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부진 줄일 '기초학력 안전망' vs 학생 줄세우는 '일제고사 부활'
■ 10문10답 - 정부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
팬데믹 이후 학습결손 문제 심화
고2 국·수·영 미달 최대 6%P↑
2024년 ‘초3~고2’까지 확대
학교·학급별 ‘자율 방식’ 평가
AI 기반으로 맞춤형 진단하고
교육 복지 연계해 통합적 지원
“학력측정 필요”…“평가 강제화”
학부모·교원 단체 의견 엇갈려
코로나19 감염병 사태 이후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와 학습 격차 문제는 교육계 최우선 과제가 됐다. 근 2년 넘게 이어진 원격 수업은 학생들의 학습 결손, 정서 결손, 사회성 결손 등에 영향을 주어 전반적인 학력 저하 문제로 불거졌다. 학력 저하 문제는 단기간에 회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초등 저학년에서 발생한 학습 결손은 누적돼 중·고등학교에서도 기초학력 미도달로 연결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학습 부진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는 학교 현장의 아우성에도 그동안 기초학력 진단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기초학력 평가는 17개 시도교육청이 각급 학교에서 기초학력을 자율적으로 진단하도록 하고 있어 원인 진단과 처방이 어렵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11일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정부가 조기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에 나서겠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번 정책을 두고 교육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국가가 기초학력 안전망을 확충하고 나섰다”며 환영하는 측이 있는가 하면, “일제고사 부활”이라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1.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주요 정책은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의 핵심은 기초학력과 학업성취도 평가 진단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학습 부진 학생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선 평가 부분과 관련해선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과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의 응시 대상을 확대하도록 했다. 학기 초 이뤄지는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은 현재 초1~고1만 대상으로 하는데, 2024년부터는 이를 고2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진단 도구 319종(약 8569문항)을 17개 시도교육청 서버에 탑재해 단위학교에서 활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컴퓨터 기반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참여를 원하는 학교가 학급 단위로 실시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2학년이 대상인데 내년에는 초5·고1까지 확대되고, 2024년에는 초3∼4·중1∼2까지 포함해 확대된다. 평가 대상이 거의 전 학년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은 평가를 받은 학생이 기초학력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진단할 수 있고,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학생의 학력 수준을 1∼4수준으로 나누어 진단한다.
2. 정부가 확대하겠다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어떻게 진행·활용되나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은 기초학력 미달 여부만 가려내지만,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교과 영역과 사회·정서적 역량 등을 함께 진단하는 평가다. 올해 9월 처음으로 관련 평가가 컴퓨터 기반 평가(Computer Based Test·CBT)로 시행됐고, 학생은 학교에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컴퓨터, 노트북, 스마트 기기 등을 이용하여 평가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학교·학급 단위로 신청해 응시할 수 있으며 개인별로 신청해 응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에 있다. 교육부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 대상을 2024년까지 초3∼고2로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시험 방식을 컴퓨터 적응형 학업성취도 평가(Computerized Adaptive Test·CAT)로 고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CAT를 활용한 인공지능(AI) 기반 진단 체계를 구축하면 개별 학생 맞춤형 진단 실시가 가능하고, 이 경우 학생 성취 수준 및 역량 관련 정보를 교수 학습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3.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 이유는
기초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지난해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1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중·고교생의 보통 학력(3수준) 이상 비율은 전반적으로 전년도와 비슷했으나 고2 국어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고2 국어 학력은 보통 학력 이상 비율이 64.3%로 2020년보다 5.5%포인트 더 떨어졌다.
지난해 기초학력 미달(1수준) 비율의 경우 중3은 모든 교과에서 줄어든 반면 고2는 모든 교과에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 국가 및 시도교육청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고2의 경우 국어는 7.1%, 수학은 14.2%, 영어는 9.8%의 학생이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것으로 드러나 1년 사이 각 0.3%포인트, 0.7%포인트, 1.2%포인트 늘었다. 코로나19 전인 2019년 국어, 수학, 영어 미달 학생 비율이 각각 4.0%, 9.0%, 3.6%인 것과 비교하면 과목당 적게는 3%포인트에서 많게는 6%포인트 가까이 미달 학생 비율이 늘었다.
4.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는 무엇이 다른가
교육부가 이번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에서 확대하겠다고 한 평가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다. 관련 평가는 코로나19로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떨어졌다는 지적에 따라 도입된 평가 체제로서 ‘자율 방식’이다. 이건 현재 교육부가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 파악하고자 특정 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는 다르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표집 방식이었다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전수평가로 전환됐다. 지역별·학교별 서열을 매기는 ‘줄 세우기’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에 따라 문재인 정부 들어서 표집 방식으로 회귀했다.
