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청혼

2022. 10. 2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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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 싫어 결혼이라는 유리성을 짓습니다.

비록 유리성이 깨져 슬픔이 넘칠지라도

어렸을 적부터 함께 지낸 단 한 여자에게 청혼합니다.

한밤중에 쏟아지는 별들의 속삭임처럼

귓속에서 붕붕거리는 벌들의 웅성거림처럼

여름엔 작은 은색 드럼 치는 것같이

그녀 손바닥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그녀에게 속삭입니다.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도

오랫동안 내가 나를 찾던 그 시간까지도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도 지킬 것이며

당신을 위해 세상의 쓴잔도 혼자 마실 겁니다.

왜냐하면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당신을 사랑하리라는 확신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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