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25년의 개발기간을 거쳐 실증 단계에 접어든 이 기술에 대한 항목이 정작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특별법 관리 계획을 세우고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증발되며 파이로 기술 개발·완성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현재 원전 용지 내에 설치된 임시 폐기물 저장 시설은 사실상 포화 상태다. 탈원전에서 벗어나 한국 원자력 사업이 부활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현안으로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핵폐기물 처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한국은 1978년 1호 원전을 가동한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방식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땅이 좁은 한국은 폐기물을 직접 땅에 묻는 것보다는 프랑스·영국·스위스처럼 재처리 후 처분하는 방식이 훨씬 유리하지만 일부 정책 결정자들이 경제성이 떨어질 수 있고 실증로 건설 등에 추가적인 예산이 상당히 소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며 파이로 같은 재처리 방식을 핵폐기물 관리 특별법에 담는 것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원자력연구원을 비롯한 원자력계에서는 이미 지난해 탈원전을 표방하던 전 정부에서조차 파이로 연구를 지속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기술개발을 계속하기로 의결한 사안을 현 정권에서 뒤엎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구정회 한국원자력연구원 핵주기환경연구소장은 "파이로는 쉽게 생각하면 쓰레기를 최대한 분리수거·재활용해서 버리자는 것인데, 폐기물 처분에 대한 법안에서 이를 빼고 직접 처분만을 고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한국 정부는 지난해 7월 미국 정부와 함께 파이로의 기술성·경제성·핵비확산성의 연구성과를 담은 '한미 원자력연료주기공동연구(JFCS) 10년 공동연구 보고서'를 승인한 바 있다. 같은 해 12월에는 원자력진흥위원회가 적정성 검토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바탕으로 파이로 기술 개발을 지속할 것을 의결했다.

파이로 연구의 지속성에 제동이 걸린 것은 같은 달 산업통상자원부가 수립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 계획'에 폐기물의 처분에 대한 내용만 담기고 '처리기술'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면서부터다. 2016년 수립된 1차 기본 계획에는 '장기적으로 관리시설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사용 후 핵연료의 부피·독성저감연구(파이로)와 타당성 입증 지속 추진'이라는 언급이 있지만, 지난해 말 1차 계획을 일부 수정한 2차 계획에서 같은 내용이 빠졌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부가 파이로 연구를 국정과제에 담으며 상황이 다시 반전됐다.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탈원전 폐기,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라는 국정 목표 내에 파이로프로세싱 한미 공동연구 마무리와 향후 계획에 대한 대미 협의를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 관련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는 법안 마련이 제2차 계획을 기준으로 마련되면서 파이로와 관련된 계획이 다시 빠졌다. 고준위 방폐물 처리 관련 법안은 현재 총 3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방사성 폐기물 관리 2차 기본 계획에 파이로가 빠진 이유는 배제할 목적이 아니라 원천적인 기초 R&D(연구·개발) 분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기초 R&D 쪽에서 재원 등이 확보되어야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과제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파이로는 개념 설계와 파이로 실용화 연구시설 구축·운용 등에 약 13년의 시간과 수천억 원대의 예산이 필요하다. 상당히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제 산업부의 고준위 방폐물 용지 선정에 소요되는 기간에 맞춘 연구 개발 로드맵이다.

구 소장은 "산업부가 추진하고 있는 직접 처분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직접 처분 연구와 파이로 연구를 병행하고, 2038년까지 정책 결정에 필요한 파이로 기술 결과를 제공해 가장 좋은 처분 방법을 선택·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우리의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양명승 영산대학교 석좌교수(전 원자력연구원장)는 "주민들을 설득할 때도, 독성을 최소화하는 처리 과정 없이 그냥 가져다 묻는다고 하면 설득이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의 법안 통과만 보지 말고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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