새 정부에서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전수가 아닌 계속 표집 방식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로부터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을 보고받으면서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언급하면서 혼선을 빚었다. 교육부 해명 내용 등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를 혼동해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5.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 논란 이유는
논란이 된 점은 학업성취도 평가 확대가 ‘전수평가’인지 ‘자율평가’인지에 대한 혼선이다. 교육부는 “전수평가나 일제고사가 부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일각에서는 사실상 전수평가를 확대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의 경우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와 달리, 학교·학급별로 자율적으로 신청해 원하는 시기에 실시하므로 ‘전수평가’ 또는 ‘일제고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교육부는 평가 결과를 학생 개인과 교사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서열이 매겨지는 ‘줄 세우기’는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전교조는 성명을 통해 “국가 차원에서 일률적 방식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운영한다면 ‘지원을 위한 진단’이 아닌 ‘진단을 통한 줄 세우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6. 학습 부진 학생, 어떻게 선정하나
정부는 지원이 필요한 학습 부진 학생을 정확한 진단을 통해 선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기초학력 진단-보정 시스템과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의 응시 대상을 확대하고, 두 평가 도구를 연계해 단위학교에서 보다 표준화된 도구로 심층적인 진단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AI 기반 학습 진단 체계 및 국가 기초학력 지원 포털을 구축해 개인별 수준에 따른 맞춤형 진단을 제공할 예정이다. 기초학력 진단검사로 후보군을 선별하고, 교사의 관찰·면담 등을 바탕으로 학교 내 협의회에서 지원 대상 학생을 확정할 수 있도록 선정 절차를 체계화해 단위학교에서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도록 지원한다는 게 교육부 계획이다.
7. 기초학력 향상 다중 안전망 구축 방안
기초학력 향상 다중 안전망은 3단계에 걸쳐 구축된다. 1단계에서는 정규 수업과 연계해 AI 학습 프로그램, 디지털 교과서, 학습관리시스템(LMS) 등을 활용한 맞춤형 학습을 지원해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의 수업 이해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2단계에서는 학교 내 종합적 지원이 이뤄진다. 학습·행동·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교장(감)·담임·상담·특수·보건교사 등으로 구성된 학습지원대상 지원협의회를 운영한다. 기초학력 보장 사업을 학교 내 교육복지 사업, 위기 학생 지원 등과 연계해 학생성장통합지원을 추진한다. 마지막 단계로는 학교 밖에서 전문적 지원을 실시한다. 오는 2027년까지 학습종합클리닉센터, 위(Wee)센터, 지역다문화교육지원센터 등 관련 전문기관을 연계해 학생을 통합적으로 진단·지원하는 모델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8. 코로나19 학습 결손 지원 방안은
코로나19 사태로 심화된 학습 결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학생의 수준과 희망에 따라 교(강)사를 활용해 방과 후 1∼5명을 상대로 소규모 교과 보충 수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교원자격증 소지자, 대학생 등 보조 인력(학습지원튜터)을 통한 ‘튜터링’도 지원한다. 코로나19로 정서적으로 타격을 받은 학생들의 심리 안정과 사회성 함양을 위한 단위학교 자율 프로그램 운영을 지원한다. 다문화·탈북 학생의 기초학력 학습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읽기, 쓰기, 셈하기 진단 도구와 맞춤형 학습 콘텐츠를 제공한다.
체육·예술 분야 활동 또는 건강상 장기 결석 등으로 수업 참여가 어려운 학생과 아동복지시설·위탁가정 보호 학생, 소년원학교 재원 학생 등을 대상으로 관계 부처 등과 협력해 학습 진단·보정 콘텐츠 등을 제공한다.
9. 학교 현장의 반응은
교육부의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을 두고 교육 현장의 학부모와 교원 단체들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기초학력 측정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일제고사 부활’이란 지적도 나온다. 교원 단체를 중심으로 입장은 더욱 명확하게 나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대통령이 직접 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하게 하고, 기초학력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표명한 데 대해 환영한다”며 “학교 현장에 적합하고 교사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전교조는 전날 논평을 내고 “기초학력 진단 도구를 전국적으로 획일화하고 사실상 학업성취도 평가를 준강제화하겠다는 것”이라며 “이미 몇몇 시도교육청에서 전수평가를 강요하는 상황에서 자율이란 이름은 허울만 남아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10. 향후 추진 실적 점검은 어떻게 하나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은 정부가 모든 학생의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국가 교육책임제를 실현하겠다는 취지인 만큼 향후 추진 실적 또한 교육부 주도로 관리하게 된다. 교육부는 기초학력 보장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매년 시도교육청의 전년도 실적을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책 지원을 검토할 예정이다. 시도교육청은 종합계획의 내용과 해당 지역의 여건을 고려하여 매년 12월 31일까지 다음 학년도 시행 계획을 마련하고, 이에 따른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특히 올해는 시행 첫해인 만큼 법과 시행령의 시도 적용을 위해 교육감이 정할 필요가 있는 사항을 포함해 시행계획이 수립된다.
박정경·정철순·권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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