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 특파원' 몰린 KBS 기자들 얘기 들어보니..
국감서 지목된 파리·방콕 특파원
확인결과 사실무근.. 실명 나돌아
언론사들, 면책특권 없는데도
국감서 나온 말 확인 않고 받아써
KBS 국정감사가 열린 지난 17일 ‘KBS 해외특파원 비위 의혹’을 다룬 기사가 쏟아졌다. 이날 국감장에서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KBS 해외 4개 지국 특파원들의 비위 의혹을 제기하자 김의철 KBS 사장이 “관련해서 감사가 진행 중”이라고 답변한 걸 그대로 받아쓴 보도였다.
여러 매체가 이 사안을 기사화하면서 의혹은 기정사실처럼 퍼졌다. 그러나 홍 의원의 발언과 이를 인용한 보도엔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포함됐다. KBS 보도본부는 지난 19일 공식 입장을 내어 “‘A지국 특파원이 자신의 아내를 해당 지국 직원으로 고용했다’는 의혹은 보도본부 자체 조사에서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B지국 특파원이 수당 부풀리기 등 횡령 혐의로 감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 역시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른 두 의혹은 감사실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비위 특파원으로 지목된 기자들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와 사실 확인 없이 쓰인 기사에 고통을 호소했다. A지국 당사자인 유원중 파리지국 특파원은 “한 달여 전에 제 아내와 관련해 얼토당토않은 소문이 돌아 보도본부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진 상태였다”며 “이미 회사에 소명을 다 한 일이라 아무 문제 없다고 생각했는데 국감에서 소문에도 없었던 ‘아내 채용’ 의혹이 나와 제가 비위를 저지른 기자로 거론되고 거의 실명까지 보도돼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유 특파원은 “‘아내 채용’ 의혹은 홍석준 의원실이 KBS에 보낸 사전 질의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사안”이라며 “개인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인데도 의원실은 묻지마식 폭로를 한 것”이라고 했다.
유 특파원은 해외지국 운영 구조상 아내를 직원으로 채용했다는 의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유 특파원은 “파리지국 전체인원 5명 중 2명이 현지 인력이고 모두 공식 절차를 통해 채용됐다. 인력도 사무실도 다 공개돼있는 지국 상황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감사를 거치지 않아도, 특파원이 아내를 채용할 수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며 “홍석준 의원실은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특파원 개개인의 실명을 박은 자료를 국감 전날 기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B지국에 해당하는 김원장 방콕지국 특파원도 비위 기자로 몰린 상황을 황당해했다. 앞서 KBS 보도본부는 김 특파원과 관련해선 “의혹의 정황을 확인한 적도, 제보받은 적도, 감사에 착수한 적도 없었다. 홍석준 의원실에서도 해당 지국에 대한 사전 서면 질의는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특파원은 “기사를 접하고 부랴부랴 회사에 사실을 확인했는데 보도본부도 감사실도 어디도 정황을 모르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특파원 의혹을 제기한 배경에 대해 “KBS 내부자의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다”며 “사실 확인을 위해 KBS에 자료를 요구했지만 사안 전체를 뭉뚱그려 ‘감사 중이니 보내드릴 수 없다’고 답변해와서 저희로선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일처럼 사실과 먼 의혹도 국회의원 입을 통해 언론 보도로 나오면 사실로 여겨진다. 다만 국회의원의 직무상 발언은 헌법이 규정한 면책특권을 적용받는다. 언론은 이 특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데도 그들의 말을 확인 없이 보도하곤 한다. 발언과 보도로 인한 후폭풍은 결국 피해 당사자가 떠안게 된다. 김원장 특파원은 자신의 SNS에 “절차적 검증과 맥락적 숙고 없이 외부의 권위를 빌려 급조된 기사로 저는 횡령을 의심받는 기자가 됐다”며 “제 기사를 좋게 봐주시고 기다려주시는 구독자분들이 우연히 그 기사를 봤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건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나”라고 적었다.
유원중 특파원은 “국감에서 제기된 모든 내용을 다 확인해 기사를 써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제목으로 올릴 만큼 핵심적인 사안에 대해선 검증해보고 최소한 반론권이라도 줘야하는 것 아닌가”라면서 “홍석준 의원실이 국감 당일이 아닌 그 전날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해 기사가 나오게 함으로써 특파원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부분은 소송을 통해 면책특권 적용 여부를 다퉈보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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