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싱크탱크의 변질…시민·노동 대신 원전·4대강 인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는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을 위한 각종 정책과 계획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우리와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사실 우리 일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 관여한다.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다. 이를테면, 화력발전소는 사라지고 휘발유차는 전기차로 바뀔 것이다. 발전소 노동자와 인근 식당 주인, 주유소 사장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탄소를 줄이려면 각종 생산 공정과 사회 시스템을 바꿔야 하므로 전력요금이나 폐기물 처리비용, 농업 방식 등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한다. 이런 것들에 영향을 미치는 상위 계획을 바로 탄녹위가 심의∙의결한다.
그렇다면, 이 위원회에는 누가 있을까?
26일 탄녹위는 제2기 민간위원 32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대통령실 소속인 탄녹위는 이번 정부 들어 조직을 새로 개편해 기존 8개 분과를 4개 분과로 줄이고, 민간위원도 기존 72명에서 32명으로 절반 이상 줄였다.
이날 <한겨레>가 신임 민간위원의 프로필을 요청하니, 탄녹위는 “개인정보라서 제공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직접 경력을 살펴보니, 과학기술 및 산업계, 기업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전문가 그룹만 유임됐고, 환경단체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목소리를 높였던 인사들은 제외된 한편 새로운 인사도 들어오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인물로 가장 주목받는 이는 김지희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그는 지난 정부 때 탈핵 정책에 맹렬히 반대했던 30대 ‘거리의 과학자’다. 윤석열 대선 캠페인에 참여했으며, 이번 정부 인수위 경제2분과에서 활동했다.
김 연구원은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 찬조연설에서 “민주당 정권은 눈과 귀를 틀어막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듣지 않았다. 문 정부 5년간 수많은 인재가 피와 땀으로 이뤄낸 원자력 국산화가 무너졌고 열심히 일해온 연구자는 마피아가 됐다”고 주장했다. 거리에서 ‘원자력 바로 알리기’ 운동을 한 그는 ‘원전이 기후변화 대응에 강력한 무기인데도 배제했다’며 탄녹위를 비판하기도 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관직을 맡았던 이들도 돌아왔다. 조신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미래전략수석비서관을 했으며, SK브로드밴드와 SK커뮤니케이션즈의 대표이사를 거쳤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2016~2017년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을 지냈다. 윤종수 세계자연보전연맹 이사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1~2013년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이도 명단에 올랐다. 신현석 부산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사회정책수석실 환경분과(4대강) 자문위원을 했고, 4대강사업을 추진하던 4대강사업본부 낙동강분과 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영달 시도지사협의회 사무총장은 이번 정부 인수위에서 지역균형발전특위 상근 자문위원을 맡았다.
반면 지난 탄녹위 때 다양한 사회계층을 대표하던 이들은 모두 빠졌다. 청년 계층을 대표하는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종교계를 대표하던 각 종단과 종교단체 대표들, 노동자를 대표하던 한국노총 위원장,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 인사들은 이번 탄녹위 민간위원 명단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지난 임기에 이어 유임된 이는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박현정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 이기택 포항공대 교수, 이규진 아주대 지속가능교통연구센터 교수, 조홍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승완 충남대 교수, 유가영 경희대 교수, 이선경 청주교대 교수, 정병기 녹색기술센터 소장 등 9명이다. 과학기술과 관련 법률을 대표하는 전문가 그룹 소속 인사들이다.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15조는 “탄녹위원을 위촉할 때에는 청년, 여성,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계층으로부터 후보를 추천받거나 의견을 들은 후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다양한 사회계층과 합의를 이루며 고통을 분담하며 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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