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감기약’ 사태 어디까지 가나

김서영 기자 2022. 10. 2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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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비아 이어 인도네시아에서도
감기약 먹은 수백명 사망

서아프리카 감비아에서 아동들이 급성 신장질환을 앓다 숨진 데 이어 인도네시아에서도 141명이 사망했다. 서로 떨어진 두 국가에서 벌어진 이 사태의 공통분모로는 인도산 기침·감기 시럽이 꼽힌다. 환자들은 독성 물질 디에틸렌 글리콜(EDG)과 에틸렌 글리콜(EG)이 함유된 시럽을 복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감비아에 해당 시럽을 공급한 인도 제약사와 인도 당국의 관리 부실 또한 도마에 올랐다.

급성 신장 질환으로 숨진 아동들···공통점은 ‘감기 시럽’

최근 감비아에서 아동들이 원인 불명으로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감비아 보건당국이 추적해보니 사망한 아동의 연령은 5개월~5세가 대부분이었으며 사인은 급성 신장 질환이었다. 감비아 정부에 따르면 해당 연령대의 급성 신장질환은 지난 7월말부터 이례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15일(현지시간) 기준 감비아에서 급성 신장질환으로 숨진 아동은 70명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사망 사례가 늘어가자 의료계에서는 아동들이 특정한 약을 복용해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닐까 추정했다. 감비아 정부 조사 결과 환자들은 지역에서 판매된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 성분 기침·감기 시럽을 복용한 뒤 3~5일 내로 신장에 증세가 생기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렀다.

급성 신장 질환(AKI)으로 아들을 잃은 마리아마 쿠야테(30)가 지난 10일(현지시간) 감비아 반줄에서 아들의 사진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도 메이든 제약사가 제조한 시럽 4가지가 감비아에서 벌어진 사태와 관련 있다고 지목했다. 지난 5일 WHO는 메이든 제약사 제품 4가지의 샘플을 분석한 결과 디에틸렌 글리콜(EDG)과 에틸렌 글리콜(EG)이 ‘허용할 수 없는 양’으로 기침 시럽에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디에틸렌 글리콜과 에틸렌 글리콜은 기침 시럽에 용매로 사용되는 프로필렌 글리콜에 첨가되기도 하나, 독성 때문에 인체에서 간 및 신장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기침 시럽 제조업체는 의료용 프로필렌 글리콜을 구입해 사용하기 전에 안전성을 테스트해야 한다고 스트레이트타임스는 전했다.

그러나 인도 정부가 메이든 제약사를 상대로 조사해 보니 품질 검사 미비, 유통기한 미표기 등 위반 사항 12건이 적발됐다. 인도 정부는 제조 중단을 명령했으며 메이든 제약사의 해당 기침 시럽이 ‘오염됐다’고 밝혔다. 감비아에 수출된 오염된 시럽은 2021년 12월 제조로 확인됐다. 메이든 제약사는 문제의 제품을 감비아에만 수출했다고 했으나 WHO는 다른 국가로도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네시아도 아동 급성 신장 질환 속출···141명 숨져 ‘비상’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반둥의 한 학교에서 지난 21일(현지시간) 열린 급성 신장 질환(AKI) 인식 캠페인에서 광대가 ‘에틸렌 글리콜, 디에틸렌 글리콜이 함유된 시럽을 피하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후 이 ‘오염된 감기약’ 사태는 인도네시아로 번졌다. 안타라통신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 24일 기준 26개 주에서 아동의 급성 신장 질환이 245건이 확인됐고 이중 141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감비아와 마찬가지로 환자와 사망자는 대부분 5세 이하다. 통상 아동의 급성 신장 손상 사례가 월 2~5건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급증한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파악한 건수도 지난 1개월간 증가해오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원인 미상의 아동 신장 질환을 감비아 사태와 관련지어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부디 구나딘 사디킨 보건부장관은 급성 신장질환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 올 초가 아니라 지난 8월이라고 밝혔다. 안타라통신에 따르면 사디킨 장관은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9월 정부는 해당 질환을 겪는 아동들이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기생충에 감염된 것은 아닌지 조사했다. (그러나) 그 결과 이러한 감염이 원인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고 말했다. “아마 코로나19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검사 대상 아동 중 코로나19 양성은 1% 미만이었다”고도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아동 사망이 연이어 보고되고 있는 급성 신장 질환(AKI)을 예방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액체 또는 시럽 약에 대한 처방과 판매를 중단했다. 사진은 지난 22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적십자 병원에서 관계자들이 점검에 나선 모습. EPA연합뉴스

