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삶의터전 집어삼키는 모습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 상인들 '망연자실'
점포 152개 중 69곳, 8000㎡ 소실.."현금·장부도 못 챙겼다"
“어제 경매로 사둔 청과류들 다 타버렸어. 피해가 얼만지 파악도 안 돼.”
대구 북구 매천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20년째 중매업을 하던 최재호씨(60)는 26일 잿더미로 변한 자신의 점포를 보며 망연자실한 채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날 밤 화재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시장으로 달려왔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화마가 삶의 터전을 집어삼키는 장면을 멍하니 지켜봐야 할 뿐이었다. 이곳에는 26일 새벽 경매에 부칠 농산물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는 “농산물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가전제품, 지게차까지 모두 타버렸다”며 “언제 복구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 쉬었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 지난 25일 발생한 큰 불이 3시간여 만에 진화된 가운데 재산 피해액이 막대할 것으로 추정됐다. 피해 상인들은 화재 당시의 처참함을 전했다.
26일 오전 6시20분쯤 찾은 불이 난 농수산물 도매시장 A동 일대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바닥에는 시커먼 잿물이 가득했고 불에 타버린 감과 배, 호박 등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점포 곳곳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냉장고가 전날 찾아온 화마의 무서움을 짐작하게 했다.
A동은 전체면적 1만6504㎡으로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돼 있다. 가운데 넓은 공간을 두고 위쪽과 아래쪽에 상가들이 늘어선 구조라고 소방당국은 설명했다.
하지만 지붕은 내려앉고 기둥은 시커멓게 변해 버려 구조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소방당국 점포 152개(입점 120개) 가운데 69곳, 8000여㎡가 소실된 것으로 추정했다.
반쯤 타버린 감 상자를 뒤적이던 한모씨(62)는 불길이 순식간에 번지면서 현금조차 챙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커다란 불기둥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는 바람에 혼비백산해 점포에 있던 현금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며 “(거래)장부라도 가지고 나오려고 다시 점포로 들어가려던 상인들도 불길이 너무 거세 포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김모씨는 화재 당시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그는 “펑, 펑 거리며 터지는 소리가 수십번 넘게 들렸다”며 “가스통이 터지면서 큰 폭발이 일어날까 봐 가슴 졸였다”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A동 농산물 경매도 차질을 빚었다. 통상 오전 6시쯤 시작되는 경매는 예정시간을 2시간쯤 넘겨서도 이뤄지지 않았다. 소실된 점포 바깥으로 경매물건이 쌓여있기만 했다.
7년째 식자재마트를 운영하는 강홍덕씨(57)는 “매일 200만~300만원가량 과일을 사 가는데 오늘 경매가 늦어져 기다리고 있다”며 “가게에는 남아있는 재고를 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간신히 화마를 비켜 간 점포 상인들은 피해상인들을 보며 착착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곳에서 20년째 영업을 이어온 이외순씨(60)는 “어젯밤 화재 소식을 듣고 오후 8시20분쯤 가게에 왔다”며 “다행히 우리 가게까지는 번지지 않았지만, 피해가 막심한 이웃 상인들을 보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쉽게 위로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25일 오후 8시27분쯤 발생한 불은 3시간 반만인 오후 11시58분쯤 꺼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인명 피해는 없다.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은 영남지역 최대의 농산물과 수산물이 거래되는 도매시장이다. 연면적 15만4121㎡ 규모로 농산 A동을 비롯해 농산 B동과 수산동, 관련 상가 등이 들어서 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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