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문 열자 백골로 발견..어느 탈북민의 고독사
기사내용 요약
40대 탈북민 숨진 지 1년 만에 임대아파트서 백골로 발견
우편안내서 붙은 집문…상담사 일하다 "공부하겠다" 퇴사
이웃 "얌전하고 말수 적어" 직장 "점잖고 교양 있는 분"
2020년 12월부터 집 임대료 밀려 명도소송…'폐문부재'
본인이 신변보호 연장 거부해…반복되는 탈북민 고독사
[서울=뉴시스]정진형 구동완 기자 =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생활하다 백골 상태로 발견된 북한이탈주민 여성 A(49)씨는 이미 오랜 시간 사회와 단절된 채 생활하다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지난 19일이다. 1년 넘도록 집세를 밀리고도 연락이 닿지 않자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강제 퇴거 절차를 밟기 위해 강제로 현관문을 개방했는데, 집 안에서는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백골 상태였던 A씨가 겨울옷을 입고 있었던 것을 통해 지난 겨울 숨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생전에 모범적으로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으로 알려졌던 고인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세상을 떠났고, 1년 뒤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대문 앞에는 우편 안내서만 덕지덕지…상담사 일하다 "공부하겠다" 퇴사
가장 최근인 이달과 지난 8월 붙은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남부지법 관련 우편물 안내서는 빳빳하고 인쇄된 글씨도 선명했지만, 지난해 10월과 12월, 올해 2월로 추정되는 서울중앙지법과 인천도시공사 우편물 관련 안내서는 누렇게 스티커 색이 바래고 글씨도 흐릿해져 알아보기 힘들었다.
아파트 앞에서 만난 우편집배원 송모(36)씨는 "8월과 10월에 두번 와서 초인종을 누르고 이름을 불렀지만 응답도 없고 안에 인기척도 없었다"며 "이쪽 동네에는 이렇게 부재로 배송을 못 받는 분들이 여럿 있다. 어제(24일) 기사를 보고서야 돌아가신 줄 알았다"고 말했다.
주민이 직접 검침해 적는 난방 유량계 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치 항목이 모두 텅 비어있었다. 우편함은 시신이 수습된 뒤 모두 정리됐지만 최근 발송된 한 저축은행 우편물 한통이 꽂혀 있었다.
고인과 같은 층에 살았던 송모(65)씨는 "오며가며 마주치면 인사하고 살았다.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있던 얌전한 사람이었다"며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교제가 없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A씨가 아니더라도 이 아파트 입주민 중에는 장기간 집을 비워 인기척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송씨는 "보통 한번 문이 닫히면 몇개월에서 1년씩 사람이 없다가 돌아오곤 한다"며 "그래서 살던 사람이 한동안 안 보이면 어디 갔다오는가보다 해왔다"고 부연했다.
아파트 경비원 이모씨는 "주민들은 A씨를 잘 안다. 사람이 뭐랄까, 상당히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다고 한다"며 "탈북민들 끼리도 서로 활발하게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별로 접촉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돌아봤다.
2002년 탈북 후 간호사 거쳐 전문상담사로 활동…"점잖고 교양 있는 분"
서울 한 복지관에서 2015년 3월까지 근무했고, 통일부 산한 남북하나재단과 하나센터에서 2017년 12월까지 일하다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북하나재단 관계자는 고인에게 그만두는 이유를 묻자 "외국어 쪽으로 안 해본 공부를 하고 싶다"고 답했다며 "점잖고 교양이 있는 분이었다. 원래 조용한 분으로, 연락을 자주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고 전했다.
A씨가 그만둔 다음해인 2018년 초 지인들이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지만 이미 번호가 바뀌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생전 고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겠다는 얘기를 해 주변에서는 외국으로 떠난 줄 생각했다고 한다.
월세 10만원인데…2020년 12월부터 집 임대료 밀려 명도소송
법조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9년 1월 이 아파트에 2년짜리 임대차 갱신 계약을 했다. 임대보증금 826만원, 임대료는 10만4600원이었다.
첫해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던 고인은 2020년 12월부터 계약이 끝나는 지난해 12월까지 13개월 동안 151만5240원의 차임과 관리비 90만4050원을 밀렸다.
결국 2021년 7월 임대차 계약이 해지돼 퇴거 통보가 갔지만 A씨의 응답이 오지 않았고, SH는 지난 2월 고인을 상대로 서울남부지법에 건물인도 소송을 제기했다.
4월까지 두달 동안 A씨 집 주소로 소송통지서가 갔지만 매번 '폐문부재'였고 결국 법원의 공시송달 처분으로 재판이 진행돼 지난 7월 원고인 SH가 승소했다.
이후 지난 8월 17일과 이달 6일 서울남부지법의 등기가 배달됐지만 고인에게는 전달되지 못했다. A씨는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후로 보인다.
본인이 신변보호 연장 거부…반복되는 탈북민 고독사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탈북민의 경우 국내에 입국해 거주지로 전입한 후 5년간 신변보호 조치가 이뤄지고, 이후 심의를 거쳐 연장 여부가 결정된다.
경찰청 관계자는 "A씨의 경우 2019년에 (보호가) 종료됐고 연장 심의를 할 때 당사자가 거부했다"면서 이 경우 주기적으로 연락할 법적 근거가 없어 고인의 상태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이번과 같은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탈북민 위기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탈주민 취약계층 전수조사 대상에 고인이 포함돼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다.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이 숨진 뒤 뒤늦게 발견되는 불행한 일은 잊을만 하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19년 7월 서울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 살던 탈북민 모자가 사망한 지 수개월이 지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사인은 아사로 추정됐다.
남북하나재단은 남한에 연고가 없는 북한이탈주민이 사망했을 때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요청할 경우 장례와 납골 안치를 지원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A씨 시신을 인수할 가족이나 친척이 나타나지 않으면 재단에서 장례를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고 했다. 재단이 운영하는 납골당은 경기도 파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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