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수의이책만은꼭] 아니 에르노, 모두의 일기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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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에게 돌아갔다.
수상 이유는 "개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 속박을 폭로한 용기와 냉정한 예리함"이다.
'세월'(1984북스 펴냄)은 에르노 문학의 종합판 같은 작품이다.
이름은 아니, 에르노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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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선 동시대의 기억 담으려 애써
에르노의 작품은 독특하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스스로 밝혔듯, 그녀의 작품은 모두 자기 삶을 소재로 한다. 소설보다는 고백, 회고, 기록에 가깝다. 자서전과 소설 사이에 있는 이러한 형태의 글쓰기를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고 부른다. 자서전(autobiography)과 소설(fiction)을 합친 말이다.
스무 살 때 자신이 겪었던 불법 낙태를 돌아본 ‘사건’에서 에르노는 말한다. “내 삶의 진정한 목표가 있다면, 내 육체와 감각과 사고가 글쓰기가 되는 것, 내 존재가 완벽하게 타인의 생각과 삶에 용해되어 보편적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작품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겪은 사건이 전부 작품일 수는 없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느 조각이, 어떻게 인간 전체의 기록이 될까. 에르노는 자기 삶을 바탕 삼아 평생 이러한 질문에 답해 왔다.
‘세월’(1984북스 펴냄)은 에르노 문학의 종합판 같은 작품이다. 원제는 les annees, ‘연도들’이다. 한해 한해 겪어온 작은 사건이 쌓이고 모여 한 사람의 삶을, 더 나아가 한 시대의 벽화를 이룬다는 뜻이 담겼다.
작품은 한 장의 여자 아기 사진에서 시작한다. 이름은 아니, 에르노 자신이다. 그녀는 1941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작은 농촌 마을 릴본에서 가난한 노동자 계급의 딸로 태어났다. 앞날에 대한 장밋빛 꿈, 성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소녀 시절을 거쳐 “장보기 목록, 세탁물 확인,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같은 코앞에 닥친 미래를 위한 끝도 없는 준비”에 시달리는 결혼생활, “혼자가 되고 싶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이혼으로 이어진다. 또한 소비사회의 전개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지식인으로,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런데 작가는 이 삶의 주체를 ‘그녀’라고 부른다. 자기 고백을 넘어 나를 통해 표출된 동시대 여성의 기억을 재현하려 애쓴다. “그녀는 전혀 개성이 없다고 확신한다.” 유일하고 독특한 나는 결국 소멸한다. 죽음은 모든 사적 기억을 무(無)로 만든다. 나의 삶은 ‘한 여자’의 삶일 때, 보편적인 무엇이 되었을 때 비로소 참된 의미와 이해를 얻는다. 에르노는 이러한 글쓰기 스타일을 ‘나 자신의 인류학’ 또는 ‘비개인적 자서전’라고 부른다. 나이자 그녀이자 모두의 일기를 쓰는 것이다.
작가는 비개성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그녀의 기억을 당대 유행 상품, 대중문화, 언론 머리기사를 장식한 사건, 68혁명, 적군파, 디지털 혁명, 이민자 혐오 등 프랑스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로 감싼다. 개인의 모든 기억은 사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집단 사건에 대한 그때그때의 응답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가. 에르노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를 한 여자의 내적 변화를 통해 기록한다. 이로써 그녀의 작품은 한 개인의 회고이자 한 시대에 대한 서술형 보고서, 사실적 기록, 역사적 문헌이 된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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