그러다 지난 5일 WHO가 감비아에서 아동들이 독성 화학물질로 인해 급성 신장질환을 앓다 사망했다고 경고했고, 인도네시아도 환자들을 대상으로 독성 검사를 실시했다. 보건부에 따르면 아동 10명의 소변과 혈액을 검사한 결과 7명에게서 디에틸렌 글리콜과 에틸렌 글리콜이 검출됐다. 이미 사망한 이들에게서도 독성 물질로 인한 신장 손상이 확인됐다. 환자들의 집에서 발견한 약 대부분에서도 이 물질들이 발견됐다고 보건부는 밝혔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기반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급성 신장질환의 원인이 디에틸렌 글리콜, 에틸렌 글리콜과 에틸렌 글리콜 모노부틸 에테르(EGBE)가 함유된 약이라고 결론내렸다.

인도네시아 사례와 인도 메이든 제약사 기침 시럽 간의 인과관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인도네시아가 의약품 대부분을 인도와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연관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메이든 제약사의 제품이 인도네시아 당국에 등록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밀수로 유통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조사 대상에 오른 시럽 제조사를 밝히지 않았으며, 대신 예방 차원에서 조사가 끝날 때까지 모든 액체 또는 시럽약에 대한 처방과 판매를 중단했다. 인근 국가도 경계에 나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도 메이든사 제품이 당국에 등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도 의약품 관리 도마에···과거에도 유사 사례

이번 사태로 ‘세계의 약국’을 자처하는 인도의 의약품 관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스트레이트타임스는 메이든 제약사가 과거에도 유사한 문제를 빚었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인도 중앙정부는 메이든 제약사를 품질 위반 문제로 기소했으며, 인도 내 최소 2개 주가 이 회사의 제품이 기준 이하라고 판단했다. 베트남에서는 2011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메이든 제약사는 자사가 인도 중앙의약품표준관리기구(CDSCO)의 인증을 받았으며 제조 기준을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CDSCO의 불투명성과 부패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인도는 전체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45%를 아프리카에 공급한다.

지난 6일(현지시간) 감비아 반줄에 모아진 기침 시럽. AFP연합뉴스

시럽에 함유된 디에틸렌 글리콜로 인한 인명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인도만 놓고 봐도 2019년 12월~2020년 1월 아동 12명이 디지털비전 제약사에서 제조한 디에틸렌 글리콜이 첨가된 기침 시럽을 복용한 후 사망했다. 1998년 디에틸렌 글리콜이 있는 거담제를 복용한 아동 33명이 숨지기도 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009년 해당 성분이 함유된 치통 진통제를 복용한 아동 84명이 사망했다. 2007년엔 미 식품의약국(FDA)이 디에틸렌 글리콜이 들어있는 중국산 치약에 긴급 수입 경고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디에틸렌 글리콜과 에틸렌 글리콜은 부동액을 비롯해 산업 분야에 주로 사용된다. 무색투명한 알코올의 일종이지만, 술과 달리 소량으로도 치명적이다. 독성이 있기 때문에 섭취할 경우 두통, 복통, 구토, 배뇨장애, 간, 신장 및 중추신경계 손상 등을 초래할 수 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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