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하나뿐인 약국 지켜주세요"..지자체 첫 약국 지원책 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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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이 여기밖에 없었어. 급할 땐 와서 약 달라고 했는데 이마저 없어져버렸으니."
약국 건물주 ㄱ씨는 "(폐업 신고한) 약사 양반도 답답한지 아들을 통해 연락이 온다. 약국 인수를 타진하는 사람은 여럿 있는데,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선뜻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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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이 여기밖에 없었어. 급할 땐 와서 약 달라고 했는데 이마저 없어져버렸으니….”
24일 인천 옹진군 백령면 진촌리에서 만난 박순례(90)씨가 폐업한 약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씨는 “사놓은 약이 얼마 안 남았다. 싸게 약을 살 수 있는 곳이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백령도는 인천에서 뱃길로 230㎞ 떨어진 대한민국 최북단 섬이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에 속해 있지만, 인천 시가지보다 북한 황해도와의 거리가 13.5㎞로 더 가깝다. 이곳에 주둔한 군인과 그 가족을 뺀 순수 섬 거주민은 지난 8월 기준으로 5010명이다.
지난 8월 이곳에 하나뿐이던 약국이 폐업 신고를 했다. 약국 출입문에는 휴업을 알리는 안내문만 붙어 있다. 약국 안은 과거 사용하던 선반과 진열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약국 주변에서 만난 주민들은 “원래 주인이 세상을 떠난 뒤 다른 사람이 약국을 인수해 운영했는데, 최근엔 그분마저 건강이 나빠져 운영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폐업 신고 뒤 두달이 흘렀으나 아직 새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약국 건물주 ㄱ씨는 “(폐업 신고한) 약사 양반도 답답한지 아들을 통해 연락이 온다. 약국 인수를 타진하는 사람은 여럿 있는데, 워낙 외진 곳이다 보니 선뜻 결심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백령도에서 약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백령병원과 옹진군보건소 백령보건지소 두곳뿐이다. 다만 이곳에서 약을 받으려면 의사 진료를 받아야만 한다. 이날 기자도 백령병원에서 혈압을 재고 외과에서 의사 진료를 받은 뒤에야 멀미약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병세(64)씨는 “약국은 주말에도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 갑자기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찾아와서 처방전 필요 없는 약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병원은 진료도 봐야 하고 밤에는 응급실에 가야 하니까 비싸다. 보건소는 주말에는 문을 안 연다”고 푸념했다. 이씨는 “(옹진)군 차원에서 하루빨리 약국을 유치하든지 대책을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령도에선 약국이 아닌 곳에서도 판매할 수 있는 간단한 상비약도 구하기 어렵다. 섬에 있는 편의점 4곳 중에 1곳은 아예 약을 팔지 않는다. 상비약을 취급하는 3곳 중 1곳도 야간에는 문을 닫는다. 백령도 주민이 밤에 해열제를 살 수 있는 곳은 편의점 2곳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비치된 약 종류가 많지 않다.
섬의 약국 부재 상태가 길어지자 옹진군은 지원 조례를 제정해 민간약국을 유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조례에는 약국이 없는 섬에 약국을 개설하면 약국 임대료와 주거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옹진군에는 현재 23개 섬에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영흥도를 제외한 22개 섬에 약국이 없다.
문경복 옹진군수는 “전국적 선례가 없는 민간약국 운영비 지원 조례가 제정되면 섬과 육지의 의료자원 불균형을 좁히고 보건의료서비스의 접근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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