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해야 할 브라질 대선 관전 포인트…67만 사망 방역 실패의 상처

최서윤 기자 2022. 10. 2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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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 현장을 가다] "현 정부 방역정책 점수는 0점"
25일(현지시간) 저녁 브라질 상파울루 지하철 안이 귀가하는 승객들로 가득 찼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은 많지 않다. 2022. 10. 25. ⓒ News1 최서윤 기자

(상파울루=뉴스1) 최서윤 기자 = "67만 명이 죽어가도록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대통령이 화이자에 백신 1회분당 1달러의 사례금을 요구했대요."

25일(현지시간) 상파울루 거리에서 만난 파울로 이에로(18)와 마눌라 마이아(20)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브라질의 방역 평가를 묻자 이처럼 답했다.

수십 년 만에 전 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에 많은 나라가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웬만한 정부도 관련한 질타를 피해 가기 어려웠지만, 브라질의 방역 실패는 조금 더 특별하다.

브라질 상파울루 거리 모습. 2022. 10. 24. ⓒ News1 최서윤 기자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팬데믹 기간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스크가 박테리아성 폐렴을 일으켜 사망을 유발한다', '코로나는 그냥 감기'라는 등의 발언을 한 허위 정보 유포 혐의로 경찰 수사까지 받았다.

그런 보우소나루의 연임 도전에 마눌라는 "그저 웃는다"고 했지만, 파울로는 "그렇다고 룰라가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방역정책 실패 책임은 분명하다고 보지만, 이제 코로나19 유행이 잠잠해지면서 이 부분은 선거에 크게 영향을 미칠 요소는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 거리는 이제 '위드 코로나'가 완연한 모습이다. 지하철도, 버스도, 쇼핑몰 안에서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10명 중 1명꼴이다.

공항 입국 심사를 받을 때도 준비해간 영문 백신접종증명서는 꺼낼 필요도 없었다. 짐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승객들에게 물어보니 접종증명서 제시를 요구받은 사람도 있었고, 그냥 통과한 사람도 있었다. 형식적인 것 같았다.

왼쪽 남성이 파울로, 그 옆 여성이 마눌라. ⓒ News1 최서윤 기자

파울로는 "국가경제를 성장시킬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게 중요하다"면서 "룰라 정부 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가경제가 성장하고 정부가 돈이 많아졌는데도 여전히 범죄율과 문맹률이 높고 공교육 질도 개선된 게 없어 대안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마눌라는 "그래도 보우소나루는 안 된다"면서 "브라질은 이렇게 크고 좋은 나라인데 그 혜택을 아직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건 수치스럽다. 분배를 잘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코로나 대응도 "부족한 게 아니라 관리의 문제였다"고 했다.

마눌라처럼 '관리의 문제'를 베아트리스(19)도 지적했다. 드물게 마스크를 쓴 베아트리스는 "코로나 유행 때 나라에 백신도 없고 치료용 산소도 부족했는데, 가만 보면 없는 게 아니라 유통과 관리가 안 됐던 것"이라면서 "코로나 때 워낙 최악이라 보우소나루를 뽑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브라질에서 마스크 착용은 자율로,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 News1 최서윤 기자

의대 입시를 준비 중이라고 한 엔고(22)는 "백신을 4번이나 맞았고 요즘엔 대중교통에 사람이 너무 붐빌 때를 빼고는 코로나를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현 정부의 방역 정책에 점수를 매기자면 "0점"이라며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백신을 안 믿고 아예 방역정책을 하지 않은 채 유행이 그냥 지나가길 기다렸다"고 했다. 이어 "보건정책만큼은 적어도 취약계층을 위한 배려가 필요한데 국가가 방역을 하지 않자 이들의 피해가 컸다"면서 룰라를 뽑겠다고 했다.

반면, 똑같이 의대 입시를 준비 중인 미에카엘라와 가브리엘레는 "코로나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결선 때 보우소나루를 뽑겠다"고 했다. 이유로는 "가족의 영향이다. 부모님이 지지하셔서"라고 했고, "코로나는 아직 걱정은 되지만 (지금 정부가 유지돼도) 괜찮다고 본다"고 했다.

지난해 봄 브라질은 하루 최대 4000명 안팎의 사망자가 발생하며 그야말로 '묻을 곳'이 부족할 정도의 혹독한 유행을 겪었다. 코로나 사망자의 시신을 단체 이관하는 사진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알파에서 오미크론까지의 우려변이 중 세 번째, 감마 변이가 바로 브라질에서 출현했다.

지난해 2월 브라질 마나우스의 한 공동묘지에서 방호복을 입은 한 노동자가 코로나19 희생자들의 묘역을 지나는 모습. 당시 비닐백에 밀봉돼 묻힌 많은 희생자 시신은 이후 공원묘지 관리 미비로 인해 노숙자와 마약중독자들에 의해 묘역이 파헤쳐지는 일이 많다고 한다. ⓒ AFP=뉴스1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여름 백신 접종에 속도를 붙인 뒤 그대로 추가 접종까지 대폭 추진하며 뒤늦게 방역 실패 책임을 만회해보려 했다.

이날 거리에 다른 노숙인들과 비슷하게 10살쯤 돼 보이는 딸과 함께 앉아 있던 중년 여성도 "백신을 4번 맞았다"고 말한 걸 보면, 앞선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지적한 코로나 관련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시스템 배려 미비'도 어느 정도 보완 조치가 이뤄진 듯했다.

25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대로변에서 딸과 함께 구걸하는 여성은 이렇게 거리로 나온 지 2년째라고 했다. 2022. 10. 2.5 ⓒ News1 최서윤 기자

국제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전일 기준 브라질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4063명, 사망자는 33명이다.

유행이 잠잠해지면서 코로나는 이제 선거의 큰 쟁점이 되진 않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난 23일 상파울루에서는 코로나 희생자 단체가 추모 행사를 열었다.

'코로나19 희생자를 기억하며'라는 문구와 함께 길게 붙은 흰 종이를 시민들이 채우는 행사였다. 벽에 붙은 종이엔 갑자기 닥친 팬데믹 여파에 유명을 달리했을 이들의 이름과 추모 메시지가 가득했다. 바닥엔 불을 피웠던 양초와 꽃이 널려 있고, 희생자들의 생전 웃는 모습을 담은 사진도 붙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마련된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벽. '모두가 자이르 보우소나루(현 대통령)에 의한 희생자'라는 낙서가 눈에 띈다. 2022. 10. 24. ⓒ News1 최서윤 기자
24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코로나19 희생자 추모의 벽에는 무수히 많은 메시지 사이에서 '보우소나루 꺼져'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News1 최서윤 기자

추모의 벽에 가장 많이 적힌 반복되는 문구는 'FORA BOLSONARO'. 거칠게는 "보우소나루 꺼져"로 번역되는 이 문구엔 방역실패에 대한 실망감이 담겨 있다. '모두가 보우소나루의 희생자다', '보우소나루가 집단학살을 했다'는 문구도 보였다.

혹독했던 작년 봄을 지나 이제 '위드 코로나'가 찾아왔지만, 어떤 이들의 마음엔 코로나가 속수무책으로 퍼지며 국가 방역 정책이 작동하지 않던 때의 상처와 수치심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이를 기억할지도 유권자의 선택이다. 다만 추모의 벽은 사흘 만에 흔적도 없이 철거됐다.

브라질 대선 포스터. 우측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 좌측이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 2022. 8. 16. ⓒ 로이터=뉴스1 ⓒ News1 최서윤 기자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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