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설계한 것보다 더 멋지게 나와 기뻐요"

한겨레 2022. 10. 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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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를 지켜라' 100호 놀이터 개장
세이브더칠드런, 어린이들 의견 반영
용마어린이공원 놀이터 재단장 오픈
지역 아이들의 뜨거운 호응 얻어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놀이' 토론회
지난 11일 재단장한 용마어린이공원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다인승 그네를 타고 놀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지난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용마어린이공원 놀이터에는 동네 어린이 200여명이 몰려들었다.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는 유아들부터 삼삼오오 친구들과 어울린 중학생들까지 나타났다. 평소 한산했던 이 놀이터에 아이들이 몰려든 이유는 바로 용마어린이공원 놀이터가 약 6개월간의 리모델링 끝에 재탄생한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이날 아이들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새로 단장한 놀이터를 구경하러 몰려들어 한바탕 동네잔치가 벌어진 분위기를 자아냈다.

용마어린이공원 놀이터는 국제아동권리 엔지오 세이브더칠드런이 ‘놀이터를 지켜라’ 프로젝트로 개장한 100번째 놀이터다. 세이브더칠드런은 2014년부터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을 통해 전국의 도시, 농어촌 지역, 초등학교의 놀이터를 새로 짓거나 개선하는 작업을 벌여오고 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는 강동구 달님어린이공원, 강북구 색동어린이공원, 노원구 마들체육공원 초록숲놀이터, 강서구 다운어린이놀이터, 성동구 도선어린이놀이터, 은평구 새록어린이공원 등이 개선되었다.

용마어린이공원은 마천동 내 가장 넓은 면적의 어린이공원인데다 주택가 한복판에 있어 어린이들의 접근성은 높지만 시설 노후화로 인해 어린이들에게는 인기가 없던 곳이었다. 그렇다 보니 낮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는 곳이 되어갔다. 부모들은 바로 집 앞에 있는 놀이터였지만, 자녀들에게 못 가게 했다.

하지만 이날 재단장한 놀이터는 아이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바닥에는 탄탄하면서 푹신한 우레탄이 깔렸고, 색깔은 환하고 다채로웠으며, 6개였던 놀이시설은 12개로 늘었다. 특히 놀이시설 중 여럿이 동시에 탈 수 있는 다인승 그네가 아이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공공 놀이터에서는 보기 어려운 트램펄린에도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놀이터를 지켜라’ 사업은 한국이 가입돼 있는 유엔아동권리협약으로 인해 구상됐다. 이 협약의 31조는 ‘모든 아동은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며 아동의 놀 권리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 아동들은 과도한 학습과 경쟁으로 고통받고 놀이와 여가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계속됨에 따라 세이브더칠드런은 전국의 놀이 환경을 진단하고 놀이터를 새로 짓거나 개선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국제 아동 삶의 질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 35개국의 만 10살 아동 행복도를 비교한 결과, 한국 아동의 행복도는 31위로 전 세계 하위권에 속했다. 연구진은 한국의 경쟁적인 교육제도와 과도한 학습부담으로 인해, 아동 스스로 긍정적인 인식을 하기 어렵고, 자신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놀이 공간과 관련해서는 어른의 공간 속에 아동의 놀이 공간이 덤으로 주어져 있고 이마저도 어른들의 구상으로 만들어졌다는 문제점이 도시와 농어촌 지역, 학교의 놀이 환경에서 비슷하게 제기됐다. 이에 세이브더칠드런은 놀이터를 짓거나 개선하기 전에 주민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의견을 모아 작업을 진행해왔다. 용마어린이공원 놀이터 역시 아동 22명이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지난 5월 용마어린이공원의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 모형을 직접 만들어보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지난 5월 3회에 걸쳐 진행된 용마어린이공원의 디자인 워크숍에 참여한 아이들은 놀이터를 직접 답사하고 입체 모형 만들기, 발표, 토론을 통해 원하는 놀이 공간에 대해 의견을 내고 놀이터 도면을 만들었으며, 주민자치단체와 학부모 역시 주민 워크숍에 참여해 지역 놀이 환경의 문제점을 파악했다. 이들은 공원 근처에 어린이집이 많이 위치해 영유아 이용률이 높고, 초등학생과 노인의 왕래가 잦아 다양한 연령대가 이용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영유아가 다른 연령대와 완전히 분리되어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모래놀이터가 완성됐다. 높이가 다른 미끄럼틀은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한 아이디어였다. 혼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기구를 원하는 수요에 따라 다인용 그네, 시소, 트램펄린 등이 만들어졌다.

디자인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이날 개장식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나타냈다. 김규(11)양은 “학교가 끝나고 놀이터에 들를 때마다 친구들도 없고 놀이기구도 몇 개 없어서 잘 안 왔는데 내가 의견을 냈던 놀이기구가 실제로 만들어져 너무 기분이 좋고, 친구랑 같이 탈 수 있는 시설들이 있어서 너무 신난다”며 “새롭게 바뀐 놀이터에서 빨리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고 말했다. 강서연(9)양은 “친구들과 같이 의견을 내고 모형을 만들어보면서 놀이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거웠는데, 우리가 설계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나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홍미영(39)씨는 “원래 놀이터 분위기가 좋지 않아 아이에게 못 가게 했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가서 놀라고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한편, 유네스코한국위원회도 ‘놀이’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나섰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지난 19일 오후 서울 명동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어린이·청소년의 실존과 직결된 놀이의 중요성을 주제로 전문가 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송성남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지부장, 편해문 자유놀이 옹호가, 전가일 연세대 교육연구소 연구교수 등이 참여해 놀이의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놀이가 아이들을 어떻게 바꾸는지, 놀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푸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놀이는 배움의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놀이가 학습의 수단이나 기능으로 여겨져서는 안 되며, 안전을 이유로 아이의 놀이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등 부모들의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들이 많이 다뤄졌다. 이날 토론은 다음달 중순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유튜브에 공개될 예정이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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