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예산홍성환경연 석면피해자 인터뷰집 펴내

송인걸 2022. 10. 2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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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남 광천의 석면광산 모습, 바지·저고리 차림의 노동자들이 석면을 캐고 있고 앞에 이동용 손수레 등이 보인다. 이권복씨(홍성군 광천읍) 제공

20여m 높이의 수직 사면에 희끗희끗한 광물질이 노출돼 있다. 관리자로 보이는 모자 쓴 이들 몇 명과 흰 바지·저고리 차림의 노동자 30여명이 일한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어린아이도 이곳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충남 광천의 석면광산의 사진이다.

색바랜 이 사진은 최근 세상에 나온 충남지역 석면피해자 인터뷰집 <‘보이지 않는 숨소리’ 보이게 하기> 표지에 실렸다.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과 충남지속가능발전협의회가 함께 펴낸 이 인터뷰집은 환경운동연합 사무국과 기록활동가들이 석면피해기록단을 꾸리고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충남 보령 박공순(80)씨, 청양 권혁호(65)씨 등 충남지역 석면피해자 11명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담았다.

환경운동연합 등이 석면피해기록단을 꾸린 것은 석면 일을 하던 이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석면 피해에 대한 기억, 지역의 석면 관련 역사가 함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월 석면 피해구제운동에 앞장섰던 석면피해자 정지열 선생에 이어 지난 3월에는 석면광산 이야기 그림책 <하얀꽃>에 등장했던 홍수복 어르신, 석면 실을 자르는 일을 하던 안계신 어르신이 세상을 떠났다.

석면피해자 박공순(80·보령시 주포면)씨는 “세상이 좋아져 석면 스레트(슬레이트) 지붕 철거 비용은 지원해 주지만 그전에 걷어서 방치해둔 석면 스레트는 아직도 동네 곳곳에 쌓여있다. 이런 것도 위험하므로 다 걷어다 치워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권혁호(63·청양군 비봉면)씨는 “피해자가 많은 지역에 석면 질환 전문 치료병원이 있으면 좋을 텐데 지역에 없어서 수시로 검사받기 힘들다”며 “부산처럼 충남에도 석면피해자를 지원하는 협의체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집은 피해자들이 과거 석면광산에서 일할 당시 상황, 발병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아온 애환, 먼저 숨진 동료·동네 사람들 이야기와 바람 등이 담겼다. 또 석면피해자 현황도 실렸다.

석면피해기록단의 인터뷰를 거절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좋은 얘기가 아니라 듣기 싫어한다’, ‘아픈 사람은 다들 죽었는데 무슨 소용이냐’, ‘땅값 떨어진다’며 피해 사실을 밝히기를 꺼렸다. 기록단 관계자는 “이들 가운데는 피해자로 보이는데 스스로 질환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석면피해기록단과 만나 인터뷰한 석면피해자 권혁호(왼쪽), 박공순씨.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제공

이 책에 실린 지난 8월 말 현재 전국의 석면피해자 현황을 보면, 석면피해 인정 5367명, 특별유족 인정 1047명 등 피해자 6414명이 전국 17개 특·광역시, 도에 거주했다. 연령대 별로는 △70대 2515명(39.2%) △60대 1859명(29.0%) △80대 이상 1239명(19.4%) 등 60대 이상이 5613명(87.5%)이었다. 50대는 611명(9.5%)이었고, 40대 이하도 10대 1명, 20대 13명 등 190명(2.9%)에 달했다. 성별로는 남자가 66.2%(4246명), 여자가 33.8%(2168명)이었다.

지역별로는 충남이 2225명(34.7%)으로 가장 많고 부산 1111명(17.3%), 경기 884명(13.8%), 서울 679명(10.6%), 경남 329명(5.1%) 차례였다. 환경운동연합은 “충남은 전국 최대의 자연석면 분포지역으로, 1980년대까지 석면산업이 활발했다. 충남 청양 등 석면광산 지역 주민들은 아이들까지도 석면을 안 만져본 사람이 없을 정도여서 피해자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또 이 단체는 “석면질환은 잠복기가 길어 지금도 환자가 발생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환경부는 우리나라 석면산업의 성장과 석면 사용 시기 등을 참작할 때 2045년께 석면질환 발생이 최고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덧붙였다.

신은미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청양, 홍성 등 석면광산이 개발된 지역은 친척이나 마을 사람 누군가 석면이 원인이 돼 질환을 앓거나 죽은 경험이 있다”며 “이 책은 작은 기록이지만 석면 피해는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숙제이고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삼기 위한 시도이다. 이런 노력이 이어져 사회가 석면피해자의 보이지 않는 숨소리를 듣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충남지역 석면피해자 인터뷰집 <‘보이지 않는 숨소리’ 보이게 하기> 발간 기념식과 정책토론회는 다음 달 2일 오전 10시30분, 충남 예산군 삽교읍 충남건설전문회관 안 충남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열린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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