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첫날 '원전 육성'만 외친 탄소중립녹색성장위
전문가·환경단체 ‘이명박의 녹색성장 시즌2’ 비판
친원전, 친산업계 위원 구성에 사회적 약자 배제
정부가 26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녹위)를 출범시키면서 노후원전 수명 연장, 관련 산업 육성 등을 중심으로 한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새로운 방안은 없고, 기존 에너지 정책을 깎아내리는 내용이 담겼다. 현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되려 후퇴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단체와 노동계, 사회적 약자 등을 철저히 배제한 채 정부 입맛에 맞는 전문가가 다수 포진된 위원회 구성도 반발을 사고 있다.
탄소중립위·녹색성장위 합한 탄녹위 공식 출범
정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민간위원 위촉장 수여식과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기존의 탄소중립위와 녹색성장위가 지난 3월 시행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따라 통합해 대통령 소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출범했다. 위원회는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총리와 김상협 카이스트 부총장을 포함해 관계부처 장관 등 당연직 위원 23명과 위촉직인 민간위원 32명으로 구성됐다.
탄녹위는 정부의 탄소중립·녹색성장 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 추진전략을 심의한다. 이 전략을 토대로 온실가스 감축 이행 로드맵과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새 로드맵과 기본계획은 2023년 3월쯤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탄소중립, 글로벌 중추국가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삼고, 책임있는 실천, 질서 있는 전환, 혁신주도 탄소중립·녹색성장 등의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구체적인 탄소중립 녹색성장 추진전략으로는 원전 확대 및 재생에너지와의 조화 등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제시했다. 원전 확대를 위해서는 지난 정부에서 건설이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재개와 2030년까지 운영허가가 만료되는 노후 원전 10기를 계속 운전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현재 운영 중인 57기 중 낡은 20기를 2030년까지 폐지하기로 했다.
녹색성장 방안으로는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고, 무공해차와 재생에너지, 수소산업 등 핵심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100대 핵심기술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탄녹위는 지역 맞춤형 탄소중립 전략을 수립하고,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 정례회의체를 운영하는 등 지방 중심의 탄소중립 정책을 지원할 방침이다. 각 지자체가 탄소중립·녹색성장 조례를 제정하도록 하고, 2027년까지 100개의 지원센터를 설립하는 방안 등이 추진된다.
윤 대통령 “기존 온실가스 감축 목표 비과학적”
정부는 이날 기존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수단 등에 대해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이 부족해 실현 가능성이 미흡한 한계가 있었다”며 “비현실적 에너지 정책”이었다고 평가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한경단체 등은 정부의 새 탄소중립·녹색성장 추진전략을 기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후퇴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의심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탄소중립을 위한 감축 목표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표현들이 추진 전략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며 “말로는 목표를 지키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킬 의지가 없음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청사에서 진행한 탄녹위 오찬 간담회에서 기존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국민 부담이 어떤 것인지 과연 제대로 짚어보고 한 것인지 의문”이라며 “국제사회에 제시했는데 국민과 산업계에서 어리둥절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적 근거도 없고 산업계의 여론 수렴이라던가(하지 않고) 로드맵도 정하지 않고 발표했다”며 “어찌 됐든 국제사회에 약속은 했고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진전략이 산업 육성에만 치중돼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명박 정부 시절의 ‘저탄소 녹색성장 시즌2’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탄소중립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인 온실가스 감축이나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 실태를 개선하고,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내용은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을 지낸 김상협 부총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점도 탄녹위가 사실상 녹색성장위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노동계·환경단체 빠지고 사회적 약자도 배제
32명의 탄녹위 민간위원에 원자력 전문가는 포함됐지만 노동계와 환경단체는 없다는 점도 비판 받고 있다. 지난 정부의 탄소중립위원회에는 한국노총이 참여했었고, 환경단체 출신 전문가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미 위기가 확산 중인 석탄화력발전과 자동차산업에 대한 정의로운 전환과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직접 이해관계자인 노동자가 정책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이행과정을 공동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탄녹위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맞게 인적 구성 등 체계 전반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또 “탄소중립 과정에서 피해가 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되지 않도록 노동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헌석 정책위원은 “기후변화 적응 측면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농민들이 위원 구성에서 빠져있고, 환경단체도 민간 연구소를 제외하고는 배제됐다”며 “핵발전에 우호적이거나 산업계 입장과 비슷한 전문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추진전략은 문재인 정부의 기후 부정의 정책을 모두 계승하는 한편 도리어 더 악화시키고 있다”며 “그 자체로 사고 위험과 다량의 핵폐기물을 발생시키는 위험한 수단인 핵발전을 기후위기 주요 대응책으로 삼는 어리석은 관점”이라고 비판했다. 비상행동은 이어 “(탄녹위) 위원장은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으로 핵발전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인사”라며 “탄중위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구인지, 핵산업 진흥을 위한 기구인지 먼저 그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비상행동은 “윤석열 정부가 가는 길은 ‘탈원전 정쟁’이라는 허수아비와 싸우다 정의로운 기후위기 대응에 실패하는 길”이라며 “ 핵발전은 절대 기후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 추진전략으로는 기후위기 대응도, 기후정의 실현도 모두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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