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귀환 생존 국군포로 참전용사 예우정책 본격 추진

하종민 2022. 10. 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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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여러 차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등 탈북을 시도하다 13년간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를 위한 추모시설 건립, '귀환용사' 자격으로도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도록 법률 개정 추진 등이다.

아울러 국군포로 참전용사 별세 시 장기 복무 제대군인 등의 다른 자격으로 현충원에 안장되고 있지만, 이를 '귀환용사'자격으로도 안장될 수 있도록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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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현충원 안장 시 '귀환용사' 자격 갖추도록 법률 개정

[서울=뉴시스] 국군포로였던 김성태 씨의 모습. (사진=보훈처) 2022.10.2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하종민 기자 = #. 국군포로였던 김성태 씨는 6·25전쟁 참전 중 경기도 양주에서 부상을 입은 중대장을 업고 이동하던 중 박격포 파편을 맞고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다. 이후 여러 차례 포로수용소를 탈출하는 등 탈북을 시도하다 13년간 징역을 살기도 했다. 1966년 석방 후에는 탄광에서 채굴 작업 등을 하며 생활을 하다 2001년 70세의 나이로 탈북에 성공했다.

25일 국가보훈처는 이 같은 귀환 국군포로 참전용사에 대한 감사와 예우를 위해 관련 정책을 본격화한다.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를 위한 추모시설 건립, '귀환용사' 자격으로도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도록 법률 개정 추진 등이다.

6·25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유엔사령부가 1953년 8월7일 유엔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군포로 및 실종자수는 8만2000여 명이다. 이 가운데 정전협정 후 유엔사령부가 송환받은 국군포로는 8343명에 불과하다. 1994년 고 조창호 중위의 귀환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자력으로 귀환한 국군포로 참전용사는 80명뿐이다.

그동안 정부는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의 송환 문제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협의할 것을 북한에 지속적으로 제의했다. 하지만 북한은 일관되게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먼저 보훈처는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를 위한 추모시설 건립을 추진한다. 아울러 국군포로 참전용사 별세 시 장기 복무 제대군인 등의 다른 자격으로 현충원에 안장되고 있지만, 이를 '귀환용사'자격으로도 안장될 수 있도록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

또 국군포로의 희생과 공헌에 걸맞은 품격 있는 국립묘지 안장 지원 등 장례지원도 확대할 계획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북한에서 조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보훈처 차원에서 관계 부처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6·25전쟁 국군포로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hahaha@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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