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식민지 인도 혈통 英 총리.. '기록의 남자' 수낵 앞길은 난제 수북
인도, 식민 독립 75년 만에 인도계 총리 배출 ‘감격’
42세 수낵, 첫 유색인종·아시아계, 210년 만에 최연소 총리
의원 선서 당시 힌두교 성전 들어
정치 경험은 불과 7년, 지난 경선서 지고 불과 7주 만에 석패
부부 재산 1조 1000억 원 넘어, 브라만 출신, 최고 교육 코스 밟은 엘리트
7주 전 경선 당시 트러스의 감세 정책에 ‘동화 같은 이야기’ 예언 화제
최악의 보수당 지지율, 무너진 경제 등 난제 수두룩
리시 수낵(42) 전 영국 재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에 이어 영국의 새 총리가 됐다. ‘첫 비백인 총리’, ‘210년 만의 최연소’, ‘첫 힌두교도 총리이자 영국 옛 식민지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 등 다양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러나 집권 보수당의 수장이자 영국 총리가 될 그의 앞길에는 난제가 수두룩하다.
42세에 불과한 그는 총리 취임 당시 44세였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 토니 블레어 전 총리보다도 젊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1812년 로버트 젠킨슨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다. 인도 이민자 가정에서 1980년 태어나 영국 시민으로 자랐으나 이민자들의 인생 역전과는 거리가 먼 전형적인 엘리트 출신이다. 수낵 전 장관은 영국 옥스퍼드대 학부에서 철학·정치·경제(PPE)를 전공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엘리트 정치인이다. 신분제도가 있는 인도에서도 수낵 가문은 최상위 계층인 브라만 계급이었다.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약사로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후 금융계에 뛰어들어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 헤지펀드 파트너로 일했다. 인도 억만장자의 딸 악샤타 무르티와 결혼했고, 약 7억3000만파운드(약 1조1910억원)에 이르는 자산을 보유해 영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다.
정계 입문은 2015년으로 불과 7년 여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2020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에 의해 파격적으로 재무장관에 발탁된 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각종 지원책을 발표해 대중의 인지도를 높였다. 수낵 전 장관은 트러스 총리와 경쟁했던 지난 경선에서도 원내 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당원 투표에서는 패했다. 특히 자신을 발탁한 보리스 존슨 전 총리가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반기를 들고 사표를 내 결국 그를 물러나게 만드는 일등 공신 중 하나가 됐다. ‘배신자’ 이미지에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막대한 부와 집안 배경 등이 알려지면서 ‘비호감’이 작용했다.
지난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가 내건 대대적인 감세안에 대해 “비합리적이며 영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실제로 트러스 총리의 정책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고 영국 경제를 위험으로 몰아넣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파티 게이트’ 등 각종 악재에 이어 트러스 총리의 잘못된 경제정책이 보수당 지지율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이에 경제를 안정시킬 ‘구원투수’로 수낵 전 장관이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새 총리 취임 직후인 31일 영국 재무부는 새로운 예산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어떤 안을 내놓아도 여론의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보수당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이후 당 대표 및 총리만 5명 갈아치우는 등 불안정한 모습이다. 여기에 존슨·트러스 시대를 거치며 야당인 노동당에 지지율이 뒤집힌 데 이어 추락세가 가속하며 격차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보수당이 더는 나라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다면서 조기 총선 카드를 꺼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않고 극소수 보수당원들만의 결정으로 국가 수장을 계속 뽑는 방식은 옳지 않다는 점도 쟁점화하고 있다. 앤절라 레이너 노동당 부대표는 “수낵은 노동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며 “영국의 미래에 관해 유권자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총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타임스가 온라인 여론조사업체 유고브와 20∼21일에 한 설문조사에서 “내일 총선을 한다면 어느 당을 뽑겠느냐”라는 질문에 56%가 노동당을 찍었고 보수당은 19%였다. 열흘 전 조사에 비해 노동당은 5%포인트 올랐고 보수당은 4%포인트 떨어졌다.
스코틀랜드는 이 와중에 독립 재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투표가 성사돼서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선언한다면 영국은 더 쪼그라들게 될 판이다.
수낵 전 장관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당이 존재론적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통합이 아니면 죽음”이라고 경고했다. 수낵이 전체 보수당 의원 357명 중 200명 이상 압도적 지지를 확보하긴 했지만 해묵은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당내 통합